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물고기를 낚았나, 시청자를 낚았나

지난 2009년, SBS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 방송 조작 논란이 일었다. 낚지 미션을 수행하던 가수 김종국은 한시간동안 아무것도 낚지 못하며 고전하다가 마침내 길이 40cm가량 되는 참돔을 낚았다. 하지만 이 장면이 방송에 나가고 난 후, 시청자들이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참돔의 크기에 비해 크게 휘지 않는 김종국의 낚싯대 끝 △낚싯대의 끝을 가볍게 잡고 릴*을 여유 있게 감는 김종국의 모습 △낚싯줄을 잡고 쉽게 참돔을 끌어올리는 모습 △막 걸어 올린 참돔이 맥빠진 채 끌려오는 모습 △참돔 바깥에서 안쪽으로 걸려 있는 낚싯바늘 등이 그 의혹들이다. 여기에 한 네티즌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 결정타를 날렸다. 방송에 앞서 우도를 방문한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우도 검멀레의 잠수부가 김종국의 낚시에 참돔을 끼워줬다고 하더라”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이 방송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산 증거였던 셈이다.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방송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출연한 프로그램도 정해진 대본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시청자들의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히려 시청자들의 이런 현상에 대한 놀라움이나, 실망할 기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일반인의 ‘각본 없는’ 사랑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으로 인기몰이를 한 프로그램 『짝』. 가식 없이 ‘리얼’하게 사랑과 질투, 그리고 커플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이마저 『짝』에 출연했던 한 출연자가 시청자게시판에 올린 글로 대본 조작 논란에 휘말렸다. ‘감독님 통화내역 문자 여자6호 제작진이 시켜서 선택하지 말라는 문자 다 가지고 있습니다. 공개하라고 하면 공개하겠습니다.(부분 발췌)’.

 



                                                        세상에 ‘리얼’ 버라이어티는 없다

우리가 방송에서 보는 프로그램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대본’일까. 방송국 작가 경력7년차, 가장 최근에는 프로그램 『여유만만』을 맡은 KBS 방송작가 최연주(28)씨는 “사실 대본 없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입을 뗐다. 일단 프로그램의 성격이나 주제에 맞게 진행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맡은 작가들은 끊임없이 뉴스를 보고 섭외에 적절한 사람들을 조사하는데, 이렇게 출연진을 섭외하는 과정부터 의도가 전혀 배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한 예로 어떤 연예인이 결혼했다는 주제로 그 연예인을 섭외하는 것부터가, 대본의 흐름이 ‘결혼생활’을 중심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토크쇼의 경우에는 이렇게 키워드를 중심으로 화제를 정해놓고 촬영한다.

기획된 주제 뿐만 아니라 방송분량이 방송에 끼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미션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행자의 80~90%는 미리 짜여진 대본(방송계 언어로, QSHEET)을 가지고 방송을 하며 게스트 등의 출연자 역시 주어질 질문을 미리 받아보기도 한다.


-QSHEET-


더러는 작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흐름을 잡는 경우도 있다. 방송은 ‘사람’들이 주체인만큼 촬영 중 주제에서 벗어난 돌발적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출연자들이 제작진이 원하는 답변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작가들은 촬영을 내내 지켜보며 스케치북을 들고 있다. 출연진들이 놓쳐선 안될 내용이나, 흐름 등을 체크하고 스케치북에 큰 글씨로 단어를 적어 표현한다. 이를테면 분위기가 흐려지거나 대화가 ‘산’으로 갈 경우 스케치북에 PASS라고 적어 빨리 이야기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늘 대본대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본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바뀌기도 하고, 초안에서 없던 것이 추가되기도 한다. 최 작가는 “정해진 이야기 말고도 추가로 발언이나, 촬영을 나갔다가, 우연같은 만남이나, 새로 알게 된 사실일지라도 가치가 있으면 십분활용해요.”라며 이렇게 우연이나 사회자의 재량으로 추가분량이 생겨도, 활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다분히 있다고 전했다.

준비된 대본만을 숙지하고 있어서 대본 이외의 이야기가 나오면 재치있게 받아치지 못하는 출연자들도 많다. 한 예로 배우 S씨는 방송 전, 대본을 미리 받아 답변을 미리 써놓는 등의 세심함과 철저한 준비성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촬영 중 사회자의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왔을 때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만 있었다고… 그저 편집을 기다렸다고 한다.

 


신문은 지면의 제약이 있고, 연극은 무대의 제약이 있는 것처럼, 방송에는 시간의 제약이 있다. 정해진 무대에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만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은 분명 쉽지만은 않을 터. ‘리얼’ 버라이어티인데 대본 조작 논란에 휘말리고, 시청률 때문에 극단적인 편집을 하고 이로 인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청자들의 반응을 염두에 두는 제작진의 과제요, 정답이 없는 문제다. 방송전에 할 수 있는 최대의 준비는 대본이다. 이미 출발점부터 방송은 ‘리얼리티’가 없는 것이다. 출연진의 스토리, 그들의 반응과 감정들이 당신들에게 ‘리얼’하게 다가갈 뿐이다.





*릴: 낚싯대의 밑 부분에 달아 낚싯줄을 풀고 감을 수 있게 한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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