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사유서

 김 헌(국문·09)


1 그래요. 집착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네요. 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어리석게도 말이에요. 변호사님, 이번 3차 공판에선 제가 과연 승소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없어요. 또다시 정면으로 반박할 어떤 증거자료라도 남편 측에서 제시하지나 않을까 시간이 갈수록 두렵고 불안해요. 설마 그렇진 않겠죠. 하하하. 설마가 사람 잡는다구요. 그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설마 했던 일로 법원 문턱을 제 집 안방 드나들듯 하고 있잖아요. 참, 제가 변호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 잠언처럼 생각나네요.

“목표가 없는 삶은 죽은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말이 어쩜 그리도 가슴에 와 닿던지요. 사실, 남편이 변심만 하지 않았어도 제 삶이 죽은 고목 나무처럼 무미건조해지진 않았을 거예요. 신이 내린 가혹한 형벌처럼 잔인했어요. 남편의 변심 말이에요. 아이가 백일쯤 지나고 남편은 제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슬처럼 투명한 안경알 뒤에서 늘 서글서글 웃고 있던 눈동자는 한 겨울 칼바람처럼 매웠어요. 날카롭고 냉랭했죠. 한없이 낯설었어요. 저 남자가 정말 내 남편이 맞을까. 한 이불 속에서 몸을 섞고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진저리를 치게 했어요. 부부라는 이름으로 동행해 왔던 지난 칠 년의 세월을 모조리 게워내고 싶었어요.

“당신 머리 단순한 것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냐?”

언제나 이런 식이었어요. 일방적인 무시였죠. 단순하다는 말로 제 속을 미친년 속곳처럼 훌러덩 뒤집어 놓곤 했어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인가요? 좀 그런 것 같다구요. 죄송해요. 제가 요즘 좀 심란해서요. 회식을 빌미로 공식 외박까지 하고 돌아온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내뱉는 소리이기도 했구요. 남편을 화나게 했던 이유가 있었냐구요? 아니에요. 그런 일은 없었어요. 책잡힐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어요. 저는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공평하다는 말을 믿었어요. 적어도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누구에게나 장점 하나씩은 부여해 주잖아요. 그것이 명석한 두뇌이거나 근사한 외모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준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전자에 속했어요. 대학을 졸업 할 때까지 줄곧 선두 자리를 지켰으니까요. 전산통계학을 전공한 저는 해양수산연구소에 입사원서를 냈어요. 필기시험을 수석하고도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어요. 친구 소현이한테 평가에서 밀린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후로 몇 군데 더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곤 했어요. 그때 문득 깨달았어요. 학교는 성적순. 사회는 인물 순이라는 것 말이에요. 솔직히 억울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말이에요. 실망했어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원망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제가 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얻어 성형을 결심했어요.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말이에요. 그때 아버지의 도움이 제일 컸어요. 적극적으로 밀어줬거든요. 저는 아버지를 닮았어요.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말이에요. 남자들은 하나 같이 예쁜 여자를 좋아 하나봐요. 하하하. 그런 농담이 어딨냐구요? 아버진 물론 저의 미래를 걱정해서였겠죠. 평소 생각했던 것하고 너무나 다른 사회의 이면에 부딪쳤을 때 충격이 컸어요. 제가 사회의 낙오자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맨 처음 진하고 큰 쌍꺼풀을 만들었어요. 통증과 붓기로 고통스럽긴 했지만 참았죠. 일주일쯤 지나니까 두꺼비처럼 부풀었던 눈두덩이 차츰 가라앉으면서 편안해졌어요. 모습이 달라졌냐구요? 그럼요. 정말 예뻐졌어요. 작고 가늘게 쭉 찢어진데다가 눈꼬리까지 위로 치켜 올라갔던 본래의 제 눈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요. 다음은 코에 손을 댔어요. 킥복싱선수한테 겁 없이 까불다 얻어맞고 주저 앉아버린 것처럼 납작한 콧날을 오똑하게 세웠어요. 콧등은 실리콘을 썼지만 코끝을 교정할 때는 제 귀에서 뽑아낸 연골을 쓰더라구요. 원래는 코 전체에 연골을 써야 한대요. 그렇게되면 귀의 모양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코끝에만 사용한다는 재미있는 사실도 알았어요. 저는 실리콘으로만 코를 높인 줄 알았거든요. 어쨌든 신기했어요. 기분도 한결 나아졌구요. 예뻐지고 나니까 학교 성적 따윈 정말 별 것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소현이 어깨에 힘이 들어 간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코까지 세우고 나니까 정말 딴 얼굴이 되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어요. 행복했어요. 한 사람의 모습을 이렇게 감쪽같이 바꾸어 놓은 의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건 감동이 아니라 감격이었어요.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격 말이에요. 눈물까지 찔끔 나오던걸요. 상상이 된다구요? 역시 제 맘을 알아주는군요. 이심전심 아니겠냐구요? 설마요. 허허허. 왜 그렇게 웃는 거죠? 농담이었다구요. 그럴 줄 알았어요. 어디 변호사님 얼굴에 고친 흔적이 있어야죠.

