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문화권 유학생의 하루를 살펴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ㅇ아무개씨는 남들보다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한다. 일어나면 주위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조용히 손과 발을 씻는다. 이슬람교의 의무 체계 상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예배인 살라트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슬람교도인 그는 하루에 5번 예배 의식을 치른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첫 예배를 끝내고 그는 학교갈 채비를 한다. 누가 봐도 한국인과 다른 외모를 지니고 있는 그는 우리대학교에 얼마 안되는 타문화권 외국인 유학생이다.
세끼 밥 먹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
시끌벅적한 점심시간의 학생식당. ㅇ씨는 줄을 서지 않고 메뉴판만 유심히 바라본다. “성분을 잘 확인해야 될 의무가 있거든요”라 웃으며 말하는 그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고도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미량의 돼지고기라도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에 조리 과정 중에 고기가 들어갈 가능성은 없는지도 생각해 봐야 돼요”라고 말했다. “뉴질랜드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는 한두업체가 꾸준히 특정 재료를 제외한 음식이나 채식을 만들어줘서 편했어요. 우리대학교가 그런 수준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성분 표시라도 자세히 해준다면 한결 좋을 것 같아요.” 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ㅇ씨는 30여 분 동안의 고군분투 끝에 점심을 먹게 됐다.
식사 시간이 고민인 것은 비단 ㅇ씨의 문제만이 아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타키 무하마드(전기전자·11)씨 역시 식사 시간이 되면 고민하느라 한참의 시간을 보낸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하마드씨 역시 고기 종류는 먹을 수가 없어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느라 고생이다. 할 수 없이 라면이나 오므라이스를 주로 먹는 편이지만 많은 경우 조리사에게 직접 찾아가 자세한 성분을 묻고 선택을 한다. 라면과 오므라이스에 이골이 난 그는 결국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기로 결정하고 학생 식당을 떠나기 일쑤다.
최근에 우리대학교에서도 메뉴의 성분을 표시하는 등 종교적 이유나 알레르기로 인해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알법한 정보만 명시해 주는 것에 그쳐 아쉬움을 남긴다. 생활협동조합(아래 생협) 이항서 주임은 “주재료가 아닌 양념이나 부가적인 재료들의 성분들을 일일이 다 나열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외부에서 받은 음식은 성분 표시가 더 어렵다”며 난처함을 표했다.
마음의 안식처가 돼야 할 종교가…
하루에 5번 살라트를 행해야 하는 이슬람교도들은 교내에서는 예배를 잘 지킬 수 없어 마음 한 켠이 무겁다. ㅇ씨는 아침에 첫 예배를 드린 후 나머지 예배를 제시간에 드리지 못 하고 있다. “고향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종교가 문화이자 생활이에요. 종교가 생활방식을 정하는거죠. 하지만 여기는 아니니까…. 못 드린 예배는 집에 가서 몰아 드려야죠, 뭐”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국제처 손성문 주임은 “예전에는 글로벌 라운지에 기도실을 만든 적도 있다”며 “여러 여건 때문에 기도실을 없애야 했지만 예배드릴 장소가 없는 학생에게는 내 사무실에서라도 하라고 말한다”고 전해 그들의 열악함을 엿볼 수 있었다. ㅇ씨는 “학교에서 예배드릴 장소가 마땅치 않아 학생들의 시선을 피해 예배드릴 장소를 찾아 다니곤 하죠”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종교와 관련해 그들에게 또 조금은 껄끄러운 시간이 있다. 바로 우리대학교 졸업 필수 요건인 채플시간이다. 채플 네 학기를 모두 이수한 ㅇ씨는 “그냥 재미없는 교양시간이라 생각하며 항상 잤어요. 우리대학교가 기독교학교인 것을 알고 입학했기에 감수할 수는 있었지만 봉사활동 시간으로 대체한다든지 하면 그 시간을 더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 법했죠”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대해 교목실 측은 “이러한 흐름을 고려해 채플 시간동안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치를 소개하려고 노력한다”며 “학생들이 채플 시간을 통해 귀한 가치들을 깨닫고 의미있는 삶으로 살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채플은 실질적인 기독교 예배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문화·대화 채플들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되고 있다.
우리대학교 수준은 정말 세계적?
종교적인 문제 이외에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가장 큰 장벽으로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언어다. 말레이시아 출신인 곽전상(전기전자·11)씨는 일상적인 대화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 대책으로 일부 수업은 영어강의를 선택해 듣고 있지만 이 역시 완벽한 대책이 아니다. 곽씨는 “영어 강의라 수강 신청을 했는데 막상 수업을 들어 보니 교수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사용하거나 한국말로 수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인내심이 많은 편이라 잘 참고 있지만 기대했던 영어강의와는 다른 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이에 대해 교무처 학사지원팀 김영숙 팀장은 “현재 우리대학교에 개설된 강의 중 영어 강의가 29%를 차지하고 있다”며 “7~800여 개의 수업에 대해 일일이 현황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어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건의가 들어오면 즉시 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업뿐만 아니라 의식 수준 역시 아직 ‘글로벌 연세’와는 멀어보인다. 실제로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 어울려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ㅇ씨는 “한국 학생들이 외국인을 외국인 이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타자화가 되는 기분이 많이 들죠. 외국인이 아니라 친구로 봐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교수나 학교 관계자들이 외국인 유학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문제다. 국제처 손 주임은 “일부 교수들이 외국인 유학생들에 대해 인격비하적 발언을 한다는 민원도 가끔 들어온다”며 “구성원들 사이에 외국인을 대하는 의식의 전환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화, 한 걸음씩 차근차근히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처 손 주임은 “설날과 추석에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 문화를 더 잘 알 수 있도록 해당 명절 음식을 같이 먹는 등의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며 “매 학기초 국가별 간담회를 열어 외국인 학생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복지위원회(아래 학복위) 역시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자는 기치 아래 학생식당의 ‘메뉴공모전’도 진행하고 있다. 학복위 위원 황호연(도시공학·10)씨는 “메뉴 선택권에 제한을 받는 학생들을 배려하려는 취지로 고기 없는 ‘메뉴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협의 이 주임 역시 “아직은 채식을 이벤트 식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면이 많다. ㅇ씨는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 배려가 아닌 외국인들의 고민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 제공하는 실질적인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라 말했다. 곽씨 또한 “간단한 공지사항이라도 영어로 동시에 안내해 주는 등 작은 것에서부터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대학교에서 재학하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은 종교적 차이, 문화적 차이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손 주임은 “타지에서 외로이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가족같은 시선으로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연세 사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대학교는 아직 세계화를 받아들일 탄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세계화를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국인들을 위한 구성원들의 배려가 하나둘 모여들 때, 진정한 ‘세계화'를 외칠 수 있지 않을까?
이예진 기자 alphagirl@yonsei.ac.kr
그림 김진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