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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 이야기전통의 향기 #7

 

   
▲ 청자 상감 모란문 매병. 흰색으로 상감한 모란잎의 끝에 붉은 동화(진사)로 하이라이트를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옛 도자기의 표면에 그려진 그림의 색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중 파란 색을 띠는 것은 코발트를 원료로 한 청화 안료로 그린 것이고, 갈색을 띠는 것은 산화철이 주재료인 철화 안료를 사용한 것이며, 붉은색을 띠는 그림은 이른바 ‘진사’라고 불리는 안료로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청화나 철화에 비해 진사로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는 그리 많지 않고, 있다 해도 다른 기법과 병행하여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었다. 이번에 살펴볼 주제는 이 진사 안료에 관한 것이다.

진사(辰沙)는 원래 수은 화합물의 일종인 황화수은(HgS)를 뜻한다. 주사(朱沙)라고도 해서 한약재로도 쓰이는 이 광물은 붉은 빛을 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나 부적을 쓸 때 붉은 색을 내기 위해 사용했다. 하지만 정작 도자기에 쓰이는 진사 안료는 색이 진사와 비슷할 뿐, 진짜 진사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 도자기의 진사 안료의 주재료는 구리(동)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사 안료에서 붉은 색을 내는 주 요소는 산화동(CuO) 또는 탄산동(CuCO3)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물인 황동석(CuFeS2)과 공작석(Cu2CO3(OH)2) 등을 정제하여 만든다. 그래서 요즘에는 더 정확한 ‘진사’라는 말 대신 청화, 철화와 비슷하게 ‘동화(銅華)’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 복숭아 아랫부분의 녹갈색이 진사(동화) 안료가 산화되어 붉은색이 나지 못한 예이다. 다만 이 연적의 경우 나뭇가지의 느낌을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산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이 구리 안료는 높은 온도에서는 휘발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고온에서 구워지는 도자기에서 아름다운 붉은색을 내기 힘들다. 그래서 초기의 동화 발색은 녹색이나 갈색을 띠는 것이 많았다. 동화 안료가 고온에서도 제 색을 내기 위해서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공기 유입을 막아 불꽃이 환원염이 되도록 해야 한다. 동화에 산화염이 닿게 되면 붉은 색이 아닌 녹갈색이 나오기 때문이다. (산화염과 환원염에 관하여는 http://kumroa.com/7을 참고)

   
▲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 무신정권기의 권력자였던 최항(崔沆)의 묘지석(墓誌石)과 함께 출토된 것으로 보아 13세기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진사(동화) 안료로 진홍색의 붉은 빛을 처음으로 낸 것은 고려시대의 도자기 장인들이었다. 상감청자가 최고로 발달했던 12세기경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진사로 빛을 낸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기법을 남용하지 않았고, 포도덩굴에 달린 포도알이나 모란꽃의 꽃잎 끄트머리, 용의 여의주 등 하이라이트를 주고 싶은 곳에만 사용하여 절제 속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원대에 만들어진 유리홍 매병. 중국의 유리홍 작품은 기물 전체에 유리홍으로 빽빽하게 문양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반면 중국에서 청백자에 구리로 붉은색을 내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늦은 14세기 중반 원나라때였고, 명(明)의 선덕(宣德)연간(1426~1435)에 이르러서야 기법이 완성되었다. 중국에서는 이 발색기법을 유리홍(釉裏紅), 즉 유약 아래의 붉은색이라고 불렀다. 특히 경덕진요에서 많이 생산되었던 중국의 유리홍 자기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검붉은 유리홍으로 도자기 전체에 걸쳐 문양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역시 붉은 색을 좋아하는 나라답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 백자진사죽문호. 한동안 도자기에 보이지 않았던 동화(진사) 기법은 18세기 도자기에서 다시 등장한다.


고려청자가 쇠퇴하여 분청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동화기법은 한동안 한국 도자기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수 세기 동안은 청화백자와 철화백자만 보일 뿐 진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풍속화나 민화가 유행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예술의 한 분야로 떠오르는 18세기에 들어서, 한동안 잊혀졌던 동화 기법도 다시 등장하게 된다.

   
▲ 백자진사채양각쌍학문연적. 돋을새김한 두 마리 학을 제외한 연적 전체에 동화(진사) 안료를 입힌 대담한 기법을 구사하였다. 진사채의 발색이 상당히 우수한 편이다.


조선시대의 동화 백자는 연화문, 송학문, 산수문, 포도문, 대나무문 등이 동화로 그려진 백자가 전해져 온다. 또한 19세기에 들어서는 청화나 철화 문양과 함께 동화 문양을 베푼 화려한 백자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특히 문양 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통채로 동화 안료를 입힌 ‘동화채’라는 전례 없는 과감한 표현 방법을 가진 백자가 보이기도 한다. 또한 청화나 철화와 겹쳐서 동화 안료를 사용하여 특이한 색감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지우군  yondo@yonsei.ac.kr

지우군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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