“이제 외모 때문에 마음 다칠 일은 없을 것 같구나.”

취직하고 돈 벌어서 시집 갈 밑천만 준비하면 되겠다고 말 한 어머니 입을 꼼짝 못하게 막은 건 아버지였어요.

“고친 김에 확 뜯어 고쳐버려야지 무슨 소리야.”

아버지는 제 마음을 읽어 주었어요. 욕망이 끝이 없더라구요. 눈하고 코만 손댔어도 전혀 다른 모습인데 말이죠. 긴 사각형으로 각진 턱을 계란처럼 둥그스름하게 다듬었어요. 표현이 좀 그런가요? 지점토로 도자기를 빚듯 몇 번 주물럭거리고 슬렁슬렁 깎아내더니 보기 좋게 만들어 놓더라구요. 아무튼, 성형외과 의사들의 손재주는 알아줘야 겠더라구요. 예술이었어요. 그런 제 모습을 쉽게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가족 밖예요. 단골로 다녔던 동네 편의점 주인이나 가까운 친척들까지도 몰라보더라구요. 체형미 교실에 다니면서 피둥피둥 살이 쪘던 몸매 관리도 확실하게 했거든요.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구요. 하하하. 이런 질문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요. 이번 참에 이름까지 바꿔 버리자고 아버지가 제의를 했어요. 저보다 충격이 더 컸던가 봐요. 믿었던 딸이었는데 말이에요.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는 말이 있잖아요. 부모님 노후 대책으로 넣어 둔 적금을 몽땅 해약해서 성형 수술비용으로 썼거든요. 아버지의 뜻이었죠. 이름 바꾸는 일이 예전보다 쉬워졌다고는 해도 막상 부딪치고 보니 생각보다 복잡했어요. 22년 동안 살아온 그 동안의 인생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었죠. 이름도 얼굴도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데 2년의 시간과 돈을 투자했어요. 다시 해양수산연구소에 입사지원서를 냈어요. 필기시험은 그럭저럭 봤지만 면접에선 높은 점수를 받았어요. 2년 전, 그 자리에서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받고 역시 같은 대답을 했어요. 합격했어요. 저는 그 면접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소현이와 같은 연구소 전산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죠. 소현이 역시 제가 누구인지 까마득히 몰라보더라구요. 파란만장한 입사절차를 거쳐서 들어간 회사였지만 쉽게 애착이 가지 않았어요. 업무처리 능력 또한 형편없이 달렸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월급 받고 일주일도 못 되어 지갑은 늘 마른기침으로 자지러졌어요. 고급 화장품과 메이커 옷에 중독이 되어 있었거든요. 언젠가 꼭 한번 다녀오고 싶었던 유학의 꿈 같은 건 희망사항에서 하얗게 지워버렸어요. 흔적도 없이 말이에요. 그런 따위의 시시콜콜한 것들로 골머리를 썩고 싶지 않았어요. 인공미인인 제가 자연미인인 소현이의 기를 꺾는데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진 않았어요. 대학 다닐 때 그렇게 흔해 빠진 소개팅 한번 못 받았던 제가 입사하자마자 쏟아지는 데이트 신청에 정신이 없었어요. 기분 좋았겠다구요. 아니요. 시쳇말로 더러웠어요. 죄송해요. 변호사님 앞에서 이런 험한 말을 하다니요. 히말라야 산맥보다 더 높고 거대한 모순덩어리가 장막을 치고 있는 사회제도에 이미 환멸을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꿈도 이상도 타의에 의해서 모두 무너져버린 현실이 슬펐어요. 아버지처럼 성격 좋고,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면 의심 없이 배우자로 선택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음도 더 이상 제 곁에 머물러 있지 않았어요. 머리는 좀 비었어도 외모가 훤칠한 남자면 무조건 오케이 하기로 의식을 바꿨어요. 물론, 2세를 위한 노파심 때문이었어요. 유전인자라는 게 소름 돋을 만큼 예민하잖아요. 사실, 자존심이 상해서 다시는 그 회사에 원서를 제출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재입사를 시도했다면 우스운 얘긴가요. 좀 어줍고 어리석은 발상이긴 하지만 복수를 해주고 싶었어요. 복수는 무슨 놈의 복수냐구요. 외모만 반반한 여자와 사는 맛이 어떤가 톡톡히 보여 주고 싶었어요. 큰 장애물 없이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말이에요. 그 정도면 성공하지 않았냐구요? 겉으론 그래 보이죠. 소현이 하고의 염문설을 잠재워 버린 셈이었으니까요.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분분하더라구요.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었어요. 변호사님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소문대로 보통 사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저하고 결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어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냐구요? 변호사님도 참 짓궂은 면이 있네요. 입사 한지 일 년이 채 못 되어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고 사표를 썼어요. 회사 규칙상 결혼한 여자는 근무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맥없이 무너지기 위해 그 힘든 전산공부를 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처음엔 그저 복수심에 선택한 남편이었지만 막상 가정을 꾸리고 나니까 그것도 사랑이라고 정이 들더라구요.

