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수레바퀴』

*전 8권으로 완결되었습니다. 단편 역사만화이며, 중도에 있습니다. 아, ‘19금 미만 구독 불가’만화라고 하네요.


선생님, 역사는 반복되나요?



고등학교때 국사 선생님께 저렇게 한번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그러타 카는 사람도 있고, 역사가 앞으로 간다꼬 카는 사람도 있데이’라고 말하셨다. 순간 ‘어쩌라고....’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참았다. 이 책의 제목은 ‘수레바퀴’이다. 바퀴에 점을 하나 찍고 굴리면, 바퀴는 계속 앞으로 굴러가지만 그 점은 한번 돌 때마다 같은 곳에 있다고 한다. 옛부터 몇 번이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유사한 일들을 보고 그것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 취지라고 한다. 음.
이야기는 조선의 건국부터 시작된다. 고려가 망해가고,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고려를 멸망시킨다. 스스로 왕이 되고, 몰락한 왕씨 가문을 쓸어버린다. 그 다음 이방원의 왕자의 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인다. (1차) 자기 형을 죽인다(2차) 혁명을 빌어서 피를 내고 또 그 피를 다른 피로 씻는 일이 계속된다. 무고하든 유죄이든 어떻게 해서 죽고, 줄을 잘 못 타서 죽고, 줄을 잘 타서 출세하다가 모함받아서 죽고, 여튼 많이들 죽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실제로 고우영은 이 ‘혁명주체세력’을 군사정권의 인물들과 비유한다. 이방원은 자기 형동생들을 죽이고 ‘백성을 위해’ ‘마지못해’ ‘눈물을 흘리면서’ 왕위를 수락한다. 참 누구 말 보는 것 같네. 역사는 정말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는 것 같다.
근데, 이방원이 결국 왕이 되고서 나는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음담패설이라서. 킥킥.


안방의 역사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변씨녀, 사방지, 어우동, 어리, 세자비 봉씨 등등. 다른 책에 있던 이 책의 소개에는 ‘조선시대의 색깔 있는 여자들을 통해 조선의 뒷 역사를 알아본다.’비슷하게 써 있었다. 즉, 야사(野史)이다.
알다시피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제에 있었다. 밖에서 여성들은 아예 활동할 수도 없었으며, 그들은 평생 집안일만 하다가 죽어야 했다. 두분토론에서 남하당 대표가 말하는 그대로 소나 키워야 하는 그런 운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억누른다고 하더라고 꼭 거기서 비껴가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다.
저 사람들의 공통점은 극도로 억압적인 문화를 씹고 자유로운 사랑과, 음, 자유로운 섹스를 하고 비참한 끝을 봤다는 것이다. 고우영이 마초이고 남성중심주의여서 그렇게 그린 것이라고 뭐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그린 것을 보면 참... 그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나 ‘멋’이 있다고밖에 말을 못하겠더라.
이들은 대충 이렇다.
변씨녀: 자신의 노비 두 명과 어디서든 언제서나 간통한다. 그러고서 음모를 꾸며 자기 남편을 죽이려다가 독박을 맞고 자신이 도로 죽는다.
어리: 양녕대군(바로 그 세종대왕의 첫째형)과 불륜을 저지른다. 불륜이 아니라, 불타는 사랑을 한다. 그러다가 발각되어 양녕대군의 처지가 어렵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방에 구금된다. 결국 자살한다.
사방지: 인터섹슈얼. 반 남자이고, 반 여자이다. 그런데 궁녀이다. 알다시피, 궁녀들은 평생 자신과 비슷한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죽어야 한다. 그 속에 남자가 들어가 있다.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그렇게 계속 하다가 어떤 귀부인과 간통하다가 귀양간다.
세자비 봉씨: 후에 문종이 될 세자의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엄청나게 밝힌다. 하지만 문종은 책을 더 좋아한다. 결국 온갖 비행(남자화장실을 훔쳐본다던지)을 저지르다 쫓겨나고, 자살한다. 봉씨 잘못만은 아닐텐데.
어우동: 나름 귀부인이다. 바로 그 조선시대에 남자 소년, 청년, 귀족, 농부 가릴 것 없이 자기 방으로 꼬셔서 마음껏 삶을 즐겁게 보낸다(?). 결국 수십명의 고위 관료들이 그녀에게 연루되어 쫓겨나고, 그녀는 뭐, 사형.


▲ 어우동이 어느 양반하고 그짓하러 갈 때. 양반이 점잖은 척을 한다.

 


▲ 처음 만난 농부하고 그짓하러 갈 때. 여백의 미가 뭐인지를 진짜로 보여준다.


보다보면 안방의 역사조차도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싼 척하는 높으신 분들, 그를 파고들어서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다가 결국 내쳐지는 여자들, 남자들, 거기에 얼떨결 따라가다가 같이 독박맞는 사람들. 물론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수레바퀴는 분명히, 굴러갔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남하당 대표는 개그콘서트에서만 저렇게 말한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다고 말하는 건, 정말 입만 아픈 일이다.
그것보다는 저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부러웠다. 단번에 확확 일을 거리낌없이 저질러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아니, 욕망...)을 다 이뤄내는 그들은 정말로 ‘멋’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낭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멋’이며, 그것이 이 만화의 이야기들이 참으로 ‘맛’깔스러운 이야기인 이유겠지. 이런 이들을 담벼락 너머서 보고 있는 소인배들은, 뭐 만화에서도 소인배로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렇게 자유롭게 살다가 저렇게 멋지게 죽을수 있을까?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 또한 옛날 사람들이 주구장창 물어온 질문들일 것이다. 그 질문들은 바퀴가 굴러가는 것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또한 앞으로 반복될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들에 답이 없는 것도, 여태까지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여백의 미와 야설을 즐기고서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터이다.


*다음주는 중간고사로 휴강, 아니 휴재합니다. 즐거운 중간고사 기간 되세요.

 

심심풀이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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