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키의 웹툰사냥 2화

오늘은 월요일. 나, 윙키는 연재를 꼬박꼬박 열심히 하겠다는 독자들(대부분은 지인)과 『연두』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핑계를 구구절절 대자면, 나의 가족사와 습관들, 그리고 현재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개인 신상을 탈탈 털 수밖에 없으므로, 사죄의 말만 염치없이 전할 뿐이다. 모든 일을 마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며, 윙키라는 필명이 주는 압박감이 떠올랐다.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 이런 사태를 막겠다는 낯없는 말만 손끝에 타닥타닥 전할뿐이다. 염치없다. 죄송하다. 진심으로 앞으로는 이러지 않겠다.
오늘은 윙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재에 늦은 날. 그래서 그 기념(헐)으로 웹툰 계의 지각대장, 바로바로 강풀을 소개하겠다. 강풀을 ‘지각대장’이라는 수식어로 소개하며 ‘윙키의 지각사태’와 엮어서 자신의 과오를 설렁설렁 넘어가려고 하냐며 비난을 한다면, 죄송하다. 그러나 강풀이 연재 지각으로 유명 한 것은 단순히 마감을 지키지 못한다는 팩트 이상의 함축적 의미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강풀이 늦는 이유와 늦은 경우, 그리고 늦을 때 남기는 말들을 통해 강풀을 보는 것은 전혀 궁색하지 않다는 말이다.
강풀의 지각 역사 이전에 그의 연재작들을 살펴보면, 이 아저씨 참 극단적인 매력이 있다. 전혀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스릴러물인 ‘미스테리심리썰렁물’시리즈를 내는 한편 ‘그대를 사랑합니다’, ‘순정만화’, ‘바보’ 등의 몽클몽클한 사랑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런 줏대 없음이 ‘매력’으로 승화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잘 만드니까. 재밌으니까. 웹툰의 기본은 뭐라고? 바로 부담 없는 재미라니까. 강풀은 아주 다르다 할 수 있는 로맨스물과 스릴러물을 각각 잘 만드는 희한한 사람이다. 어떻게 그럴까?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다. 결론은 ‘스토리’에 있다.
앞서 분석한 ‘마음의 소리’ 같은 경우에는 스토리 보다는 병맛이라는 키워드와 그에 걸맞은 그림체가 주 관찰 대상이었다. 그러나 강풀의 만화를 즐길 때에는 무엇보다 스토리에 흠뻑 빠지는 게 상책이다. 한식 잘 만드는 요리사가 양식도 잘 만들고 짜장면도 잘 만들어 낸다. 스토리를 짤 줄 아는 사람은 로맨스도 호러도 스릴러도 코미디도 일단 기본을 깔고 들어간다. 강풀은 웹툰이 지향하는 편안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간단치 않은 스토리를 촥촥 풀어간다. 그의 수많은 작품이 영화화 된 것은 이러한 스토리 구조를 영상화 하는 데 절대 허접하지 않다는 영화인들의 판단이 필요했을 터이다. 이해가 쉽도록, 그리고 강풀의 만화를 소개도 할 겸, 예를 하나 들자면 ‘타이밍’을 들겠다.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갈 길이 먼 오늘의 글에 걸맞지 않으니 생략하겠다만, 간략히 소개를 하자면 시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정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미래의 일을 되돌리고 현재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참 추상적으로 잘 함축한 것 같아 뿌듯하다. 어쨌든, 초능력자가 다섯, 사실은 그 이상이나 되고 각자가 그 능력을 가지게 된 경위도 다 다르므로 스토리는 자칫하다 엉망진창이 되기 쉽다. 게다가 웹툰은 한 주에 많아봤자 두 번 연재를 하므로 독자들을 지치거나 화나게 하는 연재를 이끌어서도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강풀의 스토리 전개는 탁월한데, 어느 캐릭터 하나 죽이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스토리를 융화시키기도 성공한다.
여기서 강풀이 지각하는 이유가 하나 나온다. 바로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다 보니’ 이다. 스토리 잡는 거 잘해서 늦을 때 이런 변명 하는 게 굉장히 새삼스럽다. 그러고 보면 이사람 만화 한 편에 많은 걸 담았구나 하는 걸 느끼니까. ‘그대를 사랑합니다’만 보아도 그렇다. 그냥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서로 사랑하는, 그런 게 아니다. 아무래도 사랑하고 있는 당사자가 주 독자층과는 괴리가 있다. 그러니 공감을 형성할만한 인간적인 배경이나 장치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역사나 생활이 스토리의 큰 뼈와 잔뼈를 이루어 골격을 형성하게 된다. 생각해 봐라. 드라마를 볼 때도 저 캐릭터가 진짜 있음직 할 때 더 공감이 되고 드라마도 재미있지 않나? 그게 바로 ‘생동감’과 ‘사실성’인데, 강풀의 스토리는 튼튼하여 이러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강풀은 주로 스토리의 마지막회에 늦는다. 기억을 해 보자면, 타임 때도 그랬던 것 같고, 어게인 때도 그랬던 것 같고. 아닌가? 여튼 실제로 마지막 회 쯤에 잘 늦는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스토리를 마구 풀어 해쳐놓고 수습한다고 바쁜 건 전혀 아니다. 다만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스토리를 그림으로 풀어내려니 힘 드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강풀은 버릇처럼 자신의 그림실력이 달린다고 하는데, 내가 봐서는 그림실력이 달리는게 아니라 스토리 실력이 빼어나서 그림 실력이 스스로 답답한 거다. 마치 연애편지를 쓰려고 펜을 드는 순간 수많은 로맨틱한 말들이 가슴에 벅차올라도 막상 쓰려고 하면 필력이 달려서 답답한 것처럼 말이다.
춘추가 허락하는 이천 자 내외로 강풀 소개하기는 아아아악 실패한 것같다. 그는 내가 이렇게 줄줄 설명한 것 보다 스토리 전개에 훨씬 뛰어나며 그림체도 절대 병맛까지는 아니다. 그러니 한번 보라. 추천작은 『타이밍』, 『어게인』, 『그대를 사랑합니다』.

윙키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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