아, 죄송해요. 이야기가 또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군요. 어디까지 하다 말았죠? 참, 거기까지 했었군요. 아이의 백일이 지나면서 남편이 변하기 시작 했다구요. 그랬어요. 축하객들마다 아이가 부모를 닮지 않았다고 했어요. 다들 귀엽다고만 하더라구요.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한 인사였죠. 특별히 해 줄 만한 말이 없을 만큼 못생긴 남자 아이 보고는 장군감 같다거나, 여자 아이 보고는 귀엽다고 하는 형식적인 인사치레 있잖아요. 백일 잔치를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어요. 친정 식구들은 저 어렸을 때 모습이랑 똑 같다고 했는데 말이에요. 그때마다 남편이 야죽거렸어요. 제 얼굴 한번 쳐다보고 아이 얼굴 한번 쳐다보면서 고개를 가로젓곤 했어요. 두 눈을 꼭 감은 채 말이에요. 괴로워 보였어요. 부부라는 이름을 어쩌지 못한 채 그저 법적인 의무대로 버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아니, 아니에요. 변호사님.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법보다는 체면을 더 중시했던 것 같아요. 법이나 체면이나 그게 그거라구요?

하하하. 그렇군요. 제 머리가 단순하긴 하네요. 요즘은 자꾸 허무한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부부로 만나 살았으면 그만이지. 이제 와서 상대의 약점을 까발려 상처를 덧나게 해야 하다니요. 꼭 그래야만 남남으로 갈라 설 수 있는 것인지요. 그냥 이대로 원점을 향해 되돌아 갈 순 없는 것인지요.

