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2부 서단비 기자의 부기자 일기

‘덫’에 걸리다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 이라는 것을. 정신을 차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라.
「덫에 걸린 쥐에게」- 에리히 캐스트너(Erich Kastner)


3학년 1학기, 나는 춘추에 지원서를 냈다. 서서히 취업 준비를 시작할 무렵인 동기들은 내가 “춘추에 지원했다”고 말하는 순간 “미쳤다”고 답했다. 친구들의 타박을 들을 때마다 가끔 ‘내가 춘추에 지원한 이유는 뭘까?’ 돌이켜본다. 생각해보면 언론인에 대한 거창한 꿈이나 소위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지원하진 않았다. 아마도 107기 수습기자 모집 현수막을 흘깃 본 후 갔던 도서관에서 ‘덫에 걸린 쥐에게’라는 풍자시를 읽는 순간, 나는 춘추라는 ‘덫 아닌 덫’에 걸린 걸지도 모르겠다.

진로를 정하기엔 너무 막연한 상태였다. 나는 스물 하고도 두 살 임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에는 예민했지만 급변하는 주변 상황에는 둔감하게 반응했다. 목표도 없이 무조건 ‘일단 잘 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달렸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목표가 없으니 아무리 잘 달린다한들 결승점이 없고, 당연히 ‘골인’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목표를 찾기 위해, 나의 내적 공간에 더욱 깊이 파고들기 위해 나는 춘추에 지원했다.


‘춘추’라는 ‘업’

 

▲ 수습기자의 능력을 다각도로 평가하는 ‘원주세미나’를 통과해야 부기자에 임명될 수 있고 ‘폭풍간지’ 연세춘추 명함을 받을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부기자 일기다. 이 말은 곧 내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부기자 일기다. 이 말은 곧 내가 ‘결국엔’ 부기자가 됐음을 의미한다. 원주세미나가 진행됐던 2개월 전만 해도 난 정말 ‘수습기자 마치고 나가신(?)’ 동기 중 한사람이 될 줄 알았다. 원주세미나 과제는 많았다. 졸업요건에 필요한 자격증 준비와 함께 넘치는 과제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절실히 부기자를 소망하며 나름 무던히 애썼다. 세미나 과제 마감시간을 1분 남기고도 타이핑을 멈출 수 없었다. 물론, 내 노고를 알아달라는 말은 아니다. 춘추의 ‘업(業)’이 항상 그렇다는 것일 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춘추 동기들도 나와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은 언제나 자기합리화이며 핑계, 변명 밖에 될 수 없다는 것. 열심히 노력한 끝에, 나는 원주세미나를 무사히 마친 후 임명식에서 ‘폭풍간지’ 연세춘추 명함을 받았고 졸업요건인 자격증도 손에 넣고 웃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단’비입니다

 

 


기사를 쓰려면 취재를 해야 한다. 일반보도 취재에 비해 인물 취재를 위한 접촉은 훨씬 까다롭다. 취재대상의 일정을 파악하고 접근방식과 인터뷰 내용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시간을 빌리는’ 입장은 상대적으로 ‘을’의 입장이 된다. 취재원의 일정에 맞춰 수업을 포기하거나, 잠을 포기하거나,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포기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1순위로 두는 것은 그만큼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얻는 것 중 하나로 개인적으로는 명함조차 구경하기 힘든 유명인사들을 춘추의 지위를 빌려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내겐 김주하 앵커와의 인터뷰가 그랬다. 기억에 남는 일은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가 집필한 책에 사인을 받는데, 내 이름을 ‘담비’로 쓴 것. 고쳐주겠다는 김 앵커에게 나는 “나중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맞게 고쳐달라고 부탁드리겠다”고 말했다.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왔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 얘기를 들은 엄마는 내게 “건방지다”고 하셨고 나도 그 말에 수긍했다. 그러나 사람일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재밌는 것 아닌가? 혹시 모를 후일의 만남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여러 취재원들에게 전화를 한다.
“안녕하세요. 연세춘추 서단비 기자입니다. 취재 관련 일로 연락드렸는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그래도! 아자아자!! 파이팅!!!


 

 

▲(위) 수습기자 시절을 보살펴준 일명 ‘파파’(부국장님)와 함께! (아래)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날 떠났던 경포대 MT, 공교롭게도 같이 간 사람들 모두 취재2부가 됐다.

 


으레 그렇듯, 고(苦)가 있으면 감(甘)도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춘추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 가장 즐거웠다. 마음먹고 떠나지 않으면 1년에 한 번 구경하기도 힘든 여름 바다도 보고 타칭 ‘알콜 중독자’인 부국장님과의 ‘소주 배틀’ 등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춘추는 ‘일’을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은연중에 서운한 마음이 쌓일 수도 있는데, 여행을 통해 서로의 속마음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실컷 “춘추 힘들다”고 해놓고 “그래도 즐겁다”며 감동과 훈훈함 속에 마무리를 짓는 이유는 다음 주 월요일 108기 수습기자 면접이 있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 아니할 수 아니하니 아니하나 아니하다고 할 수 없기에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아니할 수가 없지. 
 

서단비 기자  rinascimento@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