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 여신’
이 사람을 수식하는데 가장 많이 따라붙는 말. 바로 KBS N 아나운서 최희 동문(아동가족05)이다. 지난 2010년부터 인기 야구 프로그램 ‘아이러브베이스볼’(아래 ‘알럽베’)을 맡으며 최씨의 인기도 고공행진 중이다. 그는 ‘알럽베 1세대’ 로 불리는 김석류씨의 바통을 이어 받아 ‘스포츠전문 여성 아나운서’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사람 중 한명이다. 불과 2, 3년 전만해도 ‘금녀구역’이라 여겨졌던 덕아웃*. 그곳의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걸까?

 

질풍노도의 시기에 찾아온 방송의 꿈

“대학 1, 2학년 때는 정말 재밌게 놀았죠.” 생과대 댄스 동아리 ‘헥스’와 축구 동아리 매니저를 했던 그의 대학 초년 시절 키워드는 ‘놀기’였다. 최씨는 “연고전때 밤새 자리맡는 사람 있죠? 그게 저였어요”라며 깔깔 웃었다. 동아리 공연 준비에 밤을 새고 집에도 안가기 일쑤였던 최희. 하지만 3학년 문턱을 넘어갈 쯤 그는 졸업 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외국을 가고 싶어 무작정 교환학생을 갔다 오니 ‘벌써’ 4학년이었다.

“대학 4학년,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어요.” ‘취업시즌’인 그 시기에는 자신의 확실한 진로와 미래를 결정한 사람도 있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주위를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후자 중 한명이 그였다. 최씨는 “친구들 모두 대기업에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해야할지도 몰랐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넋을 놓고 친구들이 하나, 둘 제 갈 길을 갈 무렵, 문득 그는 고등학교 때 스쳐 지나갔던 ‘방송인’이란 꿈을 떠올리게 됐다. 막연한 재미에서 시작된 그의 ‘관심’은 3학년 겨울방학때의 한 경험이 계기가 돼 ‘열정’으로 바뀌었다. “당시 ‘긴급출동 SOS24’란 프로그램에서 AD**로 일해봤다”며 “두달 동안 PD를 쫓아다니며, 몰래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했었다”고 말했다. 이후 방송을 더 알고자 신문방송학 수업을 듣고 부전공으로 신문방송학 학사도 얻었다. “PD, 기자, 아나운서 상관없이 방송이란 매체가 재밌어 보였어요.”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아나운서의 길을 선택했고 주변의 권유로 그 길을 서둘러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가진 그도 낙방의 고배는 있었다. 방송국 두곳에서 모두 전형 초반에 떨어졌다. 주위에서 잘 될 거라 했지만, 현실에서는 1, 2차 카메라테스트에서의 낙방이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준비기간도 짧았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을 알긴 했으나, 실패에 직면할 대면 ‘내 길이 아닌가?’하는 좌절감도 그를 엄습했다. 하지만 신데렐라가 자신에게 딱 맞는 구두를 찾듯, 앞서 낙방한 두 곳보다 오히려 더 큰 규모의 방송국에 떡하니 붙게 됐다.

 

선입견, 그 후의 인정과 존중

입사하고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최씨의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희야 네가 지금 인터넷 검색어 1위야.” 야구전문 여성 아나운서인 김석류씨가 ‘알럽베’에서 하차한 뒤 후임 선정에 대해 논란이 있을 때였다. 그때부터 최씨는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나 어떻게 해야 되? 무서워”라는 말이 최씨의 첫마디였다. 기분 좋은 떨림이 아닌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나는 이 일이 좋았을 뿐, 관심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그에게는 부담을 이겨낼 무기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여성이 스포츠전문 아나운서 분야에 발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씨 개인의 노력이 더 절실히 필요했다. 최씨는 “예전에 여성 아나운서는 척박한 그라운드에 싱글생글 웃는 꽃같이 여겨졌다”며 “우리는 일하러 가는 건데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고 쳐다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와 비교적 거리가 멀 것 같은 여자 아나운서라도 그만한 전문성이 요구됐던 것이다. 그러나 셀 수 없이 자잘한 것까지 기록으로 남기는 야구라는 종목을 밑바닥부터 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야구 중계를 보고 또 보고, 녹화 테이프를 돌려보기를 수십번 수백번. 다른 아나운서들이 인터뷰 하는 것을 타이핑해 인터뷰 모음집도 만들어 보고, 책을 찾아 야구 기본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최씨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며 “여자로서가 아닌 한 직업군으로 인정해주고 존중해준다”고 말했다. “오히려 여자 아나운서가 인터뷰하면 분위기가 좀 더 밝아지는 좋은 점도 있다”고 여성 아나운서의 장점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애물은 남아있다. 늘 이슈와 구설수는 여자 아나운서의 기본옵션이다. 그는 “빛이 있으면 다 그림자가 있다”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너 언제 한번 사고칠 줄 알았다'