 

2 남편은 한마디로 이중 인격자였어요. 철면피였죠. 말끝마다 인생은 로비라고 하는데 넌덜머리가 났어요.듣기 좋은 노래도 삼 세 번이라고 하잖아요. 출세 지향적이었죠. 자기가 소속 되어 있는 집단이나 단체에서 늘 최고가 되길 꿈꾸었어요. 이미지 관리한답시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 또한 목숨만큼이나 강하게 의식했던 것 같아요. 너무 과장된 표현인가요? 아무튼 그랬어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요. 어쩌다 부부동반 모임이라도 나가게 되는 날엔 다른 사람들 보기 민망할 정도였어요. 정말 지나쳤어요. 역겨웠죠. 상사들을 향한 남편의 충성심은 완벽 그 자체였거든요. 환경에 민감했어요. 적응도 잘했구요. 자신의 색깔을 수시로 변화시키는 교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어요. 남편의 별명은 카멜레온이었거든요. 결코 좋은 별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몸집에 비해 유난히 긴 다리와 목표물을 움켜쥐기 좋게 생긴 발가락과 곤충을 포식하기에 제격인 길다란 혓바닥을 자랑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카멜레온 있잖아요. 지나친 비유인가요? 남편이 개인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한 달 수입은 신축성 좋은 고무줄 같았어요. 팽나무가지를 잘 깎아서 만든 새총 날개에 달린 고무줄보다 더 탄력이 좋았어요. 어느 정도였냐구요? 칠 년 동안 살아오면서 남편의 정확한 수입을 파악 할 수 없었으니까요. 직장 내 경조사가 많은 달이나 인사 이동이 끼어 있는 달은 가계부에 빨간 불이 들어왔어요. 월급만으로는 충당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제게 손을 벌렸어요. 제가 무슨 능력이 있나요. 친정 신세를 지는 수 밖예요. 그러고도 모자라면 신용카드를 혹독하게 수난 시켜놓곤 했죠.

“인물 뜯어먹고 살래? 내가 뭐라든. 권서방 인물값 할 거라고 하지 않던. 어휴, 속 터져 정말. 이제 아버지 몰래 돈 대주는 것도 지쳤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니까 그리 알어라.”

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한 어머니에게 항상 미안했어요.

“권서방 혹시 여자 있는 것 아니냐? 에미 말 섣불리 듣지 말고 눈 여겨봐. 그렇지 않고 무슨 놈의 돈을 물 쓰듯 한다냐? 힘들게 대학 공부시키고, 성형까지 해줬더니 늘그막에 내가 무슨 시집살인지 모르겠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하더니 널 두고 하는 소리 같다.”

어머니는 늘 남편의 여자 문제를 염려했어요. 제가 보기엔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사람인데 말이에요. 그렇게 철저하고 깔끔한 사람이 여자문제로 자기 인생에 오점을 남기겠어요. 아니에요. 그건 어머니 말이 틀린 거예요. 여자가 있어서 속을 썩이는 것도 아니고, 증권이니, 경마니 하는 한탕주의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오로지 상사에 대한 맹종 때문이었어요. 복종도, 존경도 아닌 맹종 말이에요. 출세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묶어두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어요. 무엇이 남편으로 하여금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어요. 남편의 갈색 다이어리를 열면 첫 장부터 깨알같은 글씨들이 촘촘하게 나뒹굴고 있어요. 그 동안 공들인 사람들에 대한 명단이 부서와 직책별로 빠짐없이 적혀 있어요. 아주 구체적으로요. 접대장소와 음식이나 술의 종류, 2차 3차로 다녔던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의 이름들이 웬만한 지도보다 더 자세하고도 꼼꼼하게 표시되어 있어요. 사회 생활이라는 게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얽혀서 복잡한 줄은 알지만 남편 행동을 이해하는데 한계를 느낀 적이 많았어요.

“당신 나이에 그만하면 출세 한 것 아니에요.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 거예요?”

친정에서 송금해온 돈 봉투를 건네며 툴툴거렸어요.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배배꼬여 있는 꽈배기처럼 말을 몇 번 비틀었죠. 이게 화근이었을까요?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남편한테서 찬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한 게 이 무렵부터였으니까요. 그때 남편 반응이 어땠냐구요?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았어요.

“아직 멀었어. 뿌리는 대로 거둔다는 말도 몰라? 가만있으면 누가 출세시켜 준대? 이렇게 잘 체크해 두어도 까딱 실수하면 반복된 접대를 할 수 있단 말이야.”

