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 『그녀의 완벽한 하루』

 

 술먹고 깰때 드는 생각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자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이 시는 네 번째 단편, '두번째 아이'에 나온다.)

 

 

 

 

  만화를 보고, 술을 진탕 먹고 다음날 아침에 깨어난 느낌이 들었다.

  술을 먹으면 평소에 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친해지기, 자취방 대문 걷어차서 다른 사람들 깨우기,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가서 앵겨붙기, 등등이었다. 소심해서 주사를 부리지 못하는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백하고, 길바닥에 구토하고, 오줌싸고, 사람을 때리고 추행하는 등등 내가 실제로 보지는 못한(다행이다!)이런이런 일들이 있다고 주위에서 말은 했는데,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은 술을 먹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술을 깨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 방에 사람들이 술을 마시러 놀러오던 때가 자주 있었다.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갔다. 방 앞을 벽이 가리고 있어서 햇볕은 11시깨나 들어왔다. 그 때쯤이면 방에는 내 몸뚱아리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소주컵, 떡볶이 국물 담긴 접시등이 뒹굴고 있었다. 그 때쯤이면 내 주위의 모든 것, 내가 이전밤에 했던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소름이 끼쳤다. 살기 싫어졌다. (그래서 노트북을 키고 게임을 했다) 하지만 그 햇볕이 들어오는 잠시동안 방에 있는 것은 나밖에 없었으며, 그렇다고 고독에 몸서리치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혼자 키보드를 만지며 조금 외로웠던것은, 맞다.

  그 순간들에 아마도,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 있었을텐데. 아니다, 깨달았으면 아직도 술을 이렇게 퍼먹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니, 나는 아무것도 깨달은 것이 없는 셈이다.

   

 

▲ 인터넷에 있는게 표지밖에 없어서, 쳇. 다음부터는 스캐너도 써보고 그래야겠다.

 여러 여자들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서는 여러 여자들이 등장한다. 제목과 다르게 여러 남자들도 등장한다. 이 책은 한 명 한명의 이야기를 모두 모은, 단편만화집이다. 이야기 한 개의 앞에는 시가 한 수 등장한다. 관동별곡스러운 시 말고, 위의 것과 같이 어두운 시 말이다.

 

 

  사람들은, 이를테면 이렇다.

  -회사신문 만드는 일에서 짤려서 소설을 쓴답시고 방에 죽쳐져 있다가 자살을 시도해서 식물인간이 된다.

  -여성복 매장에서 옷을 파는데, 어느 아줌마한테 사이즈를 크게 추천해서 싸대기를 맞는다. 그러고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혼자서 실컷 부르는데, 점수가 30점이다.

-출판사에서 일한다. 어떤 강사가 감수했던 책이 나왔다고 그에게 전화하자, 그는 직접 오라고 한다. 주인공은 직접 강사를 만난다. 모텔에서 대낮에 섹스한다(둘은 초면이다). 남자는 나가서 수업을 갔다오고, 또 섹스한다. 5년 뒤에 강사가 주인공에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면서 갸우뚱거린다. 여자는 처음 뵌다고 말한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을 떠올리면서, 좁은 방에서 혼자 죽는다.

-주부다. 시어머니가 주인공을 거의 가정부로 부려먹는다. 결혼하고 교회 안다닌다고 선을 그었는데, 시어머니가 교회 가라고 자꾸 한다. 남편도 시어머니편이다. 어느날, 입덧을 했다. 낙태하러 갔다. 의사가 대학생 때 자신을 임신시켰던 사람이었다. 수술 하기 전에 뛰쳐나왔다. 아이가 생겼다고 하자 남편이 정말로 좋아한다. (여기에 방금의 오규원 시가 붙어있다)

 

아니 뭐 현실은 시궁창이래니까

 

  이 만화의 그림은 부조리함, 분노, 허무감 등을 화려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 그림들, 이야기들이었다. 그림은 칙칙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일상을 가감없이, 선명하게 비춘다. 술 먹은 뒤의 날카로운 의식같이.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그 선명함은 독자를 정말 우울하게 만든다. 가끔씩은.

  주인공들은 담담하게 돈 벌고, 커피먹고, 모텔가고, 그러다가 자살을 하기도 하고, 했다. 삶은 주인공들을 한번에 잡아삼키지 않았다. 그것은가는 비처럼 그들의 발자락을 조금씩 적셨고, 그러다가 몇몇 주인공들은 그 비에 완전히 침식되기도 했다. 그들중 몇몇은 우산을 쓰고 다녔겠지만 그래도 바지와 양말이 젖는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궤변같지만, 이 별볼일없고 구질구질한 이야기들과 위의 시들은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 책 뒤의 리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들, 시처럼 산다.’  만화를 보고 두 가지는 깨달았다. 하나, 시도 뭐 그렇게 꼭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 , 구질구질한 삶도 가끔은 시처럼 애절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제부터 지하서점에서 시집도 가끔씩 사서 봐야겠다. 그리고 이 구질구질한 삶도 시로 승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겠다.

  그러한 믿음이 사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 슬프다.

 

 

 

 

*다음 회에는 끼노의 『마팔다』로 연재가 계속됩니다.  

 

심심풀이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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