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그리고 message

현민이 눈을 뜬 곳은 주변이 온통 황토색인 방이었다. 이른 아침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 남자의 눈을 비추었다. 현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현민은 비명을 질렀다. 팔이 욱신거렸다. 아마 떨어지던 할아버지와 부딪히며 팔이 접혔었나 보다. 현민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장미꽃 향이 났고, 작지도 않은 방에 현민 혼자 누워있었다. 방은 아주 단조로웠다.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문 하나만 보였다. 현민은 발가락 하나씩 움직여 보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방 한쪽 끝에는 짐들이 잔뜩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벽걸이 수납용 서랍이 있었다. 현민은 천천히 일어나 서랍으로 다가갔다. 서랍 속에는 자신이 입던 옷이 있었다. 옷은 더러워져 있었다. 바닥에 심하게 긁혀있었고, 옷은 핏자국으로 얼룩덜룩하게 더렵혀져 있었다. 현민은 황당하다는 듯이 옷을 쳐다보았다.
“아! 이제 일어나셨어요?”
방의 문이 열렸다. 아래위로 흰 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들어왔고 그 뒤로 흰 옷을 입고 있는 장정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
“아… 네… 여기는… 제가 어떻게 된 거죠?”
현민은 그때의 충격으로 기억이 사라진 듯 여자에게 되물었다.
“아 역시, 기억이 나지 않으신가 보군요. 제가 듣기로는 옆방에 계신 할아버지하고 부딪혔다고 하더군요.”
“아… 네 기억이 잘 나질 안네요.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아 여기는 신포니에테 국립 자연센터입니다. 국가의 목표에 맞추어 환경을 살리고자-”
현민이 중간에 끼어들며 말을 했다.
“병원이 아닙니까?”
“아?! 모르셨어요? 얼마 전부터 국책사업의 일부로서 전국 병원은 다 폐지해 버리고 자연센터로 대치되었어요. 그래서 벽도 환경을 살리고자-”
현민이 또 중간에 끼어들며 질문을 하였다.
“저… 나가봐도 되나요?”
“아! 네! 깨어나셨다는 것은 완벽하게 치유가 된 거라서 가셔도 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과학기술의 도움 없이 최소한의 의학으로 인간의 회복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거죠. 경우에 따라서는 일주일 이상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이 며칠인거죠?”
“네 지금은, 49년 2월 45일입니다.”
여자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현민은 표정이 굳어 버렸다. 그는 자신의 가방 속에서 여권을 꺼내었다. 그리고 날짜를 확인했다. 현민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중행으로 가는 비행기가 내일이면 있는 것이다. 신포니에테에서 현민은 13일을 누워있었던 것이다. 현민은 얼굴이 붉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옷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저… 이 옷… 씻을만한 곳이 있을까요?”
“네, 보조원, 이분 세탁실로 안내해 드려요”
한명의 남자가 현민을 이끌었고, 다른 한명은 여자를 따라 갔다. 현민은 남자를 따라 갔고, 여자는 옆방으로 들어갔다.
“나! 싫어… 여기… 싫다고! 아악! 손대지마!”
여자가 들어간 문틈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현민은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곧이어 여자가 들어간 방의 문은 소리를 내지도 않고 스르르 닫혀버렸다. 현민은 남자에게 물었다.
“저… 저 방은 뭔가요?”
현민을 내려다보며 잠시 동안 말을 아끼는 듯 했다. 남자가 눈을 힐끔거리더니 현민을 보고 얘기를 했다.
“저번에 당신과 부딪혔던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상당히 외상을 많이 입으셨다고 하시더군요.”
남자는 말을 끝내고는 다시 세탁실로 걸음을 옮겼다. 현민은 그 노인이 있다는 방을 고개를 돌려 다시 보았다. 그사이 보조원이라는 남자는 저 멀리 가고 있었다. 현민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남자를 뒤따라갔다. 현민이 도착한 곳은 여전히 사방이 황토색이었다. 다만 커다란 방에는 많은 세탁기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마치 보조원의 옷이나 아까 그 여자가 입고 있던 옷처럼 모든 세탁기가 새하얀 색이라는 것 이었다.
“여기입니다. 다 씻을 때 까지 저는 문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보조원은 말을 마치고 인사를 하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커다란 방에는 현민혼자만이 남겨졌다. 많은 세탁기들은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햐… 역시… 국립… 응? 뭐더라? 음…”
현민은 한참을 생각하였다.
“그래 국립병원이었지…? 맞아! 나라에서 지어서 그런지, 여기 있는 세탁기들… 전부 꿈의 세계 제품들이구만”
한참을 생각하던 현민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부러운 눈빛으로 세탁기의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슥 훔쳤다. 먼지 하나 묻어 나오지 않았다. 손을 비벼 확인을 하는 현민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으며 커다란 세탁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대걸레용 빨래대로 옷을 가지고 갔다. 현민은 물을 틀고 옷을 적셨다. 옷에서는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위의 찬장에 한손을 올려 더듬더듬 세제를 찾았다. 현민은 손에 잡혀 내려온 것을 살폈다.
“뭐야… 세제도 꿈의 세계야? 참… 돈이 넘쳐나는구나…”
현민은 세제 통을 꾹 눌러 손에 한가득 짜내었다.
“여기…서! 이…거! 많이 써봐야 되겠지?”
현민은 세제를 한가득 손에 짜내어서는 자신의 옷에다 묻혔다. 옷에는 핏덩이가 이곳저곳에 뭉쳐있었다. 세제를 묻혀도 소용이 없자 꿈의 세제라고 적힌 세제 통을 한번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비싼 세제라고 묻히기만 해도 지워질 거라 생각했나 보다.) 옷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양손으로 북북 문질렀다. 조금씩 핏자국이 사라져갔고 핏덩이들도 세제에 녹아 들어갔다. 물을 틀어 옷을 헹궈 내었다. 핏자국이 조금 사라지자 꽃무늬의 옷이 희미하게 보였다. 현민의 몸은 잠깐 경직되었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옷을 계속해서 문지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문질렀다. 서서히 꽃무늬가 진해져 갔다. 현민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문질렀고 그때마다 눈시울은 점점 붉어져갔고 눈물 또한 고이는 양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자 눈 밑에 달려 있던 눈물이 씻고 있는 옷 위로 떨어져 내렸다. 현민은 핏자국이 사라졌지만 잠시 동안은 꽃무늬마저 없애려는 듯이 옷을 박박 문질러댔다. 옷이 깨끗해지자 물을 잠그고는 입고 있던 흰 옷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세탁실 밖을 나섰다. 빨래가 끝난 옷을 들고 문을 나선 현민의 옆에는 보조원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조원은 현민을 이끌고 현민이 있던 방 앞까지 안내를 하였다. 현민은 말없이 따라가기만 하였다. 현민도 모르는 사이 보조원은 방 앞에서 인사를 하고는 사라지고 있었다. 현민은 자신이 있던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곧장 들어가지는 않고 고개를 돌려 아까 여자가 들어갔던 노인의 방을 쳐다보았다.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현민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노인이 있던 방으로 걸어갔다. 방의 문에다 귀를 대고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하였다. 현민의 주변으로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는지 조심스레 행동을 하였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방문을 조금 열었다. 방문은 아까와는 다르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현민은 두 눈을 찔끔 감았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문틈 사이로 노인을 살펴보았다. 노인은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외상만 없어 보일뿐 노인의 팔과 다리처럼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흰 천으로 침대와 함께 묶여 있었다. 현민은 시선을 돌려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문 여는 소리를 들었는지 노인과 현민은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저… 저기… 괜찮으세요?”

조현민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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