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페테르스, [푸른 알약]

책 고르고 글 쓴 방법

  혹시 제가 대중문화나 만화에 특별한 애정이 있어서 만화책을 수 천 권 섭렵했다거나 이러는 것은 아니에요. 생각해보니 이번 연재하면서 새로 읽었던 만화책이 이전에 읽었던 만화책들보다 많지 않았어요. 이렇게 글 쓰는것도 참 대책없지만요......사실 이번 연재를 올린 계기중 하나가 방학 때 고우영의 초한지하고 임꺽정 만화, 그리고 집의 인터넷 티비에서 ‘클래식 영화 시리즈’를 접한 뒤였습니다. 휴학했을 때라 시간도 많아서 매일 동네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 가서 책 보는게 심심풀이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옛날 영화도 그랬습니다. 보고 허세부리려는 마음도 좀 있었지만요. 마침 만화책이 있길래 봤는데, 보고나서 문득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들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정말 좋은’작품들을 제가 손수 골라서 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서관에 있는 만화책들하고 단행본 만화들을 계속 둘러보았습니다. 그러고서 표지가 이쁜 책들을 골랐습니다. 정말이에요. 책 안을 뜯어보지 못하니까요. 도서관에서도 그랬어요. 간혹 가다가 도서관에 있는 미술잡지나 영화잡지에서 만화를 소개받아서 보기도 했고(미카코), 수업 들으러 놀러간 곳에서 만화를 보고 ‘이거 재밌구나’해서 글을 쓴 것도 있었습니다(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되도록 사람들이 많이 보는 흑백 일본만화책와 그라픽노블을 피하려니 교보문고 가서도 뭘 봐야 할지 좀 막막하더라고요. 막막하니까 더 랜덤하게 그냥 골랐고요.

  그래도 그러면서 좋은 만화들을 만나서 조금은 행복했습니다.
  또 솔직히 말하면 일주일마다 한번씩 글을 써야 한다는 강한 동기에 밀려서 쓴 적도 많습니다. (편집자님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허세부려서 그럴듯한 글을 내놓는다는 이 압박. 오늘도 계속됩니다. 자신을 해방시켜야겠죠. 흑. 그래도 ‘별로다’하는 작품에 대해서 별로다라고 말한다는 원칙은 지키고 싶습니다. 원칙이 뭐 그렇듯이 잘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훗

병든 삶

  읽으면서 좀 지루했습니다.
  근데 지금 읽으니까 재밌군요. 아마 새벽 3시에 잠이 안와서 혼미한 채로 읽어서 그럴 것입니다.
  주인공 프레데릭은 파티에서 키티를 만납니다. 몇 년 뒤 다시 만나서 그들은 사귀게 됩니다. 어느날 그녀가 충격 선언을 합니다. ‘나 에이즈 양성이야. 내 아기도 그렇고.’ 그래도 그들은 계속 사귀어 갑니다. 병원에도 갔다오고, 일하고, 악기키우고, 섹스하고, 그러면서 살아가죠. 상처와 콘돔에 특히 조심해야 하지만 그것이 삶을 아주 크게 흔들어 놓지는 않습니다. 한번은 프레데릭이 상처가 나서 의사와 만나지만 의사선생님은 에이즈가 퍼질 확률이 ‘문에서 돌아서서 맘모스를 만날 확률’이라고 단정하면서 가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가끔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구석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맘모스가 말이죠.
  뭐, 진짜 그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림체는 뭐랄까,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듯한 그림체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안경쓴게 프레데릭, 그 옆이 키티.

  아이를 키우는 채로 자유롭게 좋아하고 동거하고 그러는 것이 좀 부러웠습니다. 더러운 부자 유럽 국가들.... 농담이고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프레데릭과 키티와 아이는 서로 알게 된 지 처음으로 동남아로 여행을 떠납니다. 알약을 한가득 안고서요. 슬픈 걸까요, 기쁜 걸까요? 작가의 실력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에이즈라는 ‘엄청난 비극’과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감상주의나 근엄함에 빠지지 않습니다. 늘 ‘그냥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유지합니다.

  어쩌면 여기서 배워가야 할 것은 삶의 총체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고, 울 때 울고, 웃을 때 웃고. 이렇게 하기가...솔직히...너무 힘들지만, 꾸준히 약을 먹는다는 느낌으로 하면 될 것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구석에서 맘모스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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