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기요! 잠시 만요!”
현민은 남자를 보며 소리쳤다.
“저 그 제품 볼 수 있을까요?”
“험… 험! 이 제품에 관심이 가는가? 그렇겠지 아직 인터넷에 올라오지도 않은 신상이니 말일세. 가장 최근 제품이네. 사용법을 보여주지”
남자는 손에 들려있던 은색 볼펜을 꺼내어 들었다. 담배를 입에다 물고 다른 손으로 볼펜의 윗부분을 돌렸다.
"이건 단순한 볼펜이 아니란 말이지 이것 좀 보게"
남자가 볼펜의 뒷부분을 돌리자 볼펜의 끝에서 불빛이 나왔다.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볼펜에서 나오는 듯 보였지만 그 것은 담배연기에 의한 착시인 듯했다. 어두운 컴퓨터실에서 볼펜의 끝 부분이 밝은 빛을 발하였다. 컴퓨터를 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꿈의 세계제품을 처음 보는 듯 고개를 돌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 남자와 현민에게 집중을 하였다.
"이게 자료공간이라네."
남자가 가리킨 곳은 빛이 담배연기를 비추고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다 볼펜의 끝을 가져다 대고 글을 쓰면 허공에 글이 써지네. 간단한 입체 도형들은 생각만 하면-"
남자가 잠깐 멈칫 거리더니 정육면체의 입체 도형이 허공에 생겨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렴풋이 보일 듯 말듯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간단한 도형들도 그릴수가 있네. 험…! 어떠한가? 대단하지 않은가?"
현민은 놀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분명 어제 호텔에서 보았던 청년과는 다른 느낌 이었다. 그 청년은 분명히 실제였다. 현민은 이내 관심이 사라진 듯 고개를 숙였고, 한 숨을 내쉬었다.
"아… 네, 제가 생각하는 제품과는 조금 다르군요."
남자가 현민의 말을 듣고 당황스러워했다.
"험…… 이게 별로라는 건가? 이걸 한번 보게"
현민은 고개를 들어 빛이 나오고 있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희미하지만 아까 공항에서 비행기로 넘어올 때 볼 수 있었던 비행기의 형체가 보이고 있었다. 이번 비행기도 투명하게 보였지만 아까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이것은 내가 비행기 타기 전 미리 저장해 놓은 이미지 일세. 험! 험! 게다가 내가 보고 싶은 비행기의 내부도 관찰해 볼 수 있네. 어떤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꿈의 세계 제품이란 정말 놀라운 제품들만 있는 것 같네. 자네도 그런 이유 때문에-"
남자가 생각하는 이유가 어찌됐건 상관없다는 듯이 현민은 비행기를 들여다보았다. 현민은 비행기를 손으로 돌려 보았다. 비행기의 상세한 부분까지 전부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비행기 내부의 좌석과 1층 로비 그리고 현재 자신이 있는 컴퓨터실의 위치도 보고 싶다면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어제 청년이 보여주었던 지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저… 이거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험…! 이건 꿈의 세계 고위 간부가 내 어릴 적 친구라서 가능한 이야기지 자네같이…"
남자는 현민을 밑에서부터 위로 훑어보았다. 현민의 옷차림은 상당히 단정한 옷차림이었다.(13일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았던 터라 더렵혀지지도 않아 있었다.)
"자네… 정도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 험험! 자네 이름이 뭔가?"
남자는 괜히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했다.
"저…는 조현민이라고 합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 같은데…."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현민의 말을 하였다.
"험! 나는 올란드라고 하지. 내 말은 명함을 달라는 것 이었네."
현민은 남자의 말을 듣고 자신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명함이 두툼하게 손에 집혔다. 현민은 그 명함뭉치에서 명함 한 장을 집었다. 그러나 안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민은 명함을 꺼내지 않고 손만 빼며 말을 하였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저는 명함을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제 비서가 들고 다녀서… 죄송합니다."
현민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현민은 키가 자신보다 큰 올란드의 살찐 눈두덩을 위로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올란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 이건 내 명함이네. 험… 자네 언제 한번 밥이라도 한 끼같이 하지."
그 남자의 손에서 들려 나온 명함은 금박으로 된 명함이었다. 그 명함을 현민은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연락처와 올란드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명함의 윗부분에는 '오이쯔만그룹 회장' 이라고 명함보다는 밝은 금박으로 적혀져 있었다.
"오이쯔만그룹… 회장이시군요.… 제가 다음에 한번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현민은 금박의 명함을 안주머니에 있는 자신의 명함들 사이에 끼어 넣으며 말을 하였다.
"험… 자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로비로 나갈 생각인가? 나는 이곳에 앉아서 담배나 태우며 기다릴 생각이네."
