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 사는 연돌이는 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나서 기숙사 식당으로 향한다. 아뿔싸, 점심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지만 음식도 없고 앉을 자리도 없다. 연돌이는 옆에서 맛있게 식사하고 있는 등산객들이 괜히 원망스럽다. 서대문구에 사는 1학년 세순이는 난생 처음으로 학교 축제에 참여했다. 온 몸에 짜릿한 전율이 인다. 그녀는 문득 내년엔 동생도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에게 눈치 보일 것 같아서 이내 관둔다.

모름지기 대학은 교육과 문화를 환원하는 것으로 소속된 지역사회에 봉사해야 한다고들 한다. 외국의 경우 대학신문이 지역신문으로까지 확대될 만큼 대학과 지역사회의 관계가 긴밀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 특히 서울권 사립대학의 경우 지역사회와 별다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우리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신촌을 끼고 서대문구에 소속된 우리대학교(신촌캠)는 서대문구 지역주민들에게 원활한 시설 개방을 허용해주지 않을뿐더러 별다른 교류를 추진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대학교의 개방 실태

우리대학교 학생회관으로 현장실습을 나온 파주 한빛 초등학교 아나운서부 학생들

지난 3일, 경희여중 교사 차은경(47)씨는 공연을 위해 우리대학교 백주년기념관을 대관했지만 대관료가 턱없이 비쌌다. 학교 시설 개방이 마치 영리추구 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는 차씨의 말에선 불쾌감이 묻어 나왔다. 비단 비싼 대관료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우리대학교는 ‘테니스장’을 제외하면 지역주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사실상 거의 없고 이조차도 학생들의 수업과 겹치지 않는 새벽 시간에만 이용이 가능하다.

지역사회에 ‘교육’을 환원시키는 장이 돼야 할 대학이 주민들의 중앙도서관(아래 중도) 출입을 금하는 것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는 우리대학교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서울권 사립대에선 학생들의 편의를 명분으로 일반인의 도서관 출입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외대는 지난 2002년부터 이문동 주민에 한해 일반인 출입을 허용하는 등 지역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외대 학술정보원 담당 오길수씨는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와 공헌의 일환으로 중도 개방이 시행됐고 근 10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별 탈 없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반엔 학생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학생과 지역주민의 조율 끝에 교육공동체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을 열쏘냐, 활짝?

그렇다면 학교 문을 무작정 활짝 여는 것이 훌륭한 방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등록금의 일부가 시설 이용권으로 부담되는 만큼 대학 시설은 그 주체인 학생들이 이용해야 한다”는 A씨의 말처럼 대학시설은 우선적으로 학생들이 이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체육관, 공연장, 노천극장 등을 아무런 제한 없이 개방하면 마땅히 이용해야 할 학생들이 마음껏 이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게릴라 인터뷰에 따르면 주민들의 중도 이용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좌석 쟁탈이 좌석 전쟁으로 번질 우려 때문이다.

시설 개방이 함부로 이뤄질 수 없는 이유는 셔틀버스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종래 학생증 제시가 원칙이었던 셔틀버스는 편의를 위해 그 절차를 없앴다. 그러다보니 지역주민들이 무분별하게 셔틀을 이용하게 돼버린 것이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바람에 북적거렸던 셔틀이 더 북적대게 됐어요. 정작 이용해야 하는 학생들이 자리가 부족해 못 앉는 경우도 더러 있고요” 셔틀버스 기사 황경연(51)씨의 말에선 기준 없는 시설 개방이 초래한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대학이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역할은 크지만 아무런 제한 없는 개방과, 무분별한 지역주민의 교내 유입은 뜻하지 않은 피해를 낳을 수도 있다.

연대 안하는 연대

무릇 시설 개방만이 화두인 것은 아니다. 우리대학교는 현재 서대문구와의 교류도 부족한 실정이다. 학생복지처 여성복지팀과 서대문구청의 협력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드림스타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현재 서대문구와 교류하는 공식적인 프로그램은 없다.

반면 원주캠 대외협력부에선 콘서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연간 8~9번에 이르는 음악회를 개최해 원주시민들을 초청하고 있으며 평일에도 노천극장과 대운동장 등을 개방하고 있다. 본디 군사도시였던 원주시가 원주캠 의공학과의 영향으로 의료기기도시로 탈바꿈한 것 역시 지역사회와 함께 교육공동체를 이끈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원주캠 대외협력부 왕정일 부장은 “원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중 하나가 원주캠인 만큼 많은 원주시민들이 캠퍼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신촌캠의 실태를 돌아보자. 우리대학교는 교육공동체는 커녕 축제 문화조차 지역사회에 공급되지 않고 있다. 이대부고 박재현(19)군은 “아카라카 같은 문화행사의 입장권을 서대문구 사람들에게도 배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사들 역시 같은 입장이다. 파주 한빛 초등학교 교사 한수진(30)씨는 “청소년들에겐 대학 문화 체험 자체만으로도 큰 경험과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축제 참여가 연세인들의 불만을 초래할 수도 있고 현실적인 가능성이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있다. 축제를 주최하는 아카라카 응원단장 김규형(물리.07)씨는 입장권 배분의 확대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가 된 부분이지만 재학생들조차 입장권을 모두 갖기는 힘든 실정이어서 지역주민에게 개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상적인 교류, 멀리 있지 않아

그렇다면 지역사회와의 공동체 문화를 이끌 바람직한 교류의 방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서대문구청의 후원 하에 학생들이 직접 주관한 ‘연세로 축제(신촌대학연합축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대학교 동아리연합회(아래 동연) 회장 김삼열(경영․08)씨의 기획으로 시작된 제1회 연세로 축제는 우리대학교를 비롯한 신촌 내 대학 학생들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까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교류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김씨는 행사의 취지에 대해 ‘20대의 화두를 지역사회 소속인들과 함께 모색하는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학생과 지역주민들이 7:3의 비율로 축제를 즐겼고 이와 같은 교류는 문화공동체를 이끄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개방과 교류, 이전에 선행돼야 할 마찰과 조율

지역사회에 대한 개방과 교류. 물론 대학의 입장에선 양날의 칼일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의 편의를 추구하자면 다른 쪽에서 불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 대한 환원’이란 모름지기 개방과 교류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을 조율해 나가는 것까지 포함된다.

우리대학교 학생들 대상으로 인터뷰 중인 파주 초등학교 아나운서부 학생과 인터뷰에 응해주는 연세인들. 이들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교류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느껴본다.

시작부터 완벽한 프로젝트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외대의 중도 개방도 초반엔 학생들의 거센 항의를 감당해야 했고, 연세로 축제 역시 신촌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들이 설득과 양보를 통해 서로 조율해간 덕택에 성공적인 성과를 이뤄낸 것처럼, 우리대학교도 이젠 좀 더 조율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드림스타 프로그램: 지난 2009년 학생복지처 여성복지팀에서 서대문구청과의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한 프로그램.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멘토가 돼 서대문구에 소속된 저소득층 학생들 대상으로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젝트다.

글 김유빈 기자 eubini@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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