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야로, 『심야식당』(연재중, 현재 7권까지 출판)

야식

당연한 이야기지만, 밤에는 보통 식당들이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럴 때 보통 우리들은 야식을 시킨다. 파닭, 족발, 순대, 떡볶이 등등. 별로 몸에 좋지는 않지만 어쨌든 입에 잘 들어간다. 야식은 아침점심저녁의 하루세끼 자연스러운 식습관에 맞지 않는 음식이며, 원래 잠들어있어야 할 시간에 먹는 것이기에 생활패턴을 깨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밥을 먹어야 하는 데에는 또 어떤 기구한 사연이 있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밤에 밀린 시험공부를 하면서 먹는 것도 그런 것 중 하나일지는 모르겠다.


밥집


만화의 제목은 ‘심야식당’이지만, 그 식당의 이름은 그냥 ‘밥집(めしや)'이다. 밤 12시에 열어서 아침 6시에 닫는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고 있을 시간에 거기에 가는 사람들은 깬 채로 밥을 먹는다. 먹으면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푼다. 메뉴판에는 된장 정식 하나만 써있다.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재료가 있는 한 만들어준다. 손님이 재료를 가져와도 된다.
한 화마다 음식이 하나씩 나오고, 그것을 시킨 사람들의 사연이 5장정도 나온다. 사람들은 평범하다. 간혹 가다 거기서 밥을 먹은 사람이 드라마나, 성인비디오나 스포츠대회에 나와서 유명해지긴 하지만, 그림체가 워낙에 화려함이나 TV스러움과는 멀기 때문에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평범하든, 좀 예쁘든, 돈을 못 벌든 각기 식당에 와서 이야기를 꾸려간다.

▲ 식당 주인. 사람들은 그를 '마스터'라고 부른다. 은근 훈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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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은 이를테면 이렇다.
1. 어묵국. 어묵국에는 무와 쇠고기 힘줄, 달걀만이 들어간다. 마유미라는 어느 뚱뚱한 여자가 그것을 많이 먹는다. 어느 날, 잘생긴 의사에게 반했다고 한다. 다이어트를 한다. 스트레스 해소로 그 어묵국을 대차게 먹는다. 살이 더 찐다. 의사가 볼 때마다 놀란다고.
2. 바삭바삭한 베이컨. 독신이며 전직 교통 경찰관인 타지카와는 베이컨과 에그를 안주로 맥주를 먹는다. 어느 놀 듯처럼 생긴 남자도 그것을 항상 먹는다. 서로는 서로를 신경안쓰는 척하면서도 신경쓴다. 경찰과 맞수였던 어느 폭주족 두목이 식당에 등장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우리 한번 밥 먹은적 있었잖아. 그 때 너가 나한테 아이 잘 키우라고 했었지. 나 낙태하려고 했었는데...'그녀는 남자애의 어머니였다. 그래서 그 어머니하고 타지카와는 재혼해서 잘 산다.
3. 무채. 코모리는 조연 배우이다. 회가 없는 무채를 좋아한다. 어느 날 주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무채에 회를 넣어서 먹는다. 그러다가 위궤양이 걸려 캐스팅이 취소되었다. 때때로 무채만을 먹으로 가끔 왔다. 엑스트라처럼... 하지만 자신의 딸이 나중에 사극 시리즈에 주연으로, 자신도 보조로 캐스팅됬다. 그는 회가 가득 든 무채를 먹는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별 것 없고, 소소하고, 재밌다.


우리들의 공간



읽고 나서, 심야식당이란 곳이 부러웠다.
밤에 신촌에 걸어다니면서 갈 곳이 없다는 지겨운 이야기는 제쳐두더라도, 한 명 한 명 나란히 앉아서 심야에 밥을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말을 하게 되는 곳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밥이 맛있어서만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주인이 말을 정말 잘해서만 그런 것도 아닐 테다. 그런 곳의 무엇이 특별한 것인지 구지 분석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럴 가게를 만들 자신도 없고. 내가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마스터에 어떤 구체적인 사연이 있어서 이런 가게를 만든 걸까. 모른다. 마스터도, 식당에 온 사람들의 사연을 캐묻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만 조용조용히 옆의 단골이 무얼 했는지를 묻고, 물음받으면서 약간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러면서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에는, 누군가가 가재를 가져와서, 주인장은 그것을 요리해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나눠서 먹는다. 밖에 눈에 내리는 사이.
왠지 그런 곳이 있다가 없어지면 몹시 서운할 것 같다.


*다음에는 채민의 '그녀의 완벽한 하루'로 연재가 계속됩니다.

 

심심풀이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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