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내게 말을 걸다 2회

얼마 전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보고 많은 공감을 했다.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진정한 꿈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였는데 어느덧 3학년에 들어서 친구들과의 대화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게 된 요즘의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했다. 영화는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은 인도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한 공대를 배경으로 한다. 성적과 미래에 대한 압박으로 자살을 택한 학생의 주검을 두고도 총장은 무조건적인 공부와 취업만을 강조한다. 이 가운데 이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란초, 그를 통해 그 동안의 삶을 버리고 원하던 사진작가의 길을 택한 파르한, 소신을 지킨 대답으로 원하는 직장을 얻은 라주, 이들의 재회는 나와 나의 친구들이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던지던 질문에 해답을 주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릴 때는 ‘내가 원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한 잡지를 보고 첼리스트 장한나에게 푹 빠져 버렸다. 내 나이 무렵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녀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자연스레 첼로라는 악기에도 관심을 가지게 했다. 갑작스럽게 피아노를 그만두고 첼로를 하겠다던 나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조금 생소한 악기인데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던 듯하다. 철없던 나는 특단의 조취를 취했다. 한 달 내내 매일 힘없는 얼굴로 방에 틀어박혀 장한나의 첼로 협주곡만 계속 듣는 한편 부모님 앞에서 정신 나간 아이처럼 한 번 씩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장한나의 뒤를 잇는 첼리스트의 꿈을 안고 마침내 첼로를 켤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몸에 꽤 무거웠던 첼로를 짊어지고 낑낑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내려도 나는 정말 행복했다.


꿈을 다 이루었다면 아마 세계 모든 분야의 최고가 되어있었을 나의 또 다른 한 때 꿈은 천문학자였다. 어느 날 가족 여행을 떠난 우리는 불빛 하나 없던 깜깜한 새벽에 춘천에 도착했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해서 잠들었던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인생 10년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말 그대로 하늘 반 별 반이었던 밤하늘은 나로 하여금 별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도록 했다. 이후 담임선생님께서 빌려주신 천체 사진 CD를 몇 번이나 다시 보았는지 모르겠다. 『아폴로 13호』라는 영화를 보고 너무 감동하여 눈물 콧물 범벅으로 나는 꼭 NASA에 가서 일하겠다는 나름의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언젠가 꼭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아름다운 별을 찾아서 나의 이름을 붙이겠다는 큰 포부도 가슴에 품었다. 그러나 어느새 돌아보니 악보와 별을 보는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고 시키는 공부만 하면 행복해진다는 베스트셀러 행복 매뉴얼을 손에 든 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공부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은 마치 ‘대학만 가면 남자친구 생긴단다’라는 말과도 같았는데 왜 그리 맹신했는지 모르겠다. 누가 떠밀어서 한 공부가 아니었지만 지금 후회하는 것은 내가 공부를 했던 이유가 어릴 때처럼 순수하게 열망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서라기보다 인정받는 것을 즐겼기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제대로 돌아보게 된 것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에 입학했는데 덜컥 ‘신입생 증후군’에 걸려버리고 난 뒤였다.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졌는데 갑자기 여기에 무엇을 위해 왔는지 알 수 없었고, 정말 열심히 살아온 나날들이었는데 나와 똑같은 결과물들을 손에 쥔 이들이 그 커다란 잠실 실내체육관을 다 채울 그만큼 많이 있었다. 아마 영화 『토이스토리』에서 스스로의 모든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버즈 라이트이어가 장난감 가게에서 자신과 똑같은 장난감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 느낀 그 아픔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한다.


사실 답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해 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동안의 모든 것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 두려워 우리는 귀를 막아버린다. 너무 이상적인 답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한 ‘진짜’ 행복 매뉴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듣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인생이라는 단면 도화지가 딱 한 장이 있어서 여기에 못 그리는 무언가는 무슨 수를 써도 다시 그릴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이 젊은 날 스스로가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눈을 감는 그 순간 ‘이것만은 꼭 해봤어야 하는데’하는 것이 없을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사실 다만 그 기한을 알 수 없을 뿐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정말 원하는 삶을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영화 『세 얼간이』에 내가 유난히 공감한 것은, 그리고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이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들 중 몇몇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무언가에 도전하기 위해서 그것을 일정 부분 혹은 송두리째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가지 않은 길’이기에 정말 걸어보면 관념 속의 풍경과는 어떻게 다를지 예측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나 역시 이 점을 깨닫고 있기에 괴롭고, 무조건 현재의 길과 달라도 진정 원하는 삶을 위해 뛰어들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어떤 길을 가든 최소한 자신의 진정한 꿈에 대해 신중히 돌아보고 발걸음을 옮기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때로 우리가 아직 뒤집지도 않은 패를 확신해 버리고 만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S. Stella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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