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1부 정세윤 기자의 부기자 일기

'…
내게 남은 건 허망한 말뿐이네 나는 외로이 큰소리로 소리쳐
나는 언제나 이곳에 이 자리에
그저 머무르고 싶었을 뿐인데

참 더럽게 이상한 세상이야
멈추라고 할 때까지 걸어야 해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
그저 이렇게 하루를 살아갈 뿐'

-언니네이발관 「나는」 중


미우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팟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노래. 막 기삿거리 배분을 끝마치고 온 내 귀에 쏙 들어온 건 저 가사였다.
‘멈추라고 할 때까지’, 혹은 내가 있어야 할 시간을 다할 때까지 난 기사를 써야 한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뭐가 바뀌나? 학내 구성원들이 거의 읽지도 않는 춘추인 것을. 그저 이렇게 하루를 푸념하며, 그러면서도 취재하며 살아갈 뿐.
그런데도 왜 너는 춘추를 하느냐 물으면 궁색한 변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을 말을 내뱉을 수밖에. ‘재밌으니까 한다’, 이 말이다.
나는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 다시는 하지 않을 법한 경험을 하기 위해 춘추에 들어오게 됐다. 이유야 어찌됐건 발을 들여놓은 건 내 선택이었으니, 그에 따르는 의무는 져야 한다. 그렇게 의무감으로 배정받은 기삿거리들을 꾸역꾸역 삼킨다. 그리고 이를 다시 기사로 뱉어낸다. 그 과정이 난 재밌었다. 지금도 재밌다.
재미라는 건 모든 귀찮음, 수고로움, 때로는 바쁨 때문에 밀려오는 짜증을 물리칠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된다. 그래서 난 공강시간에도 헐레벌떡 캠퍼스를 누비며 다닌다. 멘트 단 한 마디를 따자고 다짜고짜 우리대학교 노동자들의 용역업체 본사에 쳐들어간다. ‘기자’라는 직함 하나 달기 전에는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던 총학생회, 총여학생회, 동아리연합회의 사람들을 만나며 학교의 온갖 소식들을 주워듣는다.
그렇게 재미에 홀려 제 할 일을 하다 보니 나는 어느 새 이 집단 내에서 ‘능력자’ 혹은 ‘엘리트’로 불리게 됐다. 기분이 좋아야 하건만,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어째서 제 할 일만을 하는 사람이 평균 이상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불릴 수 있는 건지. 나를 그렇게 부름으로써 오히려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본 사진은 재미를 위해 사용했을 뿐, 기사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히는 바임.


어느 집단에 가도 프리라이더는 있다. 그리고 그런 프리라이더가 있는데도 꾸역꾸역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은, 고맙지만 동시에 한심한 존재가 된다. ‘이렇게 저렇게 적당히 피하면 되는데, 왜 쟤는 저걸 다 떠맡나 몰라’하는 생각이리라.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내가 이렇게 제 몫을 하고 있는 일 자체가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그래서 난 내 별명이 달갑지 않았다. 제 일을 다 한 사람은 ‘능력자’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 나도 점심, 저녁 약속으로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고 나도 공강시간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수다도 떨고 싶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고 힘든 일은 하기 싫다. 다만 해야 할 일은 하려고 할 뿐이다.
그런 의무감이, 혹은 책임감이 지워지는 것이 싫다고 한다면 왜 이곳에, 연세춘추에 들어왔는지 나는 꼭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여기에 발을 들인 것은 단순히 학보사라는 타이틀이 탐이 났기 때문인가, 혹은 누군가의 강제였나, 혹은 다른 그 무엇이었나. 그렇지 않음에도, 제 발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능력자’로 만드는 당신들이 나는 종종 밉다.

난 ‘가장 보통의 존재’이고 싶다.

*미우관: 연세춘추 편집국이 있는 건물.

 

정세윤 기자  etoiledeto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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