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느끼함에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생각해보니 어제 점심과 저녁을 각각 ‘뽈로콘살사소스파스타’와 ‘까르보나라베리베리치킨’으로 때웠던 것이 기억난다. 신촌 타지 생활 어언 몇 개월째, 엄마가 해주시는 ‘가장 한국적인 맛’이 그립다. 아, 쌀알이 땡기는구나!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민속주에 파전이 땡기는 날이다. 아, 청춘이여! 결국 한국인 DNA의 성화에 못 이겨 홀린 듯 걷다가 발견한 예쁜 음식점. 이 곳에 정말 내가 찾는 한국적인 음식이 있을까?

정갈한 단상 차림이 일품인 92dorak

신촌 기차역에서 이화여대 방향으로 3분쯤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92dorak’. 목조 장식의 입구부터 소박한 정취가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아저씨가 “안녕하세요, 이곳은 카페토랑입니다~”라며 반겨준다. 카페토랑이 무엇인가 궁금해 여쭤보니 Café and Restaurant을 줄인 신조어라고 설명해주신다. 카페분위기를 가진 음식점답게 분위기는 차분하고 은은해 마음이 차분해진다. 곳곳에 푸른 나뭇잎이 풍성히 달린 나무모양의 소품도 왠지 모를 청량감이 들게 한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모습의 한국식 구이요리를 만나볼까?

92dorak은 지난 6월 ‘興民同樂(흥민도락)’ 즉, ‘여럿이 함께 즐거워한다.’라는 경영철학을 표방. 각 메뉴의 음식은 아기자기한 배치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주 메뉴와 반찬의 구성이 굉장히 균형적이라 먹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웰빙을 하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흐뭇하다.

이곳에는 다양한 메뉴가 있다. 일인용 구이 단상, 찌개, 석쇠구이 등이 그것이다. 그 중 자타공인 최고 인기메뉴는 단상으로 제공되는 ‘돼지삼겹 천일염과일소스’이다. 천일염과일소스? 일반적이 구이 음식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양념이름에 호기심이 생긴다. 알아보니, 이 양념은 키위, 배 등의 여러 가지 과일을 갈아 천일염을 넣어 만든 소스이다. 부드러운 삼겹살의 육질에 짭쪼릅한 소금, 그리고 새콤한 과일의 끝 맛이 그야말로 밥도둑이라 할 수 있다.

92dorak의 숨은 묘미는 Self-Bar에 준비된 ‘오늘의 차’이다. 오늘의 차는 ‘체감차, 해피차, 총명차’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각각의 특징과 재료는 벽면에 걸린 조그마한 액자에 설명되어 있는데 굉장히 아기자기해서 그 자체로 인테리어 소품처럼 느껴진다.

사실 고기구이를 먹고 싶어도 많은 학생들이 고기 냄새 걱정에 맘 편히 고깃집에 가지 못한다. 하지만 미리 구워 '내열 자기'에 담겨 나오는 92dorak에서는 냄새 걱정 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언제나 정갈하게, 부담 없이 구이요리를 즐길 수 있는 92dorak의 품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볏짚 위에 앉아 동동주를 들이키는 낭만, 달구지 속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편하게 한 잔 마시고 싶다. 한식 저녁을 먹었는데 칵테일 바는 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저녁을 먹었기에 소주를 마실만한 고기집도 과하다. 아까, 내 마음을 흔들었던 가을비 냄새에 다시 생각이 난다. 어디 괜찮은 민속주점 없을까.
신촌 골목을 걷다 눈에 들어온 곳은, 전과 전통 술을 파는 민속 주점 ‘달구지’. 가게 안에 들어서면 인테리어가 먼저 눈에 띈다. 나무 기둥과 흙벽, 마치 과거의 주막에 온 듯한 한국적 디자인이다. 편안히 신발 벗고 앉아서 먹고 싶은 사람들은 볏짚이 깔린 방으로 들어가면 된다. 얼핏 보기에는 좁아 보이지만 지하에 단체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여럿이서 갔을 때 자리를 나눠 앉을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일반적으로 민속주점이라고 하면 막걸리를 기대하는 것과 달리, 독특하게 이곳 ‘달구지’에서는 동동주의 인기가 더 높다. 투박한 가게의 전경이 잘 정제된 막걸리보다 동동주를 더 끌리게 하는 것 같다. ‘달구지’의 동동주는 소주를 섞지 않아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 동동주와 함께 먹을 안주로는 모듬전을 추천한다. 꼬지, 호박전, 동태전, 새우전, 버섯전, 동그랑땡의 여섯 가지 전을 모두 맛볼 수 있어 실속 있는 메뉴다. 한편 비 오는 날의 인기 메뉴는 따로 있다고.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해물 파전이 그 주인공이다. 해물과 파가 풍부한 해물 파전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달구지’의 포인트는 가정식이다. 사장 최미선 씨는 “남편이 전라도 사람이라 음식은 주로 전라도식이다”며 “집에서 먹는 것처럼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달구지’는 천연 조미료를 사용한다. 최 씨는 “매실액을 담근 천연 조미료를 사용하고 초장도 직접 만들어서 쓴다”고 하며 “업체에서 납품을 받아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지만 좋은 것을 만드는 것이기에 자부심이 있다”면서 웃었다.
‘달구지’가 가장 붐비는 시간은 7시 이후다.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주말에는 예약이 필수다.
최 씨는 ‘달구지’를 한 마디로 정의해달라는 말에 “그냥 가정집이라고 생각한다.”며 “가장 좋은 것을 먹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도 저기도 다 똑같은 바깥 음식에 지쳤을 때, 집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쉬고 싶을 때 이곳에 또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을 뗀다.

오랜만에 한국적인 맛 기행을 마치고 한층 푸근해진 마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알싸한 느낌이 아직도 혀끝에 맴돈다. 꼬부랑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 모두 내 뒤를 따르라.

 

▲92dorak 찾아가는 길

 

▲달구지 찾아가는 길

김은주, 김정연, 김지영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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