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향기 #8
불교 조형물은 우리나라 문화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불교 조형물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문화재는 석탑(石塔)이다. 어느 절에 가도, 또는 터만 남은 절에 가도 탑 한 기 정도는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문화재가 석탑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국 석탑의 형태는 불국사 석가탑과 같은 형태가 표준일 것이다. 네모반듯한 몸돌〔塔身〕 위에 사다리꼴의 지붕돌〔屋蓋石〕이 얹어진 ‘층’이 층층이 쌓인 모양이 그것이다. 이런 한국 석탑의 정형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원래 석탑은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입적한 후,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이러한 인도의 초기 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돔 모양으로 건축한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유입되어 확립된 탑의 형식은 목탑(木塔)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탑은 그 원형을 모두 목탑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목탑도 함께 받아들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목탑이 건립되었다. 그 중 하나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황룡사 9층 목탑이다. 이렇게 목탑을 건축하던 장인들은 새로운 재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바로 화강암이다. 우리나라는 중생대의 대보조산운동으로 인해 화강암이 무척 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를 처음 한 것은 백제의 장인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초기 석탑이 바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 11호)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석탑 중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탑이자, 한국 석탑의 원형으로 간주되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그러나 반쯤 무너진 형태로 일제 시대 때 시멘트로 땜질 된 채 오랫동안 버텨오다 지난 1997년부터 해체 복원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은 미륵사지에 가더라도 실물을 볼 수는 없다. 이 탑은 가장 초기에 지어진 석탑으로, 목탑의 형태를 그대로 본따 건축한 것이 특징이다. 재료만 돌을 사용했을 뿐이지 구조와 형태는 목탑의 그것을 완벽히 재현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과 같이 다층 누각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상당히 육중한 몸집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렇게 돌로 목탑 모양을 그대로 만들어놓고 보니까 상당히 골치가 아팠던 모양이다. 목탑을 그대로 본뜨다 보니 부피가 너무 커져서 돌도 많이 들고 짓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백제의 장인들은 목탑의 조형미를 그대로 두면서 돌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탑의 양식(樣式)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가 바로 부여 정림사지에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국보 제 9호)이다.
무엇보다도 이 탑은 목탑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 석탑 고유의 양식미를 창조하려는 백제 장인들의 예술적 고뇌의 흔적이 서린 걸작이다. 돌이라는 새로운 재질의 특성에 순응, 규모가 훨씬 작아지면서 목탑을 이루는 각종 부재들을 나름대로 생략, 상징하는 기법들을 사용해 목탑과는 전혀 다른 조형미를 창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안정감 있는 기단, 얇고 넓어 경쾌한 느낌을 주는 지붕돌〔屋蓋石〕, 그리고 상하층부 간의 적절한 체감비율 등 백제 장인들의 천재적인 조형감각을 대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탑은 불교의 전래지인 중국이나 화려한 목조탑을 많이 세운 일본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창적인 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석탑의 역사를 일구었던 백제는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나라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석탑이 건립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목탑의 구조를 창조적으로 변형한 정림사지 석탑의 양식은 통일신라도 전해져 훗날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완성된 한국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