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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춘추에 왜 들어갔어요?취재2부 류은채 기자의 부기자 일기
  • 류은채 기자
  • 승인 2011.11.13 23:23
  • 호수 1672
  • 댓글 0

“그렇게 힘든데 왜 연세춘추 해?” 혹은 “연세춘추에 왜 들어갔어요?”
과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나만 보면 항상 묻는 말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연세춘추에 왜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내 동기들은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냥…” 이라며 얼버무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덜렁대기 일쑤였다. 좀 자유분방한 아이였다고나 할까.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까지도 그 버릇을 완벽하게 고치지 못하고 살아간다. 좀 고쳐보려고 무던히 노력을 해봤지만 아직도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도 타고난 밝은 천성 때문인지 실수를 해도 씩 웃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내 이런 철없는 행동들에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그래’하며 좋게 넘어가줬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낯설었던 대학교 1학년, 새내기에게 언제 어디서든 덜렁거리고 칠칠맞지 못한 내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 곳이 생겼다. 뭐,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알 것이다. ‘연세춘추’라는거.

솔직히 말하자면 수습 때는 정말 ‘뭣도 모르고’ 나대는 경우가 많았다. “저 연세춘추해요!” 이런 자부심 하나로 학교 안을 이리저리 누비며 다녔던 것 같다. 따뜻하고 착한 춘추 동기들 덕분에 춘추로 출근하는 금요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춘추의 따뜻함을 끽하며 나는 수습기자생활을 나름 만족스럽게 보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수습기자시절에 나를 굉장히 따뜻하게 감싸준 우리 취재2부^____^ . 사실 정작 기자가 되고 보니 나는 수습기자들에게 그렇게까지 따뜻하게 대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내게 베풀어준 선배기자들의 따뜻함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 사랑해 우리 동기들 하트뿅뿅♥♥♥♥♥107기여 영원하라 >.<


▲퐁듀온늬 빠져서 아쉽지만....이 때 정말 재밌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부랴부랴 갔던 MT. 수습 때였는데 공교롭게 나와 단비 언니는 취재2부가 됐다. 경포대 또 가요 우리!!


수습기자를 마치고 어느새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지독하다는 ‘원주세미나 과제’는 날 점점 조여왔고 드디어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나는 취재2부 과제를 시작으로 대학시절 첫 방학의 문을 열었다. 동기들 중 ‘4호선 패밀리’와 함께 매일 집에서 가까운 고려대 도서관으로 출근하며 과제를 처리하고(그리고 부장들을 욕하며) 마감시간 2분을 남겨놓고 배터리가 나가 고려대 캠퍼스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콘센트를 찾아다니던 기억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뭐 어쨌든 나는 과제를 거~의 완벽히 끝냈다. 근데 나는 왜 원주세미나 때 좀 많이 ‘까인’ 거 같지?

어쨌든 나는 취재2부가 됐다. 원하던 ‘보도국’기자가 됐는데, 뭔가 우리 부서 언니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아 물론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가질 땐 그 어떤 부서보다 친했다)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수습 기간 동안 철없이 왔다갔다하던 내 모습이 언니들 눈에는 ‘어리게’ 비춰진 것이다. 사실 그랬다. 덜렁대던 내 습관은 취재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좀 서운했다.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사막 한 가운데 떨어진 느낌이었다. 아이템이 덜컥 주어지고 취재를 해오라 했을 때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랐다. 너무 힘들었다. 일주일은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금요일이 오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큼은 무겁지 않았던 수습 때와는 달랐다. 나름 정성들여 쓴 초고가 부장오빠 손에서 잘려 나갔을 때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원주캠 사진기자를 담당하고 있지만, 사진은 아직도 잘 찍지 못한다. 노력만 한다, 언제나.

교수 충원율이 낮다는 내용으로 1면 점핑기사가 나갔던 날, 평가회의 시간에 엄청 ‘까였다’. 물론 평가회의의 목적은 기사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는 시간이지만 부족한 점이 너무도 많아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평가회의 시간이 끝난 뒤 나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평가회의 시간에 지적당한 부분을 모두 반박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지적할 부분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고 완벽한 취재를 해내겠다고. 오기가 생겼다. 나는 절대 ‘어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나름 ‘독한 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 이런 오기가 제대로 작동했던 걸까. 내 부기자 생활에서 가장 탑 오브 탑 기사가 탄생했다.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346
▲ 원주의과대 기사다. 원주의과대 기숙사인 원의학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인데,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원주의과대였지만 이 기사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2주에 한 번씩 가던 원주의과대를 일주일 동안 3번을 오갔다. 처음으로 내가 취재원에게 어떤 것을 물어봐야 하는지 정리해 갔다. 그 때 배웠던 ‘웃으면서 쓴소리 하기’는 이제 내 주특기가 되었다. 아무튼 나는 이때부터 자신감을 얻었다. 취재라는 것이 뭔지, 어떻게 취재원을 대해야 하는지, 기사에는 어떤 식으로 반영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냥 ‘취재2부’에서 맴도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제 나는 어엿한 ‘취재2부 기자 류은채’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런 느낌을 아는가. 온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춤추고 있는 느낌. (허세 아니다, 절대!)
지금의 나는 어떤가. 물론 내 덜렁거리고 털털한 버릇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완벽하게 고쳐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나중에 기자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춘추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이제 나는 당당하게 왜 연세춘추에 남아 있는지 대답할 수 있다.

“연세춘추에 왜 들어갔어요?”
“더 성장하고 싶으니까요!”

류은채 기자 blingbling100@yonsei.ac.kr


류은채 기자  blingbling100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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