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내게 말을 걸다 #6

요즘은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씁쓸한 기사들이 가끔 눈에 띈다. 엄청난 재산가가 불우한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고 매일 지하철을 돌아 꽤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점점 더 각박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가엾은 이들에게 눈을 돌리는 이가 적어져 마음이 아픈 요즘이지만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 반드시 사람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몇 푼이라도 도와주려 지갑을 열었다가도 혹시나 하는 의심이 다시 그것을 꽁꽁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서로 믿지 못해서 도울 수도 없는 사회, 그래서 불행한 이들은 더욱 어두운 곳으로 침잠해 버릴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슬프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창밖을 내다보며 즐겁게 탔던 지하철 안은 그래도 온기가 꽤 훈훈했던 곳이었다. 조그마한 바구니를 들고 음악과 함께 몸이 불편하신 분이 지하철 칸의 문을 열면 주섬주섬 한두 푼 정도의 동전을 마련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바구니를 든 분이 지나가면 짤랑짤랑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나도 얼마 없는 나의 돈이나 엄마께 받은 그 자랑스러운 몇 푼을 넣곤 했다. 그 분이 다음 칸으로 옮겨갈 때까지 사람들이 적게나마 도우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따뜻해져 오곤 했다. 비단 나만 그 온기를 느끼지는 않았을 듯하다.
한 번은 초등학생 시절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때면 지하철 역 입구에 서는 구세군 냄비 앞에서 추위에 떨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름 그래도 꾸준히 구세군에 몇 푼을 보탰지만 이 추위에 다른 사람을 애쓰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들 또한 격려해 주고 싶어졌다. 어떻게 도울까 고민하던 찰나 달짝지근하고 노릇노릇해 보이는 호떡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바로 그것을 두 개 사서 그 아름다운 이들을 향해 신나게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괜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발목을 붙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치고 수줍게 호떡을 건네는 내게 그 언니는 고맙다며 정말 환하게도 웃어주었다. 나도 꼭 그만큼 환하게 웃음으로 답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는 나로서는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체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때는 저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간 바구니에 동전을 넣는 것이 매우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지금은 한 칸을 다 통틀어도 주는 사람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이러한 수단을 악용하는 이들에 대한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살아가기 버거운 현실 때문인지라 비난할 수 없는 점인 것에는 이견이 없다. 나 또한 한번은 내 만만한 인상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아예 내 무릎에 껌을 올려놓고 돈 달라는 식의 어떤 사람 때문에 정말 불쾌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행동이 다른 가엾은 분들에게까지 피해를 미치는 행동이라는 것을 정말 알려주고 싶었다. 기사에 등장한 부자의 구걸, 이러한 곱게 보기 어려운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정작 작은 도움의 손길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이들이 얼마나 더 많이 좌절할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물론 이러한 원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요즘 너무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본다. 나도 어렵다며 돌아서는 이들이 많지만 정말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돈이 어떤 이에게는 하루를 사는 소중한 생명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의 돈이 정말 누군가를 돕는 곳에 쓰일지가 확실치 않아 두렵다면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나도 대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한 국제단체를 통해서 어느 우간다 아이를 후원하고 있는데 간간히 그 아이가 보내오던 추상화가 점점 구체적이 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 한마디가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다른 이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서 시작한 일에 오히려 내가 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못 신기했다.

근래에는 불우이웃을 돕자고 하면 내가 불우이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보통 사람들도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뼈가 있는 말인 듯해 그저 웃어넘기기에는 입가에 씁쓸함이 남는다. 그렇지만 이토록 힘든 와중에도 우리 사회는 조금은 체온을 높일 필요가 있는 듯하다. 궁극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는 것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옆에서 누가 죽어도 모른다는 풍자에도 반박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은 매일매일 매체 속에서는 넘쳐나는 풍족함과 행복들을 한없이 무색하게 한다.

S. Stella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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