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굴뒹굴. 앉았다, 누웠다, 엎드렸다, 일어났다. 침대에 누워 만화책을 보다, 거실 소파에 기대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그것도 잠시, 이번엔 컴퓨터 앞에 앉아 목을 길게 빼고,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듯 말듯 아슬아슬한 자세로 시간을 보내길 몇 시간. 옷차림은 07년 농활 티셔츠에 짧은 축구바지. ‘이보다 더 프리할 순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퍼질러져 있는 나의 모습.

내 몸 어딘가를 단단히 조여오던 나사 몇 개가 풀려버린 듯, 몸짓은 흐믈흐믈 정신은 헤롱헤롱. 이런 나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백수’ 그 자체! 내 형편없는 모습에 대한 자각과, 몇 시간동안이나 지속된 의미 없는 행동들에 대한 지겨움. 그리고 어머니의 입가에 맺힌 미소의 그 반어적 의미는 나의 무거운 몸뚱이에 채찍질을 가하여 바깥세상으로 내몰아 간다.

 

때 묶은 옷을 벗어 던지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말끔히 샤워를 한다. 옷장을 열어 한참을 심사숙고한 끝에 고른 옷을 차려입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저 너머에서 미소 짓는 모습을 바라보고 ‘야, 너 참 잘생겼다!’라는 자화자찬의 한마디를 툭 내뱉으며 자신 있게 바깥세상으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다. ‘역시 인간도 광합성을 해야 한다는 말이 맞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조금은 쌀쌀하지만 맑고 깨끗한 날씨. 마치 나를 위한 듯 내 앞길을 금빛으로 화려하게 치장해 놓은 정오의 햇살은 나의 기분을 한껏 고양시킨다. 나는 MP3를 귀에 꽂고 익숙한, 내가 사랑하는 음색에 귀를 기울인다. 나의 청각에 잔잔히 깔리는, 때로는 신나고 때로는 애수에 찬 배경음. 그리고 그 공간을 서서히 채워가는 세상이 드러내는 이미지들. 나는 내가 감각하는 이 세상의 주인공! 영화의 한 장면을 구성하는 듯, 드넓게 펼쳐져 있는 나만의 공간 속 당차게 움직이는 발걸음은 어떠한 시간적 제약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걸어간다. ‘어디로?’ 나의 무의식은 마치 ‘네가 갈 곳이 또 어디가 있겠어?’라고 말을 하는 듯, 콧방귀도 뀌지 않으며 (무척이나 당연하게) 익숙함이란 노선으로 나의 발걸음을 이끈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누구인가.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며 또한 감독이다. 지금의 나에게 미리 짜인 시나리오란 있을 수 없다. 독아론적 상상에 잔뜩 고양되어 있는 나에게 길은 어디에나 열려있으며 그 길이 곧 나의 스토리이다. 나는 익숙함이란 기존의 틀에 인위적인 칼집을 낸다.

 

동대문운동장. ‘상계와 신촌’, 혹은 ‘노원과 신촌’이라는 나의 동선을 잇는 연결점. 지하철 환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2호선에서 4호선으로, 자신의 길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일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던 나. 그곳은 나에게 ‘그저 지나쳐 가는 곳’으로의 가치만을 가지는 경유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나는 신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본다. 그저 스쳐가는 공간에 불과했던 장소는 오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동대문운동장’ 아니,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무관심의 결과 어느새 이름도 바뀌어 버린 이 지하철역을 나와 거리로 향한다. 시간에 흐름에도 온건히 존재하는 건물들과, 또한 시간에 흐름에 발맞추어 변화되고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혼재하고 있는 모습은 나에게 melancholy한 기분을 자아낸다. 나는 현대화된 거리의 한 복판에 옛 향기를 풍기며 우두커니 서 있는 동대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나라 보물 1호, 찬란한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이 고적. 그는 상업화와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로 점철되어진 이 거리의 번잡한 모습에도 아직까지 그 위풍당당함을 잃지 않고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랜 시간동안 갈고 닦이어 진, 예리한 시각에 나도 모르게 현대인들을 대표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말이다.