제 손에 들려 있던 봉투를 낚아채듯이 서류 가방에 쑤셔 넣으며 눈을 흘기더라구요. 손등으로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몹시 언짢아했어요. 코털이 살짝 삐쳐 나온 콧구멍과 혈색 좋게 매끄러운 입술을 동시에 씰룩거리면서 말이에요. 여자가 남편 출근하는데 아침부터 바가지나 빡빡 긁는다며 거칠게 쏘아붙였어요. 양복저고리 앞섶을 우악스럽게 탁탁 털면서 말이에요. 말쑥하게 드라이클리닝 해서 그날 처음 입은 양복에 무슨 먼지가 묻었다구요. 그건 남편이 정말 화가 났다는 신호였어요.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구. 그래야만 날 감쪽같이 속인 고상한 외모에 흠집 나지 않을 것 아냐. 안 그래? 게다가 당신을 쏘옥 빼닮은 딸도 잘 길러야 할 테고 말이야. 아니지, 아니지. 힘들게 공들일 것까지야. 대공사 한번이면 당신처럼 완벽해질텐데 뭘.”

밝은 하늘색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던 남편이 고개를 팽하니 돌리며 심술궂게 비아냥거렸어요. 표정이 괴괴했죠. 공원 언덕 발치에 흉물스럽게 찌그러진 채 나뒹구는 빈 맥주캔 같았어요. 순간 머리 뚜껑이 팡하고 열리더라구요. 변호사님. 세상에 비밀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요? 완전범죄 같은 것 말이에요. 아이문제를 자꾸만 들먹거린 남편에게 친정아버지가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면 믿겠어요. 적금 해약해서 성형수술비용 다 부담하고 개명까지 해주었던 아버지가 말이에요. 아, 너무 흥분하지 말라구요. 변호사님은 아버지 마음을 백 번 천 번 이해 할 수 있다구요. 어떻게요? 어떻게 이해하죠? 더 나이 먹어보면 알 수 있다구요?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구요? 아니요, 자신 없어요. 요즘은 밤마다 무서운 악몽에 시달려요.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꾸곤 해요. 그때마다 등 뒤에서 남편과 소현이의 깔깔댄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몸부림치곤 해요. 어제는 가위까지 눌렸다구요. 아무튼 견디기 힘들었어요.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당신이나 나나 같은 상처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어금니로 양쪽 입보퉁이를 악문 채 말이에요.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 남편의 서재를 청소하다 책장과 벽 사이의 빈틈에서 앨범 한 권을 발견했어요. 누렇게 색이 바랜 신문지로 둘둘 말려 있더라구요.

저는 별 생각 없이 신문지를 풀어 보았어요. 해묵은 먼지가 부우하니 달아나는 걸 코로 느끼면서요. 그 동안 한번도 눈에 띄지 않았던 대학졸업 앨범이었어요. 변호사님. 어떡하죠. 제가 지금 이 말을 꼭 해야만 할까요? 어떤 사실이든지 아는 대로 다 말해 보라구요. 잠깐만요. 냉수를 한 모금 마셔야겠어요.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네요. 아, 진정하구 찬찬히 말해 보라구요. 벌써 눈치를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 두 얼굴이 들어 있었어요. 이름은 하난데 얼굴이 둘이었다구요. 졸업 앨범 사진과 그 후의 달라진 모습을 담아 놓은 사진 세 장과 성형외과에서 발급 받은 진료비 납입 영수증이 함께 숨죽인 채 들어 있었다구요. 이거요. 이거예요. 제가 오늘 챙겨 가지고 나왔거든요. 잘 했다구요. 법이라는 게 심증만으로는 통하지 않다구요. 반드시 물증이 필요하다구요. 그렇군요. 친생자확인까지 했는데도 저를 힘들게 했어요. 첫돌이 되도록 아이와 눈맞춤 한번 하는 걸 못 봤어요.

