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 경제학의 재발견: 우리에겐 '빵'과 '장미'가 필요해

“성차별 당한 여성노동자에게 추가 임금 지급하라”

지난 5월 4일 대법원은 처음으로 성차별 임금 청구권을 인정했다. 3년전 여성노동자 11명이 K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하고서도 임금을 차별받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위와같은 경제활동에서의 성 차별 사례에 대해 속시원한 해명을 해줄,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경제학이 주목받고 있다.

주류 경제학의 한계 극복

성 인지적 측면에 입각해서 경제현상을 파악하는 지식체계를 성별경제학(gender-economics)라고 명명한다. 최근 경제학계에서도 경제학의 균형있는 발전과 현재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 가정문제 등 사회 병리적인 현상의 치유를 위해 성별경제학의 가치에 주목하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 황수경 연구위원은 “공학적 관점에서 의자를 하나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설계자가 모두 남성인 경우를 가정해보라”며 “전적으로 남성의 신체적 조건에 맞게 설계된다면 여성들이 이를 이용하기 불리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황 위원은 “부당하게 성차별을 당한 이들의 정당한 권리확보를 위해서, 체계적으로 문제원인을 밝히고 그 집단의 특수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때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 교수는 가정의 수입 극대화를 위해 성별 분업을 강조했다. 즉 남성은 시장노동에, 여성은 가사노동에 비교우위를 갖고 있으므로 부부가 기능적으로 자기 영역을 전문화할 때 가족의 효용이 극대화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성별경제학에 따르면 이는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을 학문적으로 합리화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종숙 연구위원은 “인적자본이 부족했던 과거와 달리 질높은 여성인력들이 노동시장에 공급되고 있다”며 “능력있는 여성들이 능력에 따른 보장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위원은 “최근에는 고용단계보다도 최근 승진이나 업무배치에서의 차별이 많이 일어나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각종 경제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08년 기준 여성개발지수(GID)는 109개 국가중 26위를 차지한 반면에 여성권한지수(GEM)는 61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기회의 평등을 누리지만, 결과적으로는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뜻이다. 젠더경제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조선대학교 경제통상학부 홍태희 교수는 “공공 부문의 경우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차별을 받지 않을 환경이 잘 갖춰져있는 편이지만 사기업 노동시장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며 “한국 노동시장의 비정규직은 70%가 여성”이라 말했다.  

차별을 객관화하기 위한 노력

이처럼 경제학적 ‘차별’은 주로 노동시장에서 많이 발생한다. 황 위원은 두 가지의 근거를 들어 성차별 문제의의 원인을 설명했다.

첫째로, 노동시장에서 소수자 그룹에 대한 정보가 양적으로 적기 때문에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위험기피적인 고용주는 오랜시간 동안 축적된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주류의 노동력을 고용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과거에 있었던 차별의 결과 현재의 생산성에 대한 기대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여성인력에 대한 교육 등의 투자 결정이 적극적이지 않았다. 때문에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학력을 갖고 있어도 사회적인 고정관념에 의해 생산성 기대치가 남성보다 낮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김 위원은 “현실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차이와 차별을 명확히 구분해 내기란 대단히 어렵다”며 “앞으로 성별경제학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지속적인 연구를 강조했다.

모두가 웃는 경제학을 위해

우리들이 행진할 땐
여자뿐 아니라 남자를 위해서도 싸우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말아야만 하는데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쥬디 콜린스

성별경제학은 여성문제만을 다루는 경제학이 아니다. 대신 ‘성 인지적’ 관점으로 경제학 전체를 재해석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김 의원은 “그 예로 어떤 특정 노동시장에 한쪽의 성별이 과다하게 몰렸을 때의 부작용을 방지하고자하는 노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구체적인 제도의 사례로 교원임용에서 30%의 남성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정책을 들었다.

성별경제학에 관심을 갖는다고해서 당장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경제를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이 하나 더 생겼다고 여기자. 이처럼 성별경제학의 출발점은 차별에 대한 객관적 자각으로 시작하니 말이다.

임미지 기자  hacksuri_mj@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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