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다시 보고 있는 기분이다. 영화 『도가니』 이후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말이다.
영화에서,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된 두 인물 강인호(공유 분)와 서유진(정유미 분)을 통해 ‘무진 자애학교’의 성폭행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서울역 대합실의 TV에서 방영되는 이 언론 보도를 보며 가던 길을 멈추고 분노한다. 하지만 반짝이었다. 결국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들의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하는 공권력과 물대포에 스러지고 만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잔인하고 찜찜한 이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은, 분노를 느낀 원작 소설가와 영화배우에 의해 ‘무진 장애학교’를 배경으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확실히 소설이 발간됐을 때나 언론 보도가 있었을 때보다 더 강렬하게 끓어오르고 있다. 영화 『도가니』의 인터넷 평점은 이미 9.4점을 넘겼고, 정부, 정당 할 것 없이 ‘악마’들을 처단하겠다고 두 팔 걷어 부치고 나섰다.
정부는 지난 7일 인화학교의 폐교 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했고, 국회는 일명 ‘도가니법’을 통해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성범죄 관련자는 교직에 복귀하지 못하게 하는 법도 추진 중이다. 광주광역시는 특별감사를 실시해 성폭력 사건에 관련된 교사들을 징계하도록 학교에 통보했고, 인화학교의 사회복지법인 ‘우석’의 법인인가도 취소하겠단다. 영화가 개봉된 지 2주 만이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이쯤 되니 ‘억울한 일이 생기면 경찰이나 법원이 아니라 대박 영화로 만들면 된다’는 조롱 섞인 말도 신빙성 있게 들리기 시작한다.

 

 

 

 

 

 

 

관객들은 가난한 할머니가 피고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자신의 성폭행 사건을 합의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울부짖는 민수를 보며, ‘나쁜 사람들을 벌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스크린 한가득 수화로 울부짖는 민수를 보며, 그 불편한 진실 앞에서 무력함과 자괴감을 느꼈다. 이 작고 힘없는 관객들이 모여 만들어낸 힘은 가히 컸고, 이제 우는 아이를 껴안고 말할 수 있다. 지켜주겠다고. 바뀔 것이라고.

그러나 황동혁 감독은 “너무 빨리 달아오르는 일들은 빨리 식기도 하고, 부작용을 남기기도 한다”며 우려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부당한 현실 앞에서 분노하고 있는 지금의 이 ‘도가니’는 영화의 결말처럼 힘없이 스러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어쨌든 권력이 개입해 사회를 바꾸겠다고 나섰으니 희망이 있는 것일까.

이 사건을 알리고자 했던 이들은 수없이 많았다. 지방 언론사의 인턴기자부터 메이저 언론사의 시사PD, 베스트셀러 소설가, 영화배우 …. 영화 속에서 인권운동센터의 간사인 유진은 말한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싸우고 있다’고.
그렇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찜찜했다’고, ‘경악했다’고 말한 우리들은 감히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 하게 할 용기가 있는가. 비록 용기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용기를 얻고 분노했다 할지라도, 나는 그저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나만 적당히 바뀌면 세상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진 않을까. 영화를 통해 우리가 목격한 불편함은, 싸우고 있는 이들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는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의 힘으로 바뀌어 가는 사회를 보면서도, 여전히 씁쓸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정주원 기자 shockingyello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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