그날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는 어린이날이었어요. 저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남편은 거실 한 켠에 놓인 흔들의자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어요. 아이는 혼자 놀고 있었구요. 달팽이처럼 쬐그만 등을 둥글게 말고는 의자 옆에 앉아서 아바, 아바 하고 웅얼거리며 잘 놀더라구요.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우유까지 한 병 쭉쭉 빨아먹은 뒤였거든요. 기분이 좋을 수 밖예요. 바닥에 수북히 쏟아놓은 레고 장난감을 가지고 말이에요. 그때가 아마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인 것 같네요. 벌써 이렇게 컸구나. 분홍색 토끼 베개 대신 미키와 도날드덕이 그려져 있는 길다란 베개 커버를 세탁바구니 속에서 막 집어 올리려던 참이었어요.

“당신 이쁜 딸 숨넘어가겠어. 빨리 들어와 보라구.”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서둘러 거실로 갔죠.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었어요.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어요. 좀 과장하면 양 볼의 살이 턱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어요.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 말이에요. 딸기 모양을 한 장난감을 입 속에 두 개나 집어 넣었더라구요. 아이가 힘들어한 모습을 즐기듯이 지켜보고만 있는 남편이 미웠어요. 변호사님.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저를 처음 면접했을 때, 비웃듯 쳐다보던 남편의 그 날카로운 눈빛이 그대로 아이에게 쏠렸어요. 무겁게 비틀거리면서 말이에요. 남편은 아이에게 그런 아빠였어요. 인정머리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사람이었다구요. 수분 한 방울 없이 깡마른 수수깡처럼 푸석하게 굴었어요. 결혼 전에 했던 얼굴 성형이 이혼사유가 될 줄은 몰랐어요. 상상도 못한 일이었어요. 남편은 외모가 화려한 여자를 좋아했거든요. 변호사님이 지금 들고 있는 메모장 한 번 넘겨보세요. 거기에도 적혀 있잖아요. 결혼 조건 영순위는 무조건 예쁜 여자라구 말이에요. 둘째 장 아래로 다섯째 줄에 보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까지 논리적으로 적혀 있을 거예요. 남편도 2세를 걱정한 흔적이 보인다구요. 그 부분은 저도 공감을 하고 있어요.

타고난 미인이든, 공들인 미인이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구요. 변호사님. 저 지금 마음이 너무 아파요. 솔직히 지금이라도 남편이 이혼심판 청구소송을 취하한다면 유책 배우자니, 원고니, 피고니 하는 따위의 낯설고 고달픈 언어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잖아요.

벗어나고 싶어요. 훨훨.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허무하고 지옥 같은 현실의 허방에서 헤어나고 싶다구요.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년이라고 툭 내뱉으며 원망했던 지난 공판(公判)때의 남편 얼굴이 기록영화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네요.

 

3 저희 부부 어느 쪽도 불임의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남편과 함께 불임검사를 받은 적이 있어요. 네 번인지 다섯 번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아무튼 세 번 이상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그때마다 남편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어요. 한 번 했으면 됐지. 무슨 놈의 검사를 밥먹듯이 해야 하냐. 맨 날 속고만 살아온 사람처럼 왜 자꾸 치사하게 구느냐. 극히 정상적이라는데 뭘 바라고, 무슨 결과를 얻고 싶어서 말이야. 당신 혹시 나 몰래 숨겨둔 남자라도 있는 것 아냐? 병원을 빠져 나와 집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남편은 쉬지 않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어요. 말문이 막히더라구요. 그건 정작 제가 따지고 싶은 얘기였거든요.