최씨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따라오는 수식어는 ‘여신’이다. 하지만 ‘여신’이라는 말이 나오자 마자 그는 손사레를 친다. “프로그램을 진행 할 때 사람들이 나를 굉장히 여성적으로 보는 것 같다”며 “내 실제 모습은 그와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출연하는 배구관련 프로그램에서는 남자 선수들의 숙소를 찾아가 같이 장난치고, 편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대본도 없는 프로그램이라 내 멋대로 하다 보니 실제 성격이 나온다”며 오히려 그렇게 비춰지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의 털털한 성격 때문에 진행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실수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그리고 실수는 그의 인기와 더불어 바로 이슈화 되곤 했다. “방송국 선배들이 ‘너 언제 한번 사고 칠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평소에도 덤벙거리고 혼자 ‘키득키득’ 잘 웃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 스포츠 아나운서로서의 그와는 제격이다. “스포츠의 결과는 늘 예측할 수 없고 나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는 심정”으로 일을 즐기는 그였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2년차 징크스가 들어왔다. 2011년 야구계에 많은 별들이 졌다. 故 최동원, 장효조 전 감독, 그리고 타 방송사의 故 송지선 아나운서까지. 최씨와 직접적 연관은 없었지만 야구라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최씨 역시 그 상처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허무하게 느껴지고 의욕도 많이 사라져서 가끔은 이 일이 싫어질 때도 있었어요.” 구설수에 오를 때, 옆에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 그렇게 고대하던 이 일이 멀게만 생각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일어섰다. “누가 한 프로그램을 맡기는 이런 어마어마한 기회를 내게 또 주겠냐”며 “굉장한 특권이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한다”고 진심으로 감사해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스타가 아닌 직장인"

최씨는 아나운서 일뿐만 아니라 신문 칼럼, CF출연, 잡지 표지모델, 수많은 인터뷰 요청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 드라마의 카메오 출연 요청도 받았다.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각 분야의 섭외 요청은 지금도 끝이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달랐다. 최씨는 “내가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니라 야구의 인기가 높음을 반영한 것”이라며 “야구 주변에 알짱알짱대는 나까지 인기가 많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상의 범위를 넘는 것은 'NO'다. 지난 4월 ‘연예인으로 전향하면 성공할 것 같은 아나운서’ 설문결과 전현무 아나운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최씨는 “내가 끼가 없어 연예인 쪽은 하지도 못하고, 할 분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최씨는 KBS N의 ‘간판’ 아나운서로 불린다. 비단 KBS N뿐만 아니라 여자 아나운서를 통틀어서도 소위 ‘잘나가는’ 아나운서다. 그렇지만 최씨는 ‘간판’이란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는 “간판은 고치기도 하고, 떼었다가 바꾸기도 하는 것”이라며 “내가 원하는 것은 스타가 아닌 한 직장의 직장인”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행운들이 신입 아나운서에게 큰 기회인 동시에 큰 부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특권을 꼭 쥐고 밀려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가장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지 않나요?"

스포츠 채널 여성 아나운서 중 자신을 빛나게 하는 매력은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며 망설이던 그는 “가장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선배들이 저는 ‘너무 예쁘지도 않고, 너무 아는 척하지도 않고 딱 적당한 선에 있으니까 네가 인기있는 거야’라고 말해줬는데 맞는 말 같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는 언젠가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면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를 비켜주고 다른 자리를 찾아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

최씨는 휴일이면 종종 우리대학교를 찾는다. 중앙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또 다른 그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화장 안하고, 안경쓰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며 “학교가 좋고, 그래서 학교와 관련된 일도 좋다”고 애교심을 드러냈다. 기자가 만난 최씨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신’이 아니라 ‘천방지축’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사려깊은 생각과 자신에 대한 열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카라카를 온누리에’ 사회도 꼭 한번 하고싶다”는 아나운서 최희. 언젠가 캠퍼스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범접할 수 없는 여신이 아닌, 장난스레 다가가도 편하게 받아 줄 것같은 그였다.

*덕아웃: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감독, 선수, 코치들이 대기하는 장소
**AD: 조연출, 조감독

서동준 기자 bios@yonsei.ac.kr
사진 정세영 기자 seyoung10@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