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공학과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의 종결,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 하는가』 vs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모든 인간이 인공적으로 제조되는 사회가 있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까. 인간에 의해 창조되는 그곳이야말로 가장 ‘인간답다’고 부를 수 있는 세상일까. 1932년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통해 인간복제가 자리 잡고 성과 생식이 분리된 사회를 가정했을 때, 위와 같은 가정에 대한 경고는 이미 시작됐다. 과연 유전공학은 윤리를 무시한 과학의 독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여기 이에 대해 팽팽한 논리를 펼치는 두 권의 책이 있다.

 

보다 완전해질 수 있는 기회인가
인류 주체성의 상실인가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의 저자 그레고리 E. 펜스는 철학자로서 인간 복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펜스는 인간으로서 ‘개체에 대한 취사선택의 자유’와 ‘완전성에 대한 욕구’를 갖는 것은 윤리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유전공학을 통해 불임이나 난치병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갖는 희망도 마찬가지다. 펜스는 이러한 개인의 당연한 소망과 권리를 현대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의 저자 마이클 센델 또한 모든 영역에서의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센델은 ‘치료’와 ‘강화’의 목적을 구분하려 노력한다. 센델은 치료에 한해서는 일부분 유전공학을 인정하지만 인류가 유전적으로 강화될수록 인류의 주체성은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운동선수가 약이나 유전학적 강화에 의지할수록 성과에서 본인의 수행능력은 줄어들 것처럼 말이다. 또한 센델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형질을 미리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타고난 결점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강화시킬 책임이 자동으로 주어지고, 이를 위해 기술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우생학 탄생의 가능성에 대해

펜스는 유전자 조작에 대한 위험은 공상과학소설이 만들어낸 과도한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유전자 조작이 인종의 개량과 서열화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유전자 조작이 지닌 부정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확대한 우려라는 것이다. 펜스는 복제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잘 숙지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복제인간들이 인류 우생학 역사상 최악의 냉대를 받을 것이라는 운명만은 피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센델은 인간복제를 비롯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이미 ‘자유주의 우생학’이라는 시대의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며 경고한다. 자유주의 우생학은 자본과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경쟁 사회에서 성공할 만한 자식의 종류를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이는 언뜻 보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시적 차원의 통제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의무적으로 보내야하는 것처럼, 위험성만 없다면 국가는 아이의 지능을 높일 것을 부모에게 의무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생명을 디자인하는 것은 정당한가

 

펜스는 인간복제 기술을 통해 부모와 아이가 보다 강한 유전적 결속감을 느낄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부모가 완벽에 가까운 유전적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자식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고자 해도, 이는 지금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품는 바람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펜스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치라고 강요하며 통제력을 갖는 것과 유전적 우월함을 미리 갖추게 하는 것과의 차이는 얼마나 다른가”라고 질문한다.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것이 두려워 그 시도조차 거부할 이유는 없다.

반면 센델은 아무리 부모라하더라도 자식의 모든 부분마저 통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센델은 출생의 우연성을 없애고 출생의 신비를 정복하려는 충동은 부모와 자식간의 기본적 관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센델은 신학자 윌리엄 메이의 말을 인용해 “부모다움은 ‘우연의 미래로 열린 마음’으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녀는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것이 갖는 의미는 크다.

과거에는 신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던, 생명에 대한 설계. 인간의 형질을 결정하는 일은 ‘예’와 ‘아니오’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과연 유전공학은 인간복제 진보를 위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영역인가, 아니면 위험함에 대해 두려워해야 하는 영역인가? 이들은 이에 대한 고민과 선택을 독자의 숙제로 남겨둔다.

 

임미지 기자 haksuri_mj@yonsei.ac.kr
자료사진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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