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 김재영 동문(사회· 91)을 만나다

영화 『도가니』로 한국사회는 뜨겁다. 청각장애아동에게 가해진 광주인화학교 교사들의 성폭행, 그리고 이 비극을 수년간 은폐해 온 권력층의 만행이 샅샅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명 ‘도가니 사건’은 최근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가 공지영의『도가니』가 쓰인 지난 2009년보다 훨씬 전부터 이 문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과 같은 존재였다.

폭발의 기미는 6년 전, MBC 『PD수첩』을 통해 드러났다. 지난 2005년 11월 1일, ‘은폐된 진실-특수학교 성폭력 사건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충격적 범죄는 전파를 탔다. 그러나 황우석 사건으로 이 범죄가 이슈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를 사회에 당당히 고발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MBC PD 김재영 동문(사회· 91)이다. 약자를 향한 권력을 가진 자들의 폭력 뒤에는 김PD가 있었다. 자칫 건드렸다간 어떻게 폭발할지 몰라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그곳 휴화산을 그는  감히 건드리고 폭발시켰다. 김PD에게 PD생활의 일분일초는 항상 도가니와 같이 치열했다.  

격동의 91년, 그리고 김PD

김PD는 ‘저널리스트의 숙명이자 철저한 직업의식’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 말한다. 말은 쉽지만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쉽다. 그런 그 역시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형성하고 다듬기까지 무던한 노력이 있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YBS에서 PD활동을 했어요. 학부 시절 공부보다 오히려 방송국 활동을 더 열심히 했을 정도였죠. 그 때부터 항상 저널리스트나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의 이런 생각은 비단 개인적 성향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이 한창 불붙었던 사회적 배경도 그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91년도에 입학했는데, 그렇게 좋은 시대는 아니였죠. 명지대의 한 학생은 학생시위 도중 맞아서 죽었을 정도였으니까.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사회적 부조리를 일찍이 감지하고 드러내고자 했다. 김PD가 제대 후 사회학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곳에서 그는 현재의 김PD를 만들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년 반의 시간을 보낸다. “대학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와 친구들을 만나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대학원 졸업 즈음에는 ‘이제 나만의 사회학적 시각을 표출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MBC PD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한 번에 붙게 됐어요.”

그만의 ‘수첩’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운 좋게’ PD가 됐다는 김PD. 그런 그가 대한민국의 PD, 그것도 사회 권력층을 비판하고 감시하는『PD수첩』의 PD였다는 것은 대중들에게도 참 운 좋은 일이 아니었나 싶다. 4년을 몸담았던『PD수첩』에서 그는 말 그대로 ‘충격적인’ 사회의 이면을 표출해 냄으로써 한국 사회를 줄곧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지난 2006년 7월 18일 방송된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한·미FTA’가 안타였다면 2010년 6월 29일 방영된 ‘이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라는 제목으로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낱낱이 드러낸 것이 홈런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FTA 타결의 비민주적 과정을 신랄히 비판했던 보도 후 그는 청와대의 적이 됐다. 당시 국정홍보처장은 “이정도면 폭력”이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이에 대해 김PD는 “당시 체결 과정에서 참여정부답지 않게,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FTA타결이 이뤄져 비판에 집중을 하긴 했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을 수도 있고……. 나도 그렇게 프로가 균형적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비판의 수위가 정말 높았으니까”라고 답한다. 참여정부를 향한 기대가 컸던 만큼 ‘참여정부답지 않은’ 모습에 더욱 배신감을 느꼈다는 그였다. “내가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든, 누군가 권력을 잡으면 감시 대상이 되는 거에요. 『PD수첩』이 참여정부 때는 잠자코 있다가 대통령 바뀌니까 비판을 가한다? 그건 아닌거죠.”