당신이야말로 어디에 숨겨둔 아이라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에요. 결혼 한지 5년이 지나도 록 아이가 없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어요. 병원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왜 소식이 없냐? 아무래도 기가 허한 것 같다며 친정어머니가 지어온 쓰디쓴 한약을 몇 재나 먹었는지 몰라요. 남편이 설령 홧김에 하는 말일지라도 참을 수 없었어요. 찌지직. 급브레이크를 밟더라구요. 도로 위에 까만 타이어 자국이 새겨졌어요.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문신처럼 말이에요. 갓길에 차를 세운 남편은 핸들에 양손을 포개듯이 얹고 그 위에 머리를 가볍게 떨구었어요.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힐 듯이 보였어요. 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죠. 후덥지근한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정신없이 달려들었어요. 감당하기 힘든 열기를 내뿜으면서 말이에요.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태양의 물결이 굼실굼실 일렁거렸어요. 저만치 야산 중턱 어디쯤에서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아침 파도 같기도 했어요.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어질어질 현기증이 나더라구요. 차라리 남편 혼자서 차를 몰고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혼자 있고 싶었거든요. 아이 얘기만 나오면 격해진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한 남편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어요. 그날도 병원에서 함께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사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체외수정을 한번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의사가 정중히 물었어요.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예의도 갖춰 말했어요. 그때부터 남편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어요. 황당했어요. 저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넋을 놓고 들었는데 말이에요. 확실한 근거가 있건 없건 용하다는 병원은 다 가보고 싶었다구요. 제가 이상한가요? 그렇지 않다구요. 고마워서 어쩌죠.

“뜨거운데서 뭐해? 어서 들어와. 출발하자구.”

남편의 목소리가 자동차 문을 힘겹게 밀고 나왔어요. 제 귓바퀴에 딱 걸쳐 앉더라구요. 남편은 무조건 미안하다고 했어요. 제 어깨에 팔까지 두른 채 말이에요. 변호사님.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아무 말이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생각 없이 뱉어놓고 그걸 주워 담으려 하다니요. 이미 할퀴고 지나간 아픈 생채기는 어쩌라구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사나흘쯤 지나서 남편은 남극세종기지 하계연구단 소속팀의 일원으로 파견근무를 떠났어요. 꼭 그 일이 아니어도 남편은 업무상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녀오는 편이었어요. 보통 일주일에서 한 두어 달씩 있다 오곤 했거든요. 부부가 살면서 잠깐 잠깐씩 떨어져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정말 홀가분했어요. 그런데 육개월이라니요. 꿈만 같았어요. 날아갈 듯이 기쁘더라구요. 아이 문제로 서먹해진 남편과의 틈도 자연스럽게 메워질 것 같았거든요.

저 혼자서 생활한지 한 달쯤 되었을 거예요. 아침부터 속이 매스껍더니만 구토를 하더라구요. 친구들 모임에 가서 마신 술 때문이겠지 생각했죠. 술 마신 다음날이면 꼭 대가를 치르곤 했거든요. 컨디션 한 병을 입 속에 털어 넣었어요.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구요.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친정어머니를 전화로 불렀어요. 어머니는 저를 보자마자 엄마가 될 징조가 확실하다며 좋아했어요. 집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죠. 접수를 하고 대기실 의자에 드러눕다시피 앉아서 얼마를 기다리자 제 차례가 되었는지 이름을 부르더라구요. 의사 선생은 남자였어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솔직히 산부인과에 가는 걸 좋아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의사선생이 남자라니요. 눈 큰 개구리가 그려져 있는 종이컵을 하나 건네면서 소변을 받아오라고 했어요. 남자들이야 그깟 소변 받아 오는 게 문제도 아니겠지만 여자의 생리구조가 좀 복잡해야지요. 거기까지는 참을만했어요. 그렇게 고대하던 엄마 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너풀너풀한 천조각을 드르륵 박음질해서 만들어 놓은 통치마 하나 몸에 핑 두르고 비닐시트 뒤집어 쓴 침대 위로 올라가야만 했거든요. 푸줏간에 내걸린 고깃덩이처럼 의사 앞에 치부를 훤히 드러내놓아야 하다니요. 아무리 의사와 환자 사이라 하더라도 그건 수치였어요. 정말 창피했다구요. 벌떡 일어나 병원 문을 벼락치듯 여닫고 나와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여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했어요. 울화가 치밀더라구요.

“여기 화면에 움직이는 게 보이죠?”

