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속 영화관

 

 

 

감독: 토니 길로이 / 조지 클루니, 톰 윌킨슨, 틸다 스윈튼, 시드니 폴락 / 미국, 2007
일시 : 11월 1일(화), 2일(수) 오후 6시 10분
상영장소 : 학술정보관 2층 멀티미디어센터 내 미디어감상실
상영시간 : 119분


『마이클 클레이튼』은 변호사가 주인공인 스릴러의 전형적 스토리 라인을 따라갑니다. ‘의문의 죽음, 486명의 희생자, 30억 달러의 기밀문서. 그리고 모든 진실은 조작되었다!’라는 영화 카피만 봐도 어떤 영화일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거대 집단의 음모와 악행을 알게 된 개인이 정의를 위해 외로이 맞서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전형적인 법정스릴러로만 받아들인다면 그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장르적 쾌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실존적 딜레마입니다.

술집을 샀다가 영업에 실패해 빚을 떠안았습니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7만5천 달러를 사채업자에게 갚지 못하면 봉변을 당합니다. 이혼 뒤 외롭습니다. 어린 아들과는 이따금씩 학교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만 토막 대화를 합니다. 17년간 재직했는데도 대형 로펌의 임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저 다른 변호사들이 맡기 싫어하는 지저분한 사건만 처리할 뿐입니다. 이처럼 클레이튼은 전형적인 영웅이 아닙니다. 빚에 시달리고, 애인도 없고, 온갖 협잡으로 고객을 궁지에서 빼내주는 전형적인 변호사일 뿐입니다.

“기적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던데.” 의뢰인들의 칭찬에 마이클 클레이튼은 답합니다. “난 그냥 청소부입니다.”

어느 날, 같은 회사의 절친한 동료 변호사가 죽습니다. 죽음 주변을 떠돌던 그는 동료가 뭔가를 폭로하려다 변을 당했음을 직감합니다. 스스로의 하루하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일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 그러나 곤궁과 권태에 찌든 마이클 클레이튼의 삶은 이제 총체적 난국에 부딪히게 됩니다.

최근 영화 『도가니』를 보신 분이라면 배우 공유의 역이 처한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늦은 나이에 거액의 돈을 주고 겨우 자리를 얻은 교사 자리. 아픈 딸과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바로 그 학교에 대한 어두운 진실을 목도하게 된 그에게 말입니다. 『도가니』 속 공유의 모습이 소시민의 비루함을 가슴 저리도록 드러내면서도 ‘그가 목도한 진실’의 무게에 방점을 찍는 반면, 『마이클 클레이튼』은 ‘진실을 목도한 그’에게 방점을 찍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뒤이은 마이클의 행동을 진실에 맞서는 정의감으로, 보잘것없는 남자의 영웅으로의 환골탈태로 포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다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이제는 적어도 (사람처럼) 살기 위하여 현실과 대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을 딴 『마이클 클레이튼』이라는 제목은 ‘마이클 클레이튼을 마이클 클레이튼 그 자신의 존재로 살도록 되돌려 보내는 이야기’라는 뜻에서 지어진 것 같습니다. 용감하고 영민하게 거대 비리를 폭로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자기 자신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겨우 성공한 사내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 해 최고의 엔딩이라는 찬사를 받은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그는 택시를 타고 “아무 데나 가자”고 합니다. 택시 안에 앉아 있는 주인공의 얼굴을 카메라는 긴 시간으로 보여줍니다. 비로소 그가 모든 가면을 벗고 맨 얼굴의 자기로 돌아와 있을 때, 말 한마디 하기 힘들 정도로 지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영화는 끝납니다. 50달러만큼의 드라이브를 요청하고 침묵하는 그의 표정은 승리자의 것도, 패배자의 것도 아니라,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섰음에도 여전히 삶의 고단함을 감추지 못하는 자의 것입니다. 더러운 음모의 그물에서 마침내 빠져나와 진실을 본 것 같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확신할 수 없는 자의 모호한 표정. 그것은 단순히 진실한 표정이 아니라, 진실의 무거움을 대면하고 만 유약한 인간의 가장 정직한 표정입니다.



김선명(국문·06) / 멀티미디어센터 영화클럽 '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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