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윤 기자의 부기자 일기

부기자 일기를 쓰게 될 날이 이렇게 일찍 올 줄 몰랐다. 내 일기를 쓰기 전에, 앞서 다른 기자들의 부기자 일기를 찬찬히 읽어보니 대부분의 부기자들 머릿속에는 ‘춘추’에서 겪었던 힘들었던 일들이 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좀 달랐다. 춘추에 입사한지 어느 덧 9개월 째. 난 춘추에서 얻은 것이 참 많다.  

지난 2011년 이맘때 우리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합격했다. 글로벌리더 전형으로 수능도 보지 않은 채로 합격해서 남들보다 입시가 일찍 끝났다. 수험생들에겐 'SKY'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명문대학교에 하루아침에 떡하니 합격하니  ‘감사’한지 몰랐다. 재수, 삼수해도 수능에서 삐끗해 입시를 망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너무 쉽게 대학에 와버린 것이다.

그런데 막상 3월이 되고 백양로를 걸어 다니며 등교를 하는데 매일 매일이 너무 ‘허전’했다. 내게 주어진 선택권이 너무나도 많아서였을까? 아마 나는 ‘내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3학년 6반 37번이라는 정해진 틀에서 살다가 갑자기 큰 사회로 나오니 하루하루가 이유 없이 허전하고 우울했다.

춘추의 매력은, 이렇게 공허했던 나에게 성찰의 기회를 많이 줬다는 것이다. 꼭 춘추가 아니더라도 성찰은 할 수 있겠지만, 기자생활을 하면서 얻는 경험들은 내가 더욱 폭넓게 성장할 수 있는 영양분이 됐다. 춘추는 끔찍하게 바쁘다. 그러나 ‘바쁜 사람한테 일을 더 시키라’는 말이 있듯 바쁘면 바쁠수록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책도 읽고 숙제도 하고 취재도 하고 사색도 했다. 그 결과 나는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나는 연세춘추 ‘문화부’ 기자다. 아이템을 기획하면서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앞으로 적어도 60년은 더 살 텐데, 남은 인생을 다 바쳐도 좋을 일이 과연 무엇일지 빨리 찾고 싶었다. 나는 문화를 좋아한다. 휴일에 무작정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도심 속의 갤러리들을 돌아보길 좋아하고 카페에서 혼자 앉아 미술 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홍대같이 복잡한 곳에서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뮤지컬이나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템도 이것저것 ‘나 스러운 것’으로 기획했다. ‘이색 카페’, ‘대학생 독립 잡지’, ‘홍대 상상마당’, ‘디자인’, ‘푸드 스타일리스트’, ‘예술가의 방’ 등등.

이렇게 흥미로운 분야로 아이템을 정하니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이 힘들지가 않았다. 맨 처음 취재한 것은 대학생이 만드는 독립잡지에 관한 기사였다. 우리대학교 선배들이 만들고 있는 잡지 『프론트』, 대학생 디자인 잡지 『디노마드』, 질문 잡지 『헤드에이크』 이렇게 세 잡지를 취재했다. 잡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단면을 하나씩 엿볼 수 있었다.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고 사진을 좋아하는 20살 대학생은 혼자 독립 스튜디오를 차리기도 했다. 자기가 속한 계층의 문화를 스스로 창조하기 위해 대가 없이 노력하는 이들을 보니 큰 동기 부여가 됐다.

‘예술가의 방’을 취재했던 것이 나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다. ‘파랑캡슐’이라는 예술가들의 커뮤니티를 찾아간 적이 있다. 상수동에 위치한 작은 건물 2층에서 4명의 예술가를 만났다. 이곳은 정말 새로운 공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남남인 예술가들끼리 한 군데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 한 쪽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고, 평범한 예술대학교 학생도 있었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음악가도 있었고 어린 행위예술가도 있었다. 이들은 그저 ‘예술’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모여 ‘파랑캡슐’이라는 그들만의 개성적인 그룹을 결성했다. 함께 밤마다 새로운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하고 옥상에서 별을 보며 그들만의 파티를 열기도 하면서··· 마치 19세기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피카소와 그의 무리들이 아틀리에서 작업을 했듯 말이다. 나는 예술을 정말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삶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또 다른 세계를 배웠다. 이 사회의 모든 젊은이들이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회사에 취직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겠구나 하는 것을.   
 
물론 모든 취재가 이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왜 내가 이 취재를 하고 있을까’ 싶은 취재도 있었다. 나이 어린 기자라서 무시 받은 적도 많다. 그러나 그런 취재라도 ‘타산지석’의 교훈이라도 얻을 수가 있다.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하는. 꼭 훌륭한 사람만 보고 배우는 게 공부인 것은 아니기에.

이제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된 것 같다. 결국 내가 찾은 답은 뭔가 하니 ‘전시 기획자’가 되는 것이다. 값비싼 그림이나 조각들을 단순히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아래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예술 운동을 후원하고 싶고, 그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을 고루하지 않은 방법으로 교육하고 싶다. 마치 프랑스 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에서 조상들이 남긴 갚진 유산을 하루하루 되새기며 사는 것처럼 - 한국의 청소년들도 문화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행복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며 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넘치지도 않고 모자람도 없게 - 그렇게 항상.

어쩔 땐 진을 다 빼놓을 정도로 힘들었던 춘추 기자생활이었지만, 이 공간에서 배운 많은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 행복이 다른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 춘추야. 

글 김기윤 기자 munamun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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