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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웹툰의 계절
  • 박정현 기자
  • 승인 2011.11.07 19:12
  • 호수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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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G 스마트폰이 대한민국을 강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4G LTE 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게 됐다. 유선으로, 그리고 무선으로 사람들은 인터넷에 ‘항시 접속 중’이다. ‘인생’과 ‘인터넷’이라는 단어는 이제 따로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빠져든 것이 확실해 보인다. 20대는 더욱 그렇다. ‘N세대’니 ‘디지털 네이티브’니 하는, 현재의 청(소)년층을 지칭하는 단어들은 인터넷을 절대 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인터넷은 20대의 문화와 사고 그리고 개인을 살펴보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인이 됐다.

▲한국외대 김수환 교수는 책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에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웰컴 투 더 <이말년 월드>」을 발표해 20대와 웹툰 그리고 병맛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냈다.

한국외대 노어과 김수환 교수는 “현재 청년층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보편적 사건이 예외 없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경유하는 매개적 양상을 보인다”고 말한다. 87년 세대, 월드컵 세대, 촛불 세대 등 개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세대는 공통적으로 겪은 사회·문화적 경험으로 인해 묶일 수 있는데, 현재 젊은 층은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김 교수는 20대가 ‘자신들만의 고유한 매체, 곧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매체’로서 ‘웹툰’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웹툰의 성장과, 파!격!

웹툰이 눈여겨볼 만한 팽창력과 함께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포털사이트에 ‘웹’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추천검색어로 곧바로 ‘웹툰’이 뜨고, 네이버 웹툰의 평균 조회수는 300만을 넘어선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발맞춰 포털사이트들은 앞 다퉈 웹툰 서비스를 확충하고 있으며, 웹툰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 역시 점차 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웹툰 역시 점차 변화하는 추세다. 초기 웹툰은 단행본 만화를 화면에 올려둔 형태였는데 현재는 웹툰 만의 내러티브와 표현법을 다양하게 정립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바야흐로 웹툰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웹툰들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웹툰작가 하일권씨의 『삼봉이발소』같은 스토리 위주의 웹툰에서 조석의 『마음의 소리』로 대표되는 개그웹툰, 그리고 낢(본명 서나래)의 『낢이 사는 이야기』부터 대중화 된 생활툰까지 수많은 장르의 웹툰들이 창작되고 있다. 이렇게 차려진 웹툰 한 상에, 한 방울 그러나 강력한 조미료가 투하됐으니 그 이름하여 ‘병맛’이다. 이말년(본명 이병건)의 『이말년 씨리즈』를 필두로 몰락인생(본명 이현민)의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 기안84(본명 김희민)의 『패션왕』으로 이어지는 ‘병맛웹툰’들은 독자들이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병맛으로 매혹시키고 있다.

병신 같은 맛? 병신스러운 멋!

‘병신 같은 맛’이라 했다. 병맛은 분명 인터넷 문화, 그 중에서도 20대 청년층 문화의 핵심에 가장 가깝게 관통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병맛은 단순히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는’ 느낌만을 말하는 게 아니란 이야기다. 김 교수는 병맛이 웹툰과 만나 ‘병신 같은 맛’에서 ‘병신스러운 멋’을 지니게 되는 변화에 주목한다. 그는 병맛이 마땅히 지녀야 할 저열함과 어이없음이 ‘합의된 코드’로 사용됨으로써 언어와 코드로 기능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언어와 코드가 현재를 살아가는 20대 청년층의 감수성과 지향을 담아낸다고 논의를 이어간다. 병맛에 20대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이야기다.
병맛이 20대의 코드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완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와, 남에게 완전한 삶(스펙과 스토리텔링이 겸비된)을 보여줘야 하는 자기소개서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기승전결을 갖춘 삶과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는 현실을 소위 ‘기승전병’이라는 서사구조의 파괴로(혹은 부재)로 넘겨버리고자 하는 시도를 찾을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그가 또 하나 주목하는 개념은 ‘잉여’다. 병맛과 항상 한 쌍으로 등장하고, 웹 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잉여라는 개념이 ‘유희적 공통 코드’로서의 성격을 띤다는 주장이다. 잉여는 냉소적이고 패배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주변부조차 되지 못하고 그저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돼버린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여와 함께 발현되는 ‘잉여짓’을 통해 잉여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김 교수는 “쓸데없는 일에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는 역설적 상황 자체에 핵심이 있다”며 잉여성의 핵심을 정의한다. 병맛을 즐기는 잉여스러운 행위에서 ‘무목적성의 유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소일거리로 보는 것이라고, 그림조차 못 그린다고 웹툰을 경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 웹에 의해 자유롭고, 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20대 청년층의 현실에서, 웹툰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즐기는 사람에게도, 그리는 사람에게도, 문화를 읽어내는 사람에게도 웹툰은 너른 벌판과도 같은 곳이다. 아직 일궈먹을 거리도 많고 발견할 거리도 많은 벌판 말이다.

박정현 기자 jete@yonsei.ac.kr

박정현 기자  jet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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