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향기 2화

올 7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에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외규장각 의궤를 비롯하여 전국의 여러 귀중한 의궤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마지막 날인 9월 18일, 친구들과 함께 이 전시회를 찾았다.

의궤(儀軌)는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중요한 행사와 의식의 모든 전후사항을 그림과 함께 상세히 기록한 책으로, 그림과 기록이 어우러진 일종의 종합 보고서이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풀어보자면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을 합친 말로, ‘의식의 모범’이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이 의궤를 만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훗날 이와 비슷한 행사를 치를 때 이를 참고해 보다 효율적인 행사가 되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행사에 사용된 각종 물품과 경비, 행사에 동원된 사람 등, 행사와 관련된 모든 크고 작은 내용을 모두 기록, 국가의 재정이 낭비되거나 전용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큰 목적의 하나였다. 의궤는 서고에서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분상용(分上用) 의궤와 임금님이 친히 열람하기 위해 만들어진 어람용(御覽用) 의궤 총 2권이 한 벌로 만들어진다. 이번에 전시된 의궤들은 분상용보다 화려하게 만들어진 어람용 의궤들이다.

▲ 어진도사도감의궤


이처럼 의궤는 오래도록 보관하면서 왕실에서 열람하는 책이었기 때문에, 의궤를 제작하는 데에는 당대 최고의 기술과 재료가 동원되었다. 글자는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해서체로 또박또박 작성되었다. 글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물건의 형태나 연회의 모습 등을 그림으로 자세하게 묘사하기 위해 최고의 기량을 지닌 궁중화원들이 동원되었고, 채색할 때 쓰는 안료 또한 최고급 광물성 안료를 주로 사용, 색이 쉬이 바래지 않게 했다. 제본 역시 실로 묶는 다른 책과는 달리 놋쇠로 감싼 후 못(박을정)을 박아서 마감했다.

▲ 영녕전수개도감의궤


어람용 의궤는 임금님이 직접 열람하기 때문에 분상용 의궤보다 훨씬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종이는 일반적인 저주지(紵紬紙) 대신 고급 초주지(草住紙)를 사용하였고, 채색도 보다 정교하게 하였으며, 삼베로 된 표지 위에 바로 제목과 보관처를 기록한 분상용 의궤와 달리 비단으로 장정하고 따로 제목을 종이에 써 붙였다. 마감할 때도 못을 박을 부분에 국화모양 장식을 대고 못을 박아 화려함을 더했다.

이러한 의궤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서 볼 수 있는 조선 특유의 기록정신과 최고의 서적 제작 기술이 어우러진 한국 기록문화유산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 헌종대왕경긍산릉도감의궤


의궤는 오늘날에도 큰 의미를 지닌다. 최고의 기술과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서적 자체만 보아도 문장, 서화, 직조기술 등 당시 기술의 발전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내용면에서도 의식에 사용된 모든 물품과 의식의 과정 등이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 음식, 의복,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한다. 심지어 함께 실린 공문서를 보면 관청의 업무와 그 소속도 알 수 있고,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에게 지급된 금액을 보면 당시의 사회상과 물가 수준 등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제작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사, 문화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사료의 보고인 셈이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의궤가 등재된 것도 이러한 가치가 인정받은 까닭이다.

외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었던 어람용 의궤는 19세기 들어서 수난을 당하게 된다. 1866년, 조선의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프랑스군이 강화도로 침공해왔다. 이를 병인양요(丙寅洋擾)라 한다.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저항에 부딪혀 퇴각하면서 외규장각을 탈탈 털어갔다. 이 때 외규장각에 소장되었던 어람용 의궤도 함께 도난당했고, 그들이 채 가져가지 못한 책은 규장각 건물과 함께 화염에 휩싸여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 숙종국장도감의궤


프랑스 군대에 의해 파리 국립 도서관으로 보내진 의궤는 중국 도서로 분류되었고, 프랑스 정부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75년 파리국립도서관의 촉탁 직원으로 일했던 박병선 박사가 파리도서관이 의궤를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목록을 정리했다. 프랑스에 있던 의궤들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1년, 서울대학교에서는 한국 정부에 의궤 반환을 추진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1992년 대한민국 외무부에서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반환 요청을 하였다. 93년 미테랑 대통령이 반환 뜻을 비쳤으나, 이는 경부고속철 부설권을 프랑스 TGV에서 따내기 위한 의도가 강했던 탓에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이후에도 몇 번 반환 교섭이 있었지만, 프랑스 측에서 항상 ‘등가교환의 법칙’을 내세우며 그에 상응하는 책을 우리나라에 요청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 G20 정상회의때 극적으로 교섭이 타결되어, 2011년 2월에 정식으로 반환 약정을 체결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외규장각 의궤 297권 전권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는 반환된 의궤들을 처음 공개적으로 선보이는 자리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책으로만 보던 의궤들을 직접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조선왕조의 철두철미한 기록정신과 서책의 화려함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이번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이 우리나라 기록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유승우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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