초음파를 볼 땐 의사가 호들갑을 떨었어요. 양수가 가득 고인 아기집에서 심장박동을 하고 있는 태아의 신비를 확인시켜 주느라구요. 건성으로 대답을 했어요. 사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임신 5주째란 소리만 또렷하게 들었을 뿐이에요. 한 남자의 아내에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 세상 엄마들이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먹은 것도 없는데 꺽꺽대며 헛구역질을 계속 했어요. 신물이 넘어오고 속이 울렁거렸어요. 심한 배 멀미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입덧 가라앉히는 주사를 출산하기 전날까지 주기적으로 맞아야 할만큼 힘들었어요.

 

4 쇼핑을 하다 봤어요. 우연히.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해물탕 재료를 주문하고 있을 때였어요.

“아저씨, 이 꽃게 얼마예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뒤통수를 싸늘하게 스쳤어요. 반사적으로 예리한 시선을 던졌죠. 자신을 영락없이 빼 닮은 아들 손을 잡고 삼십대 초반의 여인이 고운 자태로 서 있었어요. 제 눈을 의심했지만 소현이가 확실했어요. 분명했다구요. 옛 모습 그대로였어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빨려들어 갈 것처럼 크고 까만 눈동자도, 부드럽게 흐르는 콧날도, 매혹적으로 도톰한 입술도,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베어있는 얼굴 윤곽도, 길고 가는 목선도, 작고 둥근 어깨도, 잘록한 허리라인도, 길쭉길쭉 미끈한 종아리도 예전 그대로였어요. 깨끗하고 투명한 피부와 늘 웃음을 머금던 표정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어요. 저렇게 큰 아들을 둔 엄마라고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어요. 동글동글한 무릎을 겅둥하게 드러낸 레몬색의 미니원피스 차림을 한 소현이가 서 있었다구요. 발목까지 내려와서 치렁치렁한 감색 임부복 차림에 배는 이만큼 나와 있는 제 등뒤에 말이에요. 저는 기미까지 잔뜩 앉아 있는 맨 얼굴이었지만 제가 먼저 인사를 했어요. 소스라치듯 놀라더라구요. 꼭 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슬며시 풀어놓으면서 말이에요. 아들은 네 살이고, 남편은 평범한 사람이라고만 했어요. 저도 더 이상 물어보진 않았어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말이에요. 지나가는 말로라도 제 남편의 안부를 물어 오진 않았냐구요. 그건 왜죠? 그래요.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어요. 서로 좋아한 사이라고 파다했던 소문하고는 좀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어요. 세월도 많이 흘러서 궁금 할텐데 말이에요. 연락처를 따로 주고받지도 않고 그대로 헤어졌어요. 아들이 힘들어한다며 소현이가 서둘러 매장 안을 벗어났어요. 그날 밤늦게 남편한테 전화가 걸려 왔어요. 다음날, 오후 세시 비행기로 들어온다고 했어요. 귀국 날짜만 알고 비행기 시간은 몰랐거든요. 마중을 나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죠. 왜 그랬냐구요? 임신 중독증으로 몸이 심하게 부어 있었거든요. 전에 없이 부드러운 남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어요. 회사 직원 두엇이 나오기로 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남편이 알아서 오겠다고 말이에요. 기분이 좋았어요.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도 그렇게까지 반가워하진 않았었는데 말이에요. 전화는 꼭 필요한 용건이 있을 때만 하길 원했기 때문에 육 개월 동안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통화만 했던 것 같아요.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니? 마중을 나가는 게 당연한 일이지. 이따, 아버지 차로 나가 보자. 회사 직원은 직원이고, 마누라는 마누라 아니냐? 얘가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니까. 젊은것들이 반 년이나 떨어져 있었으면서 보고 싶지도 않니? 얼굴 뜯어 고쳤다고 어디 속까지 변하겠냐만. 독한 건 여전하다. 권서방 돌아오면 애교도 좀 떨구. 나불나불 굴어봐.”

어머니가 역성을 냈어요. 남편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 성격이었거든요. 한번했던 약속을 다시 바꿀 자신이 없었어요. 오랜만에 귀국한 남편의 기분을 첫날부터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는 공항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럼 이 사진들은 누가 찍어 왔냐구요? 어머니였어요.

남편은 소현이와 아들을 차례로 포옹해 주더니 셋이서 나란히 손을 잡고 공항을 빠져 나오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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