웹미디어부 이상욱 기자의 부기자일기

여는 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는 사르트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난 사르트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실존주의 사상가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실존주의 사상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는 또한 위대한 문학가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은 ‘구토’ 하나뿐이다. 그나마도 50여 쪽을 읽고 졸려서 때려치웠다. 그럼에도 내가 뻔뻔하게 글의 초장부터 그의 이름을 논하는 이유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라는 그의 명언 때문이다.


선택


그렇다. 그의 말마따나 선택은 중요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영화 주인공과 같이 ‘세상을 구하느냐,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느냐’의 거창한 선택이 아니어도 인생엔 늘 선택의 갈림길이 계속된다. 밥과 빵, 공부와 게임, 지하철과 버스. 고르고 또 골라도 늘 어느 샌가 새로운 선택의 상황이 눈앞에 놓인다.
내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같은 유치한 물음부터 ‘전공은 무엇으로 할까?’같은 진로고민까지, 늘 선택의 연속이었다. 끝없는 선택의 길목을 지나 난 스무 살 대학생이 됐다. 나는 캠퍼스내의 동아리가 없던 국제캠 학생이었다. 나는 지난 3월 동아리에 들고 싶어 춘추를 선택했다.

 

 

 

후회


선택에는 후회가 따르기도 한다. 춘추를 선택한 후 나는 많이 후회했다. 우연인지 나에게는 춘추의 실망스러운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실망스러운 모습은 곧 선택에 대한 후회로 변했다.
나는 춘추를 점차 사랑하지 않게 됐다. ‘지인취재’로 점철된 일부 과거 기자들의 기사를 보며, 능력이 아닌 ‘쇼부’로 진급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며, 관료제의 캐캐묵은 흔적을 보며, 정작 내부 재정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다른 곳의 비리는 신랄히 비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춘추에서 별로 배울 점이나 얻어갈 점이 없다고 느꼈다.
열정도 사그라졌다. 매주 있는 평가회의는 주중에 20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취재한 내 기사에 비수를 꽂아댔다. 그러나 내가 인터넷 뉴스와 타인의 블로그를 적당히 섞어 베끼자 잘 썼다고 칭찬해줬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열정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느꼈다.
사랑하지도 않는, 그리고 얻을 점도 없는 춘추를 위해 난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포기했다.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후회했다. 희생은 있는데 얻는 것은 없으니 이만큼 멍청한 선택도 없었다.


딜레마


한번 선택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를 바로잡을 방법은 단 하나, 새로운 선택뿐이다. 내 상황에서는 아마 춘추를 떠나는 선택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러나 춘추에선 새로운 선택 또한 쉽지 않다. 내가 떠나면 나의 일을 다른 사람이 짊어져야하기 때문이다.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 사이의 선택은 나에게 딜레마가 됐다. 내가 이곳에 남는 것도 싫었고, 내가 나가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도 싫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닫는 글


결국 나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뿐이다. 나는 ‘쿨’하게 이곳을 박차고 떠나지도, 이곳을 억지로 사랑하고 있지도 않다. 딜레마에 빠져있을 뿐이다. 그저 끝없는 갈등 속에 머물러 있다.

 

이상욱 기자 estanci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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