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대로 된 일기를 쓴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인지 뒤적여봤다. 지난 9월 11일, 내가 싸이월드 다이어리에다가 끄적여둔 글? 혹은 8월 20일, 내가 손으로 일기장에 쓴 글? 무려 한달 반 전이다. 아이러니하다. 항상 하루에도 서너번씩 ‘오늘은 꼭 일기를 쓰고 자야지’ 하고 마음먹는 나였기 때문에. 하루가 굉장히 즐거웠을 때도, 우울했을 때도, 생각이 많아질 때도 항상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일기쓰기’였다.

누군가에겐 재충전의 기회가 됐을 여름방학 동안,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지났다. 한 번 입고 널브러진 옷가지처럼 복잡한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해보자는 의미로 산 일기장. 매일매일 짧게나마 꼭 쓰자던 일기장은 처음 포부와는 달리 점점 먼지만 쌓여갔다. 매주, 매달이 작심삼일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부기자 일기’를 통해 나는 야심차게 원고지 200매에 육박하는 긴 일기를 한 번 써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난 이번 기사, 아니, 일기도 자신이 없다. 일기가 남에게 보여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일기를 쓰는 내 자신이, 일기 쓰는 것을 또한번 미루고 싶은 내 자신이 부끄러운 것이다. 맛없는 펜대만 잘근잘근 씹고 있다. 부기자 일기를 써야하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다른 부기자들은 부기자 일기를 어쩜 그리 훈훈하고 맛깔나게 쓰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지금의 나는 물음표 투성이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고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어떻게 구체화해서 글로 적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빛’을 그려보라는 느낌이랄까, ‘바람’을 손에 쥐어보라는 느낌이랄까. 나는 지금 길을 잃었다. 표지판도, 방향도 모르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나는 미아다. 볼리비아에 우유니 소금사막이라는 것이 있는데, 소금 결정체로 하늘과 땅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을 가볼 계획을 하고 있는데, 벌써 나는 그곳에서 헤매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나침반도 없는 나는 방랑자나 다름없다.



이렇게 방랑하고 있는 나를, 춘추가 구원해줬다…는 내용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선배들을 보니, 춘추가 시간관리만 잘하면 할 만한 일이긴 한 것 같은데 이 망할 춘추의 금요일 밤샘은 내게 지독한 고역이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힘들어졌다. 몸이 마음에 지배당해 지쳐버린 나는 기사를 발로 써냈고 기사는 조각난 자료 덩어리들로 이뤄진 활자의 집합체가 됐다. 이 퍼즐을 맞추느라 하루 밤을 새고, 어떤 날은 이틀 밤을 샜다. 날이 하얗게 샐수록 내 머릿속도 하얘졌고 리라잇을 받을수록 하얀 종이는 새빨간 불바다로 이글거렸다. 우리 부장 언니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하나 더 늘었고 내가 부끄러워하는 기사의 개수 또한 늘어갔다. 다른 기자들은 ‘내 글을 읽어달라’고 홍보를 했지만 나는 ‘내 글을 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또 미우관에 오는 버스 안에 몸을 싣는 순간 어리석은 건 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는 ‘초심을 잃지 말자’인데, 나는 처음 연세춘추에 들어왔을 때의 간절함을 잊고 사는 것 같았다. 연세춘추 입사 시험날, 몸살감기에 몸이 오들오들 떨려도 시험은 보러올 정도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것들을 원했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부끄러운 순간, 부끄러운 기사만 남은 것 같았다. 밥안먹고 취재하고 자료조사해도 될만큼 취재는 재밌는데 하루 밤을 새면 내기사가 왜이리 남의 기사처럼 돼버리는 건지.



춘추에 회의를 느낀 건 한두번이 아니었다. 부장언니한테 부기자 일기의 제목은 ‘사직서’요, 형식 및 원고 매수는 자유, 그리고 리라잇을 받지 않고 내 춘추에서 마지막 글이 될 ‘부기자 일기’를 언니 책상에 놓고 홀연히 사라져버리겠다고 했던 나. 이 기사가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춘추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내 일기를 써버리겠다고 했던 나. 이렇게 얌전한 고양이마냥 부기자일 기를 쓰고 있는 나를 다시 발견하자니 그냥 허탈한 웃음만이 나올 뿐이다. 이 허탈함을 무얼로 채울까. 잠이나 한 숨 더 자고 고민해봐야겠다.

 

 

송동림 기자 eastforest@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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