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본능을 자극할 에로틱 예술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資薄縛胸中萬華云 筆湍話與把傳神 얇은 저고리 밑, 가슴 속 가득한 정을 붓끝으로 전하노라”
-혜원 신윤복 ‘미인도’의 찬문(撰文)

춘화(春畵)란 남녀의 직접적인 성행위를 그린 풍속화다. 춘화는 남녀상교지형(男女相交之形)을 노골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해 춘흥을 즐기거나 성욕을 촉진시키는 최음(催淫)을 목적으로 그려졌으니 오늘날의 『플레이보이』잡지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춘화는 비단 동양권에서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그림을 춘화라고 명하지 않고, 서양에서는 에로틱 아트(erotic art)라고 칭할 뿐이다. 비교적 대담하게 그려진 일본이나 인도에 비해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많은 춘화가 그려지지는 않았고, 대부분 작자미상인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유명한 풍속화가 신윤복과 김홍도 또한 풍속화를 그리다가 은밀히 춘화도 그린 적이 있다.

춘화는 예로부터 금지된 외설적인 그림이라 하여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춘화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전시나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다루기도 했거니와,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성이 뛰어난 그림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홍도의 『춘화사계첩(春畵四季帖)』을 보면 사계절로 나뉜 뛰어난 배경의 묘사와 유려한 필치로 비단 성행위만을 다룬 것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에로티시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회화성을 보여주고 있다. 

춘화의 역사적 배경

춘화의 역사적 배경은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나라의 재상인 진형에 의해 향락용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춘화는, 당나라 때 홍등가의 머리 병풍용으로 그려지다가 원나라 때는 몽고풍 춘화로 변질돼 유행한다. 그러나 춘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명나라 후반부터다. 조선시대 유입된 춘화도 대개 명대의 작품들이며 이 때 조선에 건너온 문화에는 춘화첩, 판화집 등 명나라에서 유행했던 호색문화가 상당하다. 엄격한 유교적 윤리관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시대에 춘화가 유행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상적인 혁명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현상 자체로 봐도 이미 조선 사회가 유교적 윤리관이 붕괴되며 근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증거인 셈이다.

이렇게 조선사회에 유입된 춘화는 18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크게 유행한다. 특히 조선 후기의 춘화는 리얼리즘이 짙게 반영돼 배경 묘사가 상당히 사실적이다.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춘화들이 인체 비례나 행위의 묘사, 얼굴 표정과 감정 묘사가 매우 사실적으로 드러남에 이를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 춘화는 배경 묘사에 상당히 치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표현이 지나치게 도색적이지 않으면서도 내용의 중심은 성 풍속을 중심으로 표현하고 있음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역사적인 춘화를 한 곳에, 화정박물관 

화정박물관에선 지난 2010년 9월 14일부터 2011년 5월 8일까지, 동아시아권 춘화 특별 전시전인'LUST'를 기획해 춘화를 학술적, 미술적으로 조명해보는 뜻 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나라에서 동아시아권 최초로 ‘춘화’ 특별전시전이 열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동서양 모두 유교문화와 기독교문화라는 엄격한 규범 탓으로 ‘성’담론이 규제돼왔고 심지어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거나 편파적인 형태로 전달되기도 했다.

전시전을 총 기획, 담당한 화정박물관 김옥인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다양한 에로틱 아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은밀하게 드러낸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했다”며 “이를 통해 제작 당시의 사회상과 더불어 다양한 사랑과 만남, 교류, 유혹의 형태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동시에 관련학계의 심도 깊은 접근을 위한 첫 번째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고  한다.




동양화 아티스트가 전하는 오늘날의 춘화란

동양미술사에서 춘화가 차지하는 위상, 그리고 오늘날 아티스트들에게 춘화가 갖는 의미는 어떠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동양화 전공 아티스트 고아빈(28)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 씨는 고려대 미술학부 동양화를 전공·졸업한 후, 춘화에 모티브를 얻어 작업했다. 실제로 고 씨의 많은 작품은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상징성과 춘화의 분위기가 오묘하게 배합된 작품이 상당하다. 아티스트가 전하는 오늘날의 춘화의 위상과 작품의 감상 포인트 등에 대해 알아봤다.
 


Q.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춘화’에 관심이 생겨 모티브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대학시절 에로티시즘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교양수업이나 책, 영화 등을 접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지만 가장 은밀히 이뤄지고 있다는 성(性)의 아이러니한 상황과 외설과 예술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을 느껴 모티브로 삼고 작업하게 됐습니다.

제목: global sex재료: 장지에 채색크기: 162.1X61 cm년도: 2006년

Q. 에로틱 예술인 ‘춘화’에 대해 보수적인 시선으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A.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노골적으로 성행위가 묘사된 춘화를 보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하지만 노골적 이미지 자체보다는 시대적으로 갖는 의미나 회화사적 가치 등 작품 속에 내재된 의미를 보려고 한다면 거부감이 조금 덜해질 것 같습니다.

Q. 그림의 감상 포인트와 초점을 둬야 할 점을 알고 싶습니다.
A. 춘화 작품을 감상할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배경 지식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된 춘화작품, 가령 조선시대 김홍도, 신윤복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그 시대의 종교, 정치, 풍속 등의 상황을 유념하며 보는 것이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겠죠.

제목: 십이지색재료: 장지에 채색크기: 53.0X45.5 cm * 9 년도: 2008년

Q. 주몽신화 등 주로 신화적 소재가 많은데 그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A. 동양화 전공자이니 만큼 옛 것을 통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색 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성의 모순적 특징 때문에 춘화를 모티브로 초기에 작업을 해오다가, 우리나라 영웅 설화에도 춘화로 연결 지을 수 있는 재미난 탄생설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화 속에서 한국의 영물, 신화적 존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이런 생각으로 그린 작품들 중, 십이지(12支)를 다소 에로틱한 자세로 표현한 후 「십이지색」으로 제목을 지어 그린 작품이 있습니다. 십이지 동물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동물들이지만 십이지신상들은 대부분 근엄하거나 무섭게 표현된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풍자하고 해학적으로 풀고 싶어 에로틱이라는 무기로 도발하고자 했던 것이죠.

제목: 처용신화재료: 장지에 채색크기: 130.3X194.0 cm년도: 2011년

Q. 그림이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궁금합니다.
A. 제 그림이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사랑’입니다. 모든 작품에 사랑의 설레는 감정을 실어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죠. 이것은 비단 남녀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더 포괄적인 사랑의 감정을 말합니다. 요즘은 처용신화를 가지고 시리즈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처용은 분노와 화로 점철될 수 있는 힘든 상황을 노래와 춤이라는 유쾌함으로 넓은 아량을 베풀죠. 그 처용의 지혜로운 마음, 즉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색물과 예술작품은 구분돼야 한다. 단순히 도색적인 그림으로서만 춘화를 볼 것이 아니라 성애예술 및 미술 자료로서 춘화를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야 할 21세기 대학생들도‘춘화’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향이 있다. “노골적으로 성 행위 장면을 그리고 있어서 꺼려진다”는 이지윤(영문·09)씨의 말처럼, 대담한 색체와 노골적인 묘사를 이용하는 춘화라는 장르가 우리 사회에서‘쉬쉬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비록 도색물과 예술작품을 교묘히 넘나드는 특성상 비판이나 혐오를 수반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의 예술적 성과와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면 그러한 인식은 편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에로티시즘: 주로 문학이나 미술 따위의 예술에서, 성적(性的) 요소나 분위기를 강조하는 경향.

글 이상욱 기자 estancia@yonsei.ac.kr
자료사진 고아빈, 화정박물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