그는 색깔론에 좌우되지 않고, 권력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감시하고 거리낌 없이 비판할 줄 아는 진정한 언론인의 길을 걸어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김PD는 칼날 같은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김PD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쥐코동영상’을 링크했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사찰을 받은 평범한 단 한 사람, 김종익씨의 호소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샅샅히 파헤쳤다. 방영된 직후 ‘민간인 사찰’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됐다. 당시 ‘독재’에 가까웠던 이명박 정부의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 다큐로 김PD는 올해 ‘제23회 한국PD대상 시사다큐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목숨을 건’ 취재였기 때문이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는 질문에 “나를 바꾼, 나 자신을 성찰하게 해주고, 언론인으로서의 나, 방송인으로서의 나를 만드는 데 가장 영향을 준 작품은 ‘이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였다”고 주저 없는 대답이 나온다. “민간인 사찰의 희생양, 김종익씨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사찰이라는 게, 털면 뭐든지 다 나오게 돼있거든. 국가기관이 마음먹고 한 사람을 털면 하다 못해 여자관계라도 나오지 않겠어요? 그래도 고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가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김종익씨는 어떻게 그걸 『PD수첩』에 알릴 수 있었겠어요? 털어도 털어도 나오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죠.”

김PD는 그런 김종익씨를 보면서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가는 분이 있구나’라는 감동과 함께, ‘이런 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폭력이 자행되는 사회가 한국 사회구나’하는 통탄도 느꼈다고 한다.

두려움을 극복케 하는 ‘제보’는 나의 힘

권력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공격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매 순간 두렵다”면서도 “내가 다칠 것 같다는 두려움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내가 취재하는 방향이 맞나, 내가 취재하는 대상에게 잘못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가해자를 만났을 때 가해자가 절절히 변호할 때면 내가 지금 취재하고 있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을 압도한다는 그였다.

취재 당시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조심스럽게 ‘광주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는다. “밤늦은 시간 몰래 기숙사에서 나와 취재에 응해주는 피해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기가 막혔죠. 취재 차량 안에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화 통역사도 울고, 우리도 울고……. 눈물바다였지.” 그러나 학생들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그럼에도 김PD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사회의 제보와 협조 덕분이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언론에 제보할 수 있는 사회, 그 제보가 사실이라면 언론인들이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그 이야기가 공론화 돼 변화가 도출될 수 있는 사회. 김PD가 꿈꾸는 사회란 그런 모습이었다. “언론인들의 문제의식에 색깔을 덧씌우는 것이 언론의 자유에 가장 해가 되는 행위에요.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색깔입히기’가 더욱 대놓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죠.”

“젊은이들이여, 분노하라”

매순간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분노의 도가니 속에 살아온 김PD.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하자 “분노하라”라는 짧지만 강한 대답을 던졌다. “386세대는 세상을 스스로 바꿔 본 세대에요.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 물질적 성장은 그들 세대 스스로의 힘으로 진척된 것이니까. 지금 세대들도 스스로의 자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해요. 각 세대마다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지금 필요한 에너지는 분노의 에너지가 아닐까요.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출할 줄도 알아야겠죠.”

‘남극의 눈물’, 대한민국을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어 주길

현재 그는 한국 사회에의 시각을 ‘세계’로 옮겼다. MBC에서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에 이어 방영되는 ‘남극의 눈물’을 2년 간 준비해 오는 12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10년의 PD생활 동안 쉴 틈없이 달려와서 일까,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쉬고 싶은데…….”라는 우스갯 소리를 던진다. 하지만 그의 대답과 달리, 김PD의 사무실 컴퓨터는 남극의 경이로운 자연경관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수많은 자료들로 어질러진 그의 책상을 보며 당분간 그가 원하는 휴식을 취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기자의 머리를 스쳤다. 묵묵히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김PD. 앞으로 그의 작품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눈물, 분노 그리고 기쁨의 도가니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

김재희 기자
jaehee0915@yonsei.ac.kr
사진 배형준 기자
elessa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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