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는 중국의 목탑이 백제의 장인들에 의해서 석탑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이 시기 신라에서는 어떤 탑이 만들어지고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를 살펴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중국의 탑은 기본적으로 목탑이었다. 중국인들은 곧 이 목탑의 형상을 본따 전탑(塼塔), 즉 벽돌로 된 탑을 짓기 시작다. 워낙에 벽돌을 건축에 많이 쓴 중국의 특성상 벽돌을 구하기 쉬웠기도 하고, 탑의 원형(原形)이 되었던 인도의 탑이 벽돌로 지어진 때문이기도 하다. 목탑의 영향을 받은 백제 탑과 달리, 신라의 탑은 이러한 전탑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신라탑은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이다. 얼핏 보면 이 탑은 벽돌을 쌓아서 건축한 전탑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 탑은 전탑이 아니라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석탑이다. 그래서 이름도 전탑이 아니라 벽돌탑[塼]을 흉내냈다[模]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일일이 다듬어 쌓는 것은 벽돌을 찍어서 구워내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지만, 굳이 돌을 깎아서 모전석탑을 만든 이유는 분명치 않다. 물론 전축분(塼築墳)인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보이듯이 삼국시대에도 벽돌을 굽는 기술은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벽돌을 좋아하지 않아서 조선시대까지도 벽돌로 건축물을 지은 예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당시 신라에는 벽돌 굽는 기술이 없었다는 설도 있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던, 벽돌 대신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안산암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 분황사 석탑은 전탑과 완전히 닮은 형태이다. 특히 1층 탑신의 네 벽에 문을 내어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일종의 ‘건물’이었던 전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전탑을 닮은 ‘모전석탑’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면서 목탑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백제의 새로운 석탑 양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신라적인 요소와 백제적인 요소가 만나 또다른 양식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러한 과도기적 위치에 있는 석탑이 바로 의성 탑리 오층석탑(국보 제 77호)이다. 그래서 탑리 오층석탑에는 목탑의 특성과 전탑의 특성이 동시에 발견된다.

탑의 모습을 보면 한 층짜리 기단 위에 5층의 탑이 올라앉아있고, 1층의 몸돌에는 ‘감실’이라 불리는 큼직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이 감실은 불상 등을 안치하는 공간으로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보듯 전탑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또한 옥개석은 위아래 모두 계단 모양으로 층이 져 있다. 이것 역시 전탑의 잔재이다.

반면 기단과 1층 탑신에는 목조탑의 기둥을 간략화한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어 있고 특히 첫 층의 모서리 기둥[隅柱]은 무량수전과 같은 목조건물의 기둥에서 볼 수 있는 배흘림 기법까지 표현돼 있다. 그리고 우주의 꼭대기에 목조기둥의 끝에서 볼 수 있는 주두(柱頭)가 조각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목조탑과 목조탑의 전통을 이어받은 백제계 석탑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목탑과 전탑이 절충된 형태는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 38호)과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국보 제 112호)에 이르러 우리에게 익숙한 석탑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때에 이르러 드디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석탑의 양식이 확립되게 된다. 넓고 탄탄한 2층짜리 기단, 처마에만 층단을 두고 지붕 위는 진짜 지붕처럼 매끈하게 처리한 것, 추녀 끝이 사다리꼴로 날렵하게 솟는 등의 양식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후에 만들어진 신라 석탑이 모두 이러한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탑들은 우리나라 석탑들의 출발점이 되는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확립된 석탑의 양식은 이후 더욱 세련된 형태로 가다듬어져 미학적으로 한결 원숙하고 뛰어난 작품을 창조하게 되는데, 정형석탑의 양식미가 절정에 이른 최고의 걸작이 그 유명한 불국사의 석가탑이다. 완숙한 균형미와 간결한 조형미, 안정된 구조 등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불국사 석가탑은 우리나라 탑의 원형이었던 목탑이나 전탑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롭게 탄생한 석탑 나름의 양식을 가장 세련된 형태로 구현한 탑이라 할 수 있다.

 

 

지우군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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