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0000 제5화

[그리고 저기를 보십시오]
청년이 지구를 손으로 쳐서 빙글 돌렸다. 지구의 반대편을 보았다.
[여기가 지금 저희가 있는 7개의 도시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기가 현재 저희가 알고 있는 곳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지구에서의 위치를 따져보면 좌표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보십시오.]
청년은 나라부분을 확대시켰다.
[이곳만 용암의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용암의 흐름이 여기서만 바뀌더군요. 이 정도는 과학의 기술로 처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곧 용암에 의한 피해를 받았습니다.]
영상은 빠르게 넘어갔다. 지구에는 점점 구름이 많이 생겨났다. 바다에서 용암에 의해 증발된 구름들 이었다.
[이 지역, 용암은 피했지만 비는 피할 수 없었나 봅니다. 곧 홍수가 나지요.]
영상은 홍수가 나는 곳에서 멈춰버렸다. 그러더니 주변의 영상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주면의 영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번 영상은 나라정보원에서 몰래 복사해온 영상입니다. 이 영상에 나와 있는 7개의 도시들은 전부 무언가가 덮고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적을 보호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보호 장치가 이상하게 설치가 되어있죠. 내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칼날이 내부를 향해 있죠.]
영상 속 7명의 사람들은 전부 각 도시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도시들의 이름도 그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기 때문에 금세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원형탁자에 앉아 있었는데 왼쪽중간부터 세티엔 , 신포니에테 , 신중 , 에스타니오 , 에스타니에 , 신길장 , 조필중 이렇게 일곱 명이 둘러 앉아 있었고, 탁자위에는 나라의 도시와 꼭 닮은 도시의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현민은 탁자의 주위를 돌며 도시를 덮고 있는 희미한 막을 살펴보았다.
"보기에는… 모르겠는데?… 뭐가 안쪽으로 설치된 거죠?"
[네 저걸 보시면 경비가 외부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내부를 향해 시선이 돌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미흡하지 않나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 했습니다만…… 제가 드린 자료를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없으신가요?]
"네?"
현민은 청년의 말을 듣고 놀랬다. 청년의 모습이 흡사 아까 센터에서 본 노인의 모습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른 체형에 숯이 없는 머리 그리고 무서운 눈이 꼭 닮아 있었다.
"아…"
현민은 눈을 크게 떴다. 곧 숨소리가 예민해졌다. 멍하니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민은 청년을 쳐다보았다. 청년과의 눈이 마주치자 현민의 숨소리는 좀 더 가빠져 왔다.
[없으십니까? 그러면 좀 가져와 주시겠습니까? 힘드시다면 안 가져 오셔도 됩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과 대비되는 청년의 태도에 현민은 순간 놀라는 듯했다. 청년의 말투는 아까 센터에서 보았던 노인의 저돌적인 성격과는 달리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말투였다.
"……. 저랑 별로 상관없는 일을 도우다가 손해 볼 필요는 없겠죠.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센터에 다시는 가기 싫기 때문에 부탁은 들어 드릴수가 없겠군요. 죄송합니다."
현민은 고개를 숙여 말을 하였다.
[어쩔 수 없군요. 저는 실제이기 때문에 데이터에 저장된 내용에 한해서는 당신의 질문에 의식적으로 대답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궁금하시거나 다른 생각이 나시면 이 막대의 PUSH 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청년은 막대를 가리키며 사라졌다. 현민은 한동안 멍하니 막대를 바라보았다. 칫솔 통 안에서 그 막대를 빼내어 들었다. PUSH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현민은 그 막대를 다시 통 안에 꽂아 놓았다. 화장실 안의 수증기는 이미 걷히고 없어져 있었다. 화장실의 전등이 켜졌다. 주변은 환해졌고, 현민은 화장실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으음… 필요 없는 일을 할 필요는 없지. 내 일도 많은데 말이야."
현민은 마음을 굳혔는지 등을 돌려 쇠막대를 꽂아 놓은 채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내 인생 정말 잘 풀리는 적이 없는 것 같아."
현민은 화장실 문고리를 잡는 자신의 팔목에 피멍이 든 것을 확인하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현민은 거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거실로 나갔다.
[전화연결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화장실을 나오자 곧 방 안 어디선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승낙하겠습니다."
