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0000 제4화

“알고 있습니다.”
현민은 키를 받아 들었다. 방은 15220호였다. 현민은 금으로 된 계단 중앙에 있는 금색 엘리베이터를 타고 15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노인이 잡았던 팔목을 문질렀다. 꽤나 아팠던 모양이다. 빨갛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152층에 도착한 현민은 15220호로 빨리 걸어가 방문을 열고는 침대에 짐을 던져 버리고 침대에 미끄러지듯 누워버렸다. 그러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물은 현민의 눈을 타고 흘러내리면서도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묘한 웃음이었다.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울음도 섞인 웃음이었다. 격하게 웃다가 점점 숨을 안정적으로 쉬기 시작하였다. 긴장이 풀리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13일 동안 씻지를 못해서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현민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현민은 재빨리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부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고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현민은 몸 어디 흉터나 아직 아물지 않은 곳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햐… 신기하네? 이거 누가 다쳤는지 알기는 하겠어?”
현민은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정말 다친 곳 하나 없었다. 그러다 현민이 보기를 멈추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병원비!…! 어쩌지?! 분명 이정도면 엄청 비쌀 텐데…”
현민은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다. 샤워를 마친 현민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병원비 걱정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신포니에테에 있다는 사실만이 자신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래 즐기는 거야!”
두 팔을 뻗으며 말을 하였다. 현민은 여기에 오기 전 이 호텔 매뉴얼에서 봐두었던 음성인식 기능이 생각났다.
“텔레비전 이슈”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니 화면이 현민이 보고 있는 쪽 벽면에 자동으로 떴다.
[긴급 속보입니다. 리만스해역에-]
“다음”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날씨를-]
“다음”
[여러분 몸 건강은 어떠십니까? 요즘 저는-]
“다음”
현민은 내용을 들을 생각은 없고 자동화된 텔레비전에 관심이 갔다. 그렇게 한참을 텔레비전을 가지고 놀다보니 단조로운 행위에 현민도 호기심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는지 표정이 지루한 표정이 되어갔다. 그때 자신의 가방 속에서 삑- 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민은 심심했던 차에 잘됐다는 표정으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뭐지?… 난 이런 것 안가지고 왔는데?”
현민이 꺼내든 것은 작은 은색의 굵은 막대기였다. 그리고 막대기 끝에는 'PUSH' 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현민은 한참을 고민하였다. 쇠막대 주변에는 아무런 글도 없었고 어떤 용도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워낙 심심했는지 현민이 조심스레 PUSH 버튼을 누르고는 멀리 던져 버렸다. 그러자 그 막대에서 어느 청년 한사람이 나와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걸 보는 당신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박재라고 합니다. 지금 이걸 보시는 당신은 어디에서 누구와 같이 듣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주변에 당신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우선 이 막대의 PUSH 버튼을 다시 눌러 영상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현민은 침대에서 일어나 막대를 던진 곳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현민은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 아무도 없었다. 현민은 손을 뻗어 막대를 집어 들었다. PUSH 버튼을 영상에서 말한 대로 다시 눌렀다. 현민은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은 샤워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뿌옇게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현민은 막대를 칫솔 통에 꽂아두고 다시 PUSH를 눌렀다. 화장실에 전원이 나가버렸고, 화장실은 어두컴컴해 졌다. 영상에서 나오는 빛만이 현민의 얼굴을 어렴풋이 비추었다. 영상에서는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청년 뒤의 배경이 희미하게 보여 졌다. 청년의 뒤로 보이는 책상위의 작은 미등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 외의 것들은 어둠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청년은 잠시 다른 것을 하였는지 영상 속에서 옷이 바뀌어 있었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신 건가요? 잘하셨습니다. 화장실의 전등은 도청의 위험 때문에 외부의 전기를 잠시 차단하겠습니다.]
현민은 주위를 살폈다. 화장실 안은 매우 어두웠고 영상 앞으로 떠다니는 수증기만 보일 뿐이었다. 영상 속 청년이 현민에게로 다가왔다. 실제 크기의 사람이었고 영상이 아닌 듯 청년의 머리털 하나하나 구분이 가능했다. 현민은 청년의 숨김도 느낄 수 있었다.
[전 영상 속에 담겨진 실제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이 저를 만질 수 없듯이 저도 당신과의 접촉은 불가능 합니다. 그러니 다칠 염려는 없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잠시 이쪽으로 넘어와 주십시오.]
청년은 두 팔로 공손이 영상 안으로 안내를 하였다. 현민은 잠시 머뭇거렸다.
"저… 들어가면 어떻게 되나요?"
[괜찮을 겁니다. 저는 영상 속 실제일 뿐입니다. 그 이외의 것들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넘어 와 주십시오.]
현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서 가듯 영상 속으로 들어갔다.(실제로 손동작은 현민을 끌었지만 청년의 손은 닿지 않았었다.) 영상 속으로 들어온 현민이었다. 정말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화장실은 분명 자신의 뒤쪽에 있는데 앞으로 보이는 것은 어느 청년의 방이었다. 흡사 화장실의 원래 반쪽은 청년의 방인 듯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있었고, 청년의 방속에서도 수증기가 가득하였다. 심지어 청년의 쾌쾌한 냄새도 더불어 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주시는 군요. 믿을 만합니다. 그럼 잠시 구경 하십시오.]
청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민을 둘러싸고 있던 영상은 바뀌었고 수증기 또한 없어졌다. 현민이 있던 화장실도 사라져 버렸다. 주변의 영상이 현민의 옆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현민은 수많은 별들과 나란히 공중에 떠 있었다. 주위는 매우 어두워 멀리서 보이는 별들만 희미하게 보일뿐 그 이외의 것들은 어두웠다.
"어? 저건 뭐지?"
현민의 눈앞에 무엇 인가가 반짝거렸다. 그러자 현민은 그 반짝인 곳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그 반짝임의 정체는 곧 청년의 설명에 의해서 알 수가 있었다.
[당신은 지금 우주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보였던 반짝거린 것은 지구였습니다.]
"네? 뭐라고요?… 지구라고요?… 그런데… 왜 저렇게 어두운 거죠? 바다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도시의 불빛도 보이지가 않는 거죠?"
[저것은 분명 지구가 맞습니다. 저것은 지구이지만 지금 보여드리고 있는 영상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군요. 저도 현재 그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저 영상이 만들어진 시기는 분명하게도 국업개혁 이전에 만들어진 영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사람들은 국업개혁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사실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아는 사실이라고는 어릴 적 부모님들로 부터 들은 내용들뿐이지 그 이외의 사실이라고는 어느 하나도 문서화 된 것이 없습니다. 대화재 이후로 모든 자료가 사라졌다고는 하였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신포니에테를 비롯하여 현재 대화재의 피해에서 살아남았다는 일곱 개의 도시들에서 왜 국업개혁이전의 역사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티엔을 여행하게 되었고, 이 영상을 어느 한 길거리 노점상에게 살 수 있었습니다.]
현민의 앞에 보이는 영상은 청년이 말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바뀌어 갔다. 청년이 지구라고 한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주의 검은 배경과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가끔씩 작은 반짝거림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멀리서 반짝 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지구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지구의 땅속에서 무엇 인가가 뚫고 올라왔다. 화산은 폭발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많은 양의 마그마가 땅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지구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용암 줄기는 굽이치며 흐르지 않았다. 그냥 땅에서 나오면 나온 곳을 중심으로 정확히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청년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조현민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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