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전을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소위 ‘놀 거리’들이 끝나고 이번 학기 남은 공식일정이라고는 시험뿐이다. 하지만 중간고사도 한 달 가량 남은 시점에 당장 공부에 열을 올리기는 시기상조로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체 성적평가에서 적게는 10%, 많게는 50%까지도 차지하는 그것, 조모임이 남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조모임의 시절이 왔다.
“몇 학점을 듣느냐 보다는 조모임을 몇 개나 하느냐가 그 학기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것 같다”라고 이화여대 김시연(소비자/경영・08)씨는 말했다. 대학생활에서 조모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조모임을 어떻게 꾸려나가는가 하는 것은 꽤나 중요한 문제다. 조모임이 잘 풀린다면 사람도 얻고 학점도 얻는 알찬 한 학기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과는 참혹할 테니까. 하지만 조모임을 ‘잘 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이번 ‘연두’에서 조모임을 성공으로 이끄는 법을 준비해봤다.

조모임의 시작

아는 사람들과 함께 조를 짜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조 구성원들과는 조모임에서 처음 만나는 경우가 많다. 조원들과는 발표 혹은 보고서라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만난 관계이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인 커뮤니케이션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 언론홍보영상학부 진보래 강사는 “집단 결성 3주 이내에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과업 성취 능력이 높다”고 말한다. 조 구성원 사이에 돈독한 관계가 형성될수록 조모임의 결과 역시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활용해볼 수 있을까? 조가 구성되고 난 후 첫 모임을 ‘사적인 모임’으로 구성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식사를 같이 하거나, 가벼운 술자리를 하며 사람 대 사람으로 먼저 친해지는 것이다. “조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조모임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왕승훈(전기전자・10)씨의 말을 통해 이 점을 확인해볼 수 있다.

회의의 기술

하지만 조원간의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됐다고 해서 조모임이 성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거나, 너무 길거나,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거나,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등의 상황은 회의를 늘어지게 하고, 조원들 사이의 인간관계마저 침식해나간다. 여러 사람이 하는 일에서 개인이 자신의 노력을 줄이는 ‘사회적 태만’이나 의견의 일치를 이뤄야 한다는 압력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르고 마는 ‘집단 사고’가 형성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회의는 성공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회의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이다. ‘그룹의 구성원들이 효과적인 기법과 절차에 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상호 작용을 촉진해 목적을 달성하도록 돕는 활동’이라고 정의되는 퍼실리테이션. 최근 기업에서는 그 중요성을 고려해 전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를 채용하는 것이 유행이다. 전문적인 퍼실리테이터를 조모임에 데려올 수는 없겠지만, 간단한 퍼실리테이션 스킬이라도 회의에 적용해본다면 훨씬 생산적인 조모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간단한 퍼실리테이션 스킬들

회의를 시작할 때에 회의의 목적을 확실히 정리하고 가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주제와 목적의식이 확실하지 않은 회의일수록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시간만 길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회의 전에 구성원들이 서로 회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훨씬 효율적인 회의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회의 종료 시간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의 시간적 제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성과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과정이다. 흔히 ‘브레인스토밍’이라 불리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도 전에 평가를 해버리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발제를 하기 어렵다. 또한 말이 되건 되지 않건 간에 상관없이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디어의 씨앗들을 엮어 더욱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아이디어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한다’는 간단한 원칙을 반드시 지킬 필요가 있다. 한 번에 한 이야기에 집중해 아이디어를 완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모인 아이디어 가운데 실제로 사용할 아이디어를 골라야 한다. 이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주도적으로 반영되는 환경을 피하기 위해 ‘투표’방식을 이용하면 좋다. 한 사람이 3~4개의 투표권을 가지고 투표하는 ‘복수 투표’방식이나, 각각의 아이디어에 대해 개인의 생각을 손가락 점수로 표현하는 ‘손가락 투표’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성과’라는 생각은 조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준다. 자신과 집단을 같은 선상에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발된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더욱 집중적인 토론을 펼친다.

하지만 회의 과정이 항상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들이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의사전달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고, 그에 따른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구성원 중 한 명(조모임의 경우 대개 조장)이 구성원들의 논리가 어긋나지 않도록 바로잡는 역할을 해준다면 이러한 문제를 막을 수 있다. ‘어떠한 사실을 바탕으로, 어떤 근거를 통해, 어떤 의견에 도착하게 되는지’ 3단계로 나눠 생각을 정제한다면, 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의견의 대립이 선명해지면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때는 조장(으로 대표되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는 사람)이 구성원들의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보다 높은 목적과,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립하는 양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회의의 맥락을 짚게 하면 갈등을 해결하고 협조적인 관계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박정현 기자 jet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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