근대적 공간으로서의 ‘동대문’이란 장소를 대표하던 ‘동대문운동장.’ 한 때 고교야구 붐을 일으키고 다양한 스포츠의 메카로서 위상을 높이던 이곳은 어느새 그 터만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물론 역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당국에서는 동대문운동장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라는 타이틀로 공원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요가치가 떨어진 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곳에 공원을 만들어 관광지화 하겠다는 의도로서 이루어지는 사업. 하지만 그 바로 옆에 약 3배의 규모로 신설되는 백화점을 통하여 진하게 풍기는 상업적 향기. 고왕의 무덤을 바라보며 인생무상을 느끼며 퉁소를 불던 양소유의 마음이 이러하였을까? 내가 만들어가는 영화 속, 나의 마음은 비통함에서 쉬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문득 나의 눈에 비추어지는 이 풍경을 사진 속에 담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느낀다. 왜 오늘 같은 날 사진기를 챙겨오지 않았을까하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후회를 하며 손가락으로 앵글을 잡아본다. 유난히도 푸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높이 솟은 회색의 건물들, 도로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차들의 행렬. 그리고 그 단조로움 속에서 유난히도 두드러지는 화려한 단청의 색. 나의 네 손가락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 아름답고도 조금은 우울하며, 그로인해 사랑스럽기까지 한 풍경. 나는 ‘진보’라는 이름에의 행진이 사실은 ‘퇴보’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과 함께,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강한 암시를 받는다. 못내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나는 곧 다른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던 나만의 공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나는 나만의 성이 함락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평온한 마음을 잃어간다. 무엇 때문일까? 견고한 성이 함락되는 경우는 크게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성의 방어력보다 외부의 공격력이 훨씬 강하여 그를 압도할 때, 그리고 폭동이나 기근 등의 문제로 인하여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될 때. 어찌되었든 나는 나의 공간을 침범해 오는 무언가에 의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의 공포감과 호기심은 자석의 N극과 S극인 듯, 서로를 끊임없이 끌어당긴다. 나의 두려움이 끌어온 호기심은 어느새 나의 의식 전체를 지배한다. 그는 곧 스스로가 직접 성을 허물어뜨려 나를 위협하는 무언가와 직접 대면하려는 당찬 모험을 감행한다.

나는 귀에 꼽혀있던 이어폰을 빼낸다. 시끌벅적. ‘천원만 더 천원만 더!’라고 가격 흥정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흥에 겨워 라디오에서 퍼져 나오는 트로트 한 소절을 맛깔나게 따라 부르는 사람들, 소소한 너무나 서민적인 일상 속에서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고 신나는지 배꼽을 부여잡고 폭소를 터트리는 사람들. 나의 세계에 잔잔히 깔리는 배경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시끌벅적 시장의 소음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극한 현실감으로 인하여 그로기 상태에 빠진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꿈에서 깨어난 듯 몽롱함 속에서 나의 의식으로 맹렬하게 돌진해오는 이 다채로운 감각들에 적응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이런 나에게 가방 속 고이 간직하고 있던,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프렌치카페(카푸치노)가 도움이 된다.

이곳은 동대문시장. 좁다란 골목골목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의 서민적 활기가 흐르는 공간. 나는 이곳에서 신명이란 단어의 의미를 몸소 체험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각박한 삶일지도 모른다. 작은 점포 하나를 열어놓고 오매불망 손님들을 기다리며 소액의 손익에 전전긍긍하는.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결코 각박하다고는 표현할 수 없다. 무표정한 샐러리맨들의 단조로운 얼굴과 대조되는 그들의 생기 있고 다양한 얼굴들. 가면무도회장 같은 세상 속, 현실이 부여하는 그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내 보이는 그들의 진실한 삶. 비록 그것이 거친 욕설을 동반하는 추잡스러운 것일지라도, 자신의 하루하루 삶을 연명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할 지라도, 이러한 삶의 모습이야말로 사람의 내음새가 나는 향기롭지는 않지만 구수한 향기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시장에서 빠져나와 짧은 나의 여정을 마치려 역으로 향하는 지금, 이곳에서라면 나 역시도 내 얼굴을 감싸던 답답한 가면을 잠시 벗어놓고 마음껏 웃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아 나옴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 고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 나는 작은 틈새를 찾아 들어가 겨우겨우 자리를 잡는다. 4호선을 달리는 지하철의 포화된 어느 한 구간.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만을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속, 내 머리도 포화되어 버린 듯 멍하니 서 사람들의 행렬에 몸을 맡긴다. ‘철커덩 철커덩’, 등속으로 물결치는 열차의 파동에 발맞추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거리기를 얼마간. 나는 어느새 상계역에 도착한다. 지하철 승강장을 빠져나오며 느끼는 육신의 해방감. 그러나 오랜만에 맛보는 감각의 포화상태는 쉽게 수그러들려 하지 않는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차가운 CASS 한 캔을 산다. ‘치익’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활화산처럼 부글대는 거품과 톡 쏘는 알코올 내음. 어둑해진 밤하늘과 11월의 차가운 바람을 안주삼아 호기롭게 한 캔을 비워버린다. 조금씩 차오르는 아릿한 술기운에 녹아내리는 관념의 덩어리.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진다. 거리에는 오늘따라 사람도 없다. 나는 유유자적하며 천천히, 새롭게 나의 몸을 채우는 이 기분을 음미한다.

 

어느 토요일 밤. 어느새 하루가 훌떡 지나가 버렸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너저분한 옷차림을 하고 침대에서 뒹굴며 어머니의 눈치를 살살 살피는. 하지만 이대로도 좋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으로 잠을 청하며 만족스러웠던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그래,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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