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총학의 공약 이행 실태를 점검하다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과 약속실천 운동’ 이것이 매니페스토 그리고 매니페스토 운동이다. 이는 후보자가 자신의 가치와 철학,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이를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홍보성, 인심성 공약이 난무하던 정치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로 향하는 한 발걸음이다. 지난 2005년 매니페스토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이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대학 총학생회(아래 총학)는 이런 사회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교육 △등록금 △복지 분야의 공약들은 많지만 이행 수준이 1/3에 그친다.

 

공약, 그 이상의 의미

 

박주환(신소재·06)씨는 “투표를 할 때 후보들의 이전 모습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공약이나 활동내역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공약은 총학 선거 후보들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기장으로 선택받고자 하는 자(후보자)는 우선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항로(철학과 가치)를 승객들에게 명확히 보여주고 어떤 방법(공약)으로 비행을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내놓아야한다”며 공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제시한 공약을 이행하지 못 하는 총학이 많아 학생들은 실망했고 이는 학생들이 교내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대학의 총학은 오래전부터 사회·정치 활동의 주축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행보는 항상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과거 총학 선거에서는 각 선본이 정치적 성향, 참여 등을 밝히는 것이 당연시 됐다. 선거공동정책자료집(아래 정책자료집)에서도 민주주의, 남북관계, 한미관계 등 사회·정치적 안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기존 운동권에 반기를 든 비운동권이 등장했고 뒤이어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이분법적 논쟁이 치열해졌다. 이후 운동권의 사회참여와 비운동권의 학생 복지 정책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학생권’이 등장했는데 45대 총학<연세36.5>가 그 시작이었다.

이후 계속된 ‘학생권’ 총학은 학생복지에 주안점을 두며 학생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생회로 바뀌었다. 최근 총학 선거 정책자료집에는 복지, 문화, 등록금 등 학생들의 실질적인 문제와 관련 깊은 공약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신에 학내 문제 중 등록금, 주거와 같이 사회적인 문제로 연계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집단과 연대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 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공약들 대부분이 학생복지에 치중되면서 이를 중시하는 학생들에게 더 큰 관심을 받게 됐지만 이런 공약들이 제대로 실현되는지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공약, 수는 늘리고 이행은 낮추고

복지는 학생들의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부분인 만큼 학생들의 관심도 크다. 복지 관련 공약 중 45대 총학의 셔틀버스 도입과 대운동장 잔디 조성, 46대 총학의 학생식당 리모델링, 47대 총학의 학생회관 리모델링과 중앙도서관 ATM설치 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뤄지지 못한 복지 공약들이 더 많다. △예비군 훈련 조식제공 △야구장 펜스설치 △단과대 도서관 리모델링 △폴리스제도 도입 △종합대여센터 설치 등 3년에 걸쳐 제시된 복지 관련 공약 총 32개 중 26개는 이행완료되지 않았다.

교육과 등록금 분야의 이행정도는 이보다 더 낮다. 학생에게 필수적 요소인만큼 매 선거마다 빠지지 않고 제시되는 공약 분야지만 3년간 교육분야 14개 중 46대 총학의 ‘재수강 횟수 제한 폐지’, 등록금분야 8개 중 47대 총학의 ‘저소득층 학비 지원’이 유일하게 이행됐다. 이는 등록금과 교육시스템에 대해 현재 학생보다 학교본부가 갖고 있는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의 총학이 ‘학생권’을 표방하는 만큼 학생들과의 소통에 관한 공약들은 여러 분야들 중 가장 높은 이행정도를 보이고 있다. △학생회 폰 설치 △월 1회 정책 보고서 공개 △대표커뮤니티 구축 및 활성화 등 3년간 7개 중 5개를 이행완료 하며 학생회는 학생들과의 벽을 낮추고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년의 항해, 계획을 밝혀라

대부분의 총학에서는 자신들이 내민 공약 중 반 이상도 이행하지 못 하고 있다. 최근 총학이 복지분야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제시하는 공약의 총 개수도 함께 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행한 공약의 개수는 점차 줄고 있다.

이에 대해 기획실장 김정오 교수(법학전문대학원·법철학)는 “학생회가 예산이나 정책에 대한 결정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 본다”며 “학생회 자체에서 이행할 수 있는 일과 학교에 요청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분명히 나눠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사무총장은 ‘공약실천 타임테이블’ 제시를 하나의 해결방법으로 제시했다. ‘공약실천 타임테이블’이란 공약의 분기별 진척도, 즉 해당 공약에 대해 분기마다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를 나타낸 일종의 '공약 계획표'다. 이를 통해 이행가능성이 높은지 아니면 화려한 언어술사일 뿐인지 구분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선거 공약은 철학과 가치, 그에 따른 핵심공약, 우선순위가 명료하게 나타나야 한다. 표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백화점식 나열공약’은 지양해야한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 경제적인 제약, 유권자들의 무관심. 공약을 내놓고 그를 이행하는데 쉽지는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학생권을 표방한 학생회인 만큼 짧은 생각으로 만든 공약으로 학생들을 기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학생회가 돼야 할 것이다.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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