"아… 네, 저는 잠을 한동안 자지 못해서 한숨 푹 자려고 합니다만 담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현민은 떨리는 듯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현민은 컴퓨터 실 안쪽으로 걸어가는 올란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현민은 올란드의 모습이 완전히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남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현민은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명함 두 장을 꺼내었다. 명함 하나는 아까 올란드에게서 받은 황금색 명함이었다. 다른 하나는 평범한 흰색 명함 이었다. 현민은 겹쳐져 밑에 가려있던 흰 명함을 금박 명함위로 올렸다. 그 명함에는 검은 잉크로 조현민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명함의 윗부분에는 '오이쯔만그룹 정보기술팀 대리'라고 쓰여 있었다. 현민은 올란드가 사라진 방의 안쪽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어두운 공간에서 컴퓨터 모니터에 반사되어 보이는 무수한 담배연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아…”
현민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꺼내었던 명함 두 장을 자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컴퓨터 실 자동문을 나섰다. 흰색 바지의 사이로 금빛의 종이가 희미하게 비쳐 나왔다. 현민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손을 턱에 괴고 고개를 숙인 채 컴퓨터실을 나왔다. 현민이 나왔을 때 로비는 매우 조용하였다. 현민이 고개를 들자 로비가 조용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로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현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변은 현민이 고개를 들자 웅성대기 시작했다. 현민은 시선을 로비의 위쪽으로 가져갔다. 로비는 중앙이 뚫린 형태로 3층에서도 로비를 바라 볼 수 있었다.(로비의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고, 천장은 황금빛의 여러 가지 무늬로 수놓아져 있었다.)현민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하던 도중 멈추고 현민을 본 듯 모두 넋을 놓고 방금 막 컴퓨터실에서 나온 현민을 보고 있었다. 3층에는 온통 금으로 장식이 되어있는 층이었다. 마치 루이 18세의 전신 모습이 그러져 있는 그림의 배경을 연상시키게 하였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두세 명씩 모여서 한손에는 커피나 불을 붙이기 전의 두툼한 시가를 들고 있었다. 로비 2층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는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었고 현민이 신포니에테 공항에 있을 때 보았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로비 1층에는 현민과 그 이외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현민의 얼굴은 붉어졌다. 현민은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로비의 한쪽에 있는 호프바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호프바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도 현민에게로 쏠려 있었다. 현민이 호프바로 들어가자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일시정지 되었던 동영상이 다시 재생되듯 움직였다. 사람들은 호프바의 입구로 몰렸다. 로비바깥 호프집의 입구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요리사 복장의 사람들부터 괜찮은 양복을 입을 사내까지 전부 호프바의 입구로 몰렸다-
"주문하시죠."
호프바의 주인이 무성의하게 물었다. 현민은 등을 웅크린 채로 높다란 의자에 앉아서 주인을 바라보았다. 현민은 여전히 신중한 모습이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에이 씨~! 조용히 안 해?!"
조현민의 옆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던 사내가 언성을 높이며 말을 하였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마셨는지 사내의 얼굴은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져 있었다. 사내의 입에서는 고약한 술 냄새가 풍겼다. 현민은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막았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사내와 멀어지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내는 호프바 테이블에 거의 붙어 있었다. 몸을 조금 일으키더니 자신이 마시던 술병을 한 모금 깊게 마시고는 현민을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현민과 사내의 눈은 서로 마주쳤다. 현민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돌려 술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사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한손에 들려있던 술을 휘두르며 호프바 주위로 몰린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다.
“이 새끼가 부러워? 부럽냐고! 이 나라에서 돈 많은 게 행복해? 이런 병신 새끼들! 평생 돈이나 좇으면서 남 뒤꽁무니나 닦으면서 살아라! 그렇게 더럽게 살아남아서 늙으면 누가 좋아해 준다냐!”
현민을 술이 들려 있는 손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너! 입고 있는 그 옷! 하! 내가 만든 거 같은데? 이거 엄청 싸다고. 당신이-”
사내는 현민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현민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현민을 가리키던 손가락으로 현민의 가슴팍을 찔러대며 말을 이었다.
“멍청해서 이걸 비싼 돈을 주고 샀는지! 어디 한번 대단한 사람 흉내 낸다고 거짓말을 한 건지! 똑바로 대답해봐. 여기 너무 시끄러운 것 같지 않아? 명색에 조용한 걸 즐기는 양반이라면 빨리 사람들 보내는 게 낫지 않아?”
사내의 말은 처음에는 술에 취해 꼬이는 말투였다. 하지만 점점 목소리는 차분해 지면서 현민을 바라보는 눈에 힘이 생겨갔다.
“저 양반 큰일 나려고!”
“누가 저 사람 말려 봐요!”
몰려있던 사람들이 놀랬는지 사내의 팔을 잡아끌며 말을 하였다. 그중에서 한 남자가 무리 속에서 나오더니 현민에게 몸을 숙여 죄송하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어유 죄송합니다. 이거 이분이 술을 너무 많이 드셨나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과하는 남자와 술에 취한 사내 그리고 현민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아… 예… 뭐, 괜.찮.습니다. 술을 마시면 그럴 수도 있죠.”
현민은 한껏 부풀려진 가슴을 줄이며 말을 하였다. 몰려있던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마다 의외였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 죄송합니다. 여러분, 이 분 심기 건드리지 마시고 어서 가보십시오”
남자의 한마디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웅성대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정말 부자가 아닐지도 몰라”
“떼끼! 이 사람아! 그런 말 함부로 했다간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
호프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뜨면서도 웅성거림을 끊이질 않았다. 그러자 미처 상황을 지켜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뒤돌아 나오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난거냐며 물어보기에 바빴고, 되돌아 나오는 사람들 위로 고개를 빼고는 호프바 안을 살펴보려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 호프바의 문은 ‘탁!’ 소리를 내며 닫혀버렸다.
현민은 사람들이 가고 나서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리 속에 있던 남자를 향해 인사를 꾸벅하였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에게 한 번에 이런 관심을 받아 본 것은 처음이라 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현민은 남자를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하! 하! 하! 괜찮습니다. 뭐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혹시 신포니에테에서 커다란 사고를 당하신 분이 아니신지요?”
남자는 술에 취한 사내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히며 말을 하였다.
“아……!네! 맞습니다. 제가 신포니에테에서는 좀 유명한가봅니다? 저번에 어떤 청년도 저를 알아보더니 여기서도 알아보시는 분이 계시네요?”
현민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하였다. (가족만 자신을 알고 심지어 회사 동료들도 현민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현민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니……신기한가보다.)

조현민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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