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터 우메,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7권까지 나왔으며, 연재중입니다. 연재속도가 극악으로 느려서 다음 권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흑흑

 

포스트 대학 만화


내 짧은 오타쿠 경험을 비추어서 생각해보면, 내가 봤던 것 중에 20대 이상의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 애니메이션이 별로 없었다. 판타지물도 그렇고, 현실 연애물도 다수가 10대 고등학생, 가끔은 중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로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어린 초등학생들이 나오는 만화들이 있다면 있었다. 애초에 이 연재를 시작한 이유도 중고등학생 연애물 말고 좀 다른 만화들을 독자들(이 있다면)과 같이 찾아보자는 뜻에서였다.
이 만화는 여태까지 소개했던 만화들보다는 오타쿠에 조금 더 가깝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있는 일본 단행본 만화이기도 하다. 더구나 표지에 예쁜 여자애도 그려져있다. 이 마치 어디에서 본듯 한.
내용을 몇 페이지 보고 88만원 세대 비슷한 것, 아르바이트 등의 이야기가 나와서 쭉 읽어갔다. 주인공 우오즈미, 표지의 예쁜 여자아이 하루와 그녀의 까마귀 칸스케, 우오즈미의 대학때 친구 시나코 등 모두, 고등학교를 어느 시점에서는 마치는 사람들이다. 까마귀는 빼고.

 

하루 실물.

 

아무 일 없이 좋아하는 사람 찾아가기

우오즈미는 프리터다.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꾸려간다. 우리나라보다 시급이 세 배정도는 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방에서 멀쩡하게 밥 해먹고 산다. 생활에 그리 큰 불편함은 없다고. 그러던 어느 날 자칭 이상한 수수께끼의 소녀가 편의점에 찾아온다. 까마귀를 데리고. 맨날 놀러가자고 조르고, 밥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조르고. 우오즈미는 싫어할듯 하면서도 좋아할 듯 하고, 정말 뜨듯미지근하다. 사진이 취미지만, 뭐 그렇게 열심히 할 마음은 없다.
하루도 프리터다. (이런 잉여들@!) 그녀는 어느 바에서 일을 한다. 주인 언니도 착하고, 일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그럭저럭 먹고 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곳에서 알바를 했다고 학교에서 그녀를 제적시켰기 때문이다. 그녀는 학교에 대해 그리 큰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매우 활기찬 표정으로 우오즈미의 편의점에 들러서 그를 놀래키기도 하고, 가끔은 같이 놀기도 한다. 그렇다고 막 사랑에 빠진 눈치는 아니고, 오히려 그렇게 그를 놀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나코는 프리터가 아니다. 얘는 착실하다! 하루의 고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채용되어 일하다가 정식 교사로 채용된다. 우오즈미의 잉여로움과는 선을 긋는 세련된 직장인스러운 분위기를 내뿜는다. 우오즈미와는 대학까지만해도 서슴없이 서로의 방에 가서 차만 마시고 밥만 먹는 사이었다. (거짓말 아님) 졸업하고 어느새 서로가 있음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고, 그게 조금씩 어색해진다. 그러면서 시나코는 우오즈미에게 힘껏 고백을 받지만, ‘서로 재밌던 친구로 있고 싶어.’라고 애매하게 거절한다.



애매한 것을 굳이 정하고 싶지 않다


이들의 관계는 한마디로 애매하다. 답답할 정도로 애매하다. 하루는 우오즈미를 자기 방에서 자고 가도 된다고 할 정도로 그에게 넓은 마음(...)으로 대하지만 그는 ‘이런 무방비한 녀석’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고서 한숨을 쉬지만 내일의 할일도 있으니 한숨 잔다. 하루는 또 놀자고 한다. 어느날 그녀는 우오즈미에게 ‘너에게 이렇게 해서라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네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을 것 같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너한테 달라붙을거야’ 비슷하게 말한다. 내가 들은 심리학 선생님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이 남에게 영향을 줄 거라고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오즈미와 시나코는 좀 덜 그렇다. 시나코에는 10대 때의 자신이 좋아했던 이웃 친구 오빠가 있었지만(그의 뒤를 계속 바라보았다고 한다), 얼마지 않아 죽었다. 그녀에게 딱 적당한 말을 기형도 시집 해설에서 찾았다. ‘여기 있지 않는 존재, 여기 있는 존재하지 않음’ 그 때문에 그는 연애하기가 귀찮다고 잘라 말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 연애하기 귀찮음에 꼭 이유를 붙여야 할까 생각이 든다. 상대가 귀찮을 때도 있다. 생각날 때도 있지만 그런 때는 생각만큼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보면 기쁘고 웃기고 재밌고, 아주 가끔 행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들은 하루의 ‘난 우오즈미에게 세컨일 뿐이야’하는 한숨, 편의점 일, 바 일, 옛날 추억, 여러 걸림돌, 의심, 불안 등과 함께 회전판에서 돌아가서, 사실 그리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장면에서 만화도 가장 아름다워지지만, 단언컨대 그러한 순간은 여태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만화는 아까 그 회전판처럼 애매하고 희끄무레죽죽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몇 개를 찾아볼까. 일단 사랑/연애 말고 구질구질한 평소의 ‘삶’이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비중을 갖는다는 것이다(이해가 어렵다면 정직하게 중학교 때를 되뇌어보자). 그 다음은 내 추측이다. 사랑을 찾으면, 그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반짝이는 순간들을, 정말로, 정말로 소중히 마음에 박아놓아야 한다는 것. 사랑은 삶으로 돌아올테니. 우리들의 삶은, 삶에 가깝지 사랑에 가깝지 않다.


*다음에 무얼 쓸까요? 원피스, 웹툰 제외하고 아무거나 괜찮으니 다음 연재분에 올릴 글 추천주세요! 답글 없으면 전 뭐 다시금 교보문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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