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부 이가람 기자의 부기자 일기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혹은 이미 읽어봤을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출간 된지도 꽤 됐고 워낙 유명해서 이제는 제목만 봐도 식상하다. 교수조차도 학생들이 죄다 자기소개서에서『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인용해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푸념을 늘어놓을 정도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이 책을 부기자 일기에 끌어들여 이른바 ‘뒷북’을 치는 이유는 김난도 교수가 말해주는 청춘의 모습이 ‘연세춘추’(아래 춘추)인 나와 너무나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청춘이라서 아픈 내가 아닌, 춘추라서 아픈 나의 모습을 이곳 부기자 일기에서 허심탄회하게 풀어내고자 한다.

▲ 내게는 청춘(靑春)보다 춘추(春秋)라는 단어가 더 와 닿는다.

춘추의 시작


내가 ‘연세춘추’에 들어온 것은 좀 더 의미 있는 대학생활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어려서부터 노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나에게 있어서 놀면서 자유를 만끽하는 신입생 시절의 특권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술 마시고 놀러 다니며 친목을 다질 때 오히려 나는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기 원했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학보사에 관심이 생기게 됐다. 사실 춘추에 들어오기 전부터 춘추에 있는 선배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고 「연두」에 올라와 있는 부기자 일기도 읽어봤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춘추의 ‘빡셈’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춘추의 이미지는 오히려 무의미하게 낭비할 수 있는 내 대학생활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보장해줄 것만 같았고 바쁨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게 해줄 것만 같았다.


나에게 있어 춘추라는 존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이러한 환상을 갖고 춘추에 들어온 나는 이 환상이 깨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아픔을 겪었다. 춘추라는 조직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 막막한 존재였다. 여기서 내가 ‘조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처럼, 춘추가 지닌 조직문화는 생소하면서도 결코 쉽게 적응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선후배 관계가 아닌 부장과 기자의 관계, 어찌 보면 이 시스템이 춘추라는 조직이 원활히 굴러갈 수 있게 하는 큰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환경이었기에 한동안은 춘추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1학년 1학기, 즉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춘추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 학과활동이나 동아리활동은 먼 이야기였다. 물론 춘추 내에서도 다양한 외부활동을 충실히 해내는 능력자가 있는 것처럼 이는 지극히 개인의 문제이다. 그러나 애초에 성격이 내성적이고 여러 일을 동시에 못하는 나는 춘추 이외에 다른 것들을 신경 쓸 능력과 겨를이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춘추에 매달렸고 춘추 동기들과 친해지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인간관계는 더욱 협소해졌고 춘추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내 자신은 너무나 초라해졌다. 파파*는 춘추를 하면서 남는 건 동기뿐이라는 조언을 해줬는데(물론 동기들이랑 친하게 지내라는 의미였겠지만) 오히려 대학생활을 하면서 춘추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여전히 소중한 107기 동기들
 

수습기자 때는 ‘수습기자 과제를 못했는데 어떡하지’를 걱정했다면 부기자인 지금은 ‘아직 취재도 못했는데···기사는 나갈 수 있으려나’라는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애초에 춘추의 ‘빡셈’을 알고 들어왔지만 내가 실제로 경험한 이 ‘빡셈’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수습 때나 지금이나 걱정과 근심이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내성이 생기기는커녕 하루하루 고통스러워하며 다음 주에는 미리미리 준비하자는 일회성 다짐만을 반복할 뿐이다. 지금 나는 바쁨 속에서 살아 숨쉬는 내 자신이 아닌 점점 피폐해지는 내 자신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러니까 춘추다



사실 지금까지 구구절절 써내려온 내 사연을 읽어보면 여타 다른 부기자 일기와 다르지 않다. 혹자는 부기자 일기의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춘추에 대한 고뇌를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일지 몰라도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나뿐만 아니라 내 윗기수의 수많은 동인들 또한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동일한 문제로 고민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고뇌의 흔적들이 부기자 일기에 계속 등장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춘추다’라는 동인들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춘추를 하면서 내가 충분히 예상했던,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은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나는 이것을 일종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단순히 춘추를 애증의 대상이 아닌, 내가 이 숱한 문제들을 딛고 일어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싶다.


*파파: 연세춘추에서 수습기자들을 관리하는 편집부국장을 일컫는 말

 

이가람 기자  riverbo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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