[연결되었습니다.]
차가운 기계음이 울렸다.
[고객님, 편히 주무셨습니까? 어디 불편하신 점은 없으셨나요?]
호텔 직원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흘러 나왔다. 현민은 시계를 보았다. 벌써 아침 8시였다.
"아 네, 없었습니다."
현민은 힘없이 대답을 하였다.
[다행입니다. 어제 고객님 화장실에 전원공급이 되질 않아 화장실 이용에 잠시나마 불편이 있으셨을 것 같았기에 연락드리는 것입니다. 네, 그리고 간단한 brunch와 방 청소를 서비스로 제공해 드리는 데 괜찮으십니까? 지금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전원공급이 끊어 졌다는 사실을 아는 호텔직원의 말에 현민의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갔다.
"네, 뭐, 공짜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주세요."
현민의 말이 끝나자 바로 똑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음은 사라졌다. 현민은 문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누구인지를 확인을 하고는 요리사를 안으로 들여보내었다. 현민은 상당히 예민해져 있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요리사는 작은 상자를 들고 현민을 따라 거실로 들어오더니 현민에게 물었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요리사 체리테 입니다. 음식을 만들며 간단한 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고객님께서 불편하시면 다른 장소에서 음식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 그냥 여기서 만들어 주세요."
현민은 힘없이 소파에서 늘어졌다. 요리사는 가지고온 작은 상자를 바닥에 놓더니 작은 상자는 많은 조리도구를 갖춘 근사한 요리의 공간으로 변했다. 현민은 정신이 없었다. 잠도 자지 못했거니와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그런 듯했다. 어느새 요리는 다 되어 있었고 요리사는 화려한 쇼를 하였지만 현민은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요리사를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눈은 풀려있었다. 현민은 스테이크를 먹는 동안 건조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었다. (스테이크는 정말 맛있어 보였다.) 현민은 음식을 다 먹고 접시와 포크 나이프 등을 반납용 게이트에 집어넣었다. 집어넣으니 접시와 포크 나이프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현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청소부가 들어 와 있는 것을 확인 하였다. 청소부는 막 침구정리를 끝내고 화장실 청소를 하러 들어가는 중이었다. 현민은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자신이 가지고 왔던 물건들을 짐에다 챙겨 넣었다. 짐을 다 챙기고는 잠시 화장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악!"
화장실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화장실 속에서는 어제 보았던 청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현민의 숨은 가빠져 왔다. 현민은 들고 있던 가방을 손에서 놓아 버리고는 화장실로 갔다. 그러자 안에서 청소부가 뛰쳐나왔다. 현민은 빨리 쇠막대를 찾았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재빨리 PUSH 버튼을 누르고 영상을 껐다. 고개를 돌려 청소부를 보았다. 그녀는 가쁜 숨을 침대에 앉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현민을 바라보고 쇠막대를 바라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이걸 챙기지 못했네요."
청소부는 말이 없었다. 현민은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차분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쓰며 쇠막대를 주머니에 넣고는 자신의 짐을 챙겨 방을 빠져 나왔다. 그는 뒤 돌아 보지도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빨리 호텔을 빠져 나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고객님!"
뒤에서 누군가 현민을 향해 부르는 소리였다. 현민은 마음이 다급해졌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호텔 밖으로 빠져 나가기 위해 로비 안을 달리기 시작했다. 현민의 눈앞에 정문이 보일쯤 현민은 더욱 달리기 시작했다.(로비가 꽤 컸다.) 도착을 하였을 때 누군가가 현민의 팔을 잡았다. 고개를 돌렸더니 경호원이 현민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현민은 경호원을 쳐다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경호원의 얼굴에 어제 센터에서 보았던 보조원의 모습이 겹쳐 보였는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쇠막대가 신경 쓰였는지 다른 쪽 손으로 재빨리 쇠막대를 더듬어 확인을 하였다.
"헉… 헉… 고객님 저… 방 키…"
그사이 호텔직원이 현민의 뒤를 따라 잡았고, 현민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고객님 방 키는 주고 가셔야 합니다."
경호원이 말을 하였다.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현민은 굳은 표정을 서서히 풀면서 자신의 짐 속에서 방 키를 더듬더듬 찾아내었다.


조현민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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