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연재 글을 위해서 첫 문장만 도대체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패션왕’에 대해서 쓸 참이다. 지난주 내가 강요로 댓글을 달게 한, 익명의 네티즌이자 지인이 댓글로 ‘패션왕’을 원했을 뿐만 아니라 ‘패션왕’이 네이버에서 실시간 검색어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뭔가, ‘패션왕’을 써야 할 때가 왔음을 인지했다. 그런데, 어렵다. 왜냐면, 나에게 ‘패션왕’에 대해 쓰라는 건 고딩들에게 담탱이를 싫어하는 이유를 묻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밉고 싫다는 거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념 없는 고딩들이라도 ‘그냥’이라고 답하지는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긴 한다. 분명 교육자가 되기 위해 청춘을 바쳤을 선생님인데, 이유 없이 미움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 ‘패션왕’도 이런 내 글을 보면 속상할 것이다. 그러니 미리 말하건대, ‘패션왕 빠’나, 기안84는 여기까지만 읽어라. 

 

 

그래도 나는 이른바 ‘웹툰 평론 소녀’를 자칭하므로 ‘패션왕’을 싫어하는 이유를 되도록 체계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먼저, 나는 일진이 싫다. 그 나이에 그럴 법한 사춘기 말고, 학교마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라가고자 아등바등 탈선하는 일진들 말이다. 그런데 ‘패션왕’에서는 그런 것이 많이 보인다. 과연 그들이 관심 있는 게 ‘패션’인가 ‘간지(느낌이라는 뜻의 일본말로 나쁜 말이니 널리 쓰지는 마세용)’인가. 혹자는 이렇게 말하지도 모른다. ‘패션’은 ‘간지’에서 시작해서 ‘간지’로 끝난다고. 물론 개성 살리고 느낌 살리려고 예술적 감각을 더한 의생활을 추구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나는 그것보다 좀 덜 음산한 기운을 바랬다. 조금 더 유화되고 정감 가는 캐릭터를 바랬다. 그런데 ‘패션왕’을 보면 어쩔 수 없다. 일진들이 떠오른다. 길거리에서 서로 머리를 때리며 ‘shiva shiva’ 욕을 하는 그런 일진들 말이다. 이 문제는 개인적인 호불호의 문제이니 누군가가 태클을 건다면 할 말은 없겠다.


두 번째 이유는 살짝쿵 냉철하려 노력한 결과 생각이 났는데, 기안84의 컨디션의 난조다. 신선한 내용과 거침없는 설정들로 인기몰이를 시작하자, 기안84 안일하게 작업한다는 악플을 수도 없이 받았다. 상처도 받았나? 새로운 정신은 탑재한 것 같다. 요즘은 다시 정상궤도에 가깝게 진입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연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평소 그리던 분량보다 훨씬 적게 그리거나 한눈에 봐도 스토리라인에 전개가 없어서 사람들로부터 탄식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첫 편부터 제대로 병맛이고 재미도 있어서 그만큼 기대도 컸는데, 너무 일찍부터 배가 부른 것 아니냐의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내가 ‘패션왕’을 싫어하는 두 번째 이유는, 연재를 하는 웹툰 치고 기복이 너무 크다는 것.


그래도 여전히 나는 ‘패션왕’을 클릭한다. 재밌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앞서 구구절절 풀었던, ‘패션왕’의 단점을 덮을 수는 없다. 재미 이상의 것이 있다면 그것의 해학성에 있지 않나 싶다. 해학은 단순한 재미와는 분명히 다르다. ‘패션왕’은 패션과 느낌 그리고 유행이라는 측면을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고등학생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패션’이라는 도도하고 콧대 높은 장르가 붕괴되는 쾌감이 있기도 하다. 삼촌이 고심 끝에 고른 와인색 정장에는 혀를 두르면서 샤넬이 내놓은 몇 백만 원 짜리 구멍 뻥뻥 너덜너덜 자켓에는 침을 질질 흘리는 모순을 생각해 보라. 연관검색어는 <패션왕 실존인물>

 

 

윙키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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