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시의 '도서관 속 영화관'

영화의 시작부. 토이스토리 시리즈를 수놓는 우디를 비롯한 장난감 친구들은 서로 편을 갈라 기차와 보안관과 과학자가 난무하는 스펙터클한 서부극을 찍습니다.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 사실 앤디가 어린 시절 장난감들과 놀던 모습이죠. 곧바로 이어지는 비디오카메라에 찍힌 앤디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다가오는 쓰라린 이별의 정서를 두 시간 내내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삶의 의미를 넘어 자신의 삶 그 자체였던 존재가 자신에게 등을 돌릴 때의 정서적 상실감은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까요. 자신에게는 소중한 존재였지만 사실 그에겐 자신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았음을 뻔히 알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건 미련한 집착일까요 숭고한 애정일까요. 우디와 버즈 정도만이 받을 수 있었던, 그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 다른 인형들은 실망감과 상실감을 동시에 느끼며 차라리 탁아소로 향하려 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견디지 못해 사랑의 철회를 잠시나마 고민하는 것을 이해심 좁은 이의 소심함이란 한 마디 말로 비난할 수 있을까요.

다른 애니메이션처럼 빠르고 재미있는 장면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두 시간 내내 관객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습니다. 앤디의 관심을 이끌려는 인형들의 ‘핸드폰 작전’에서부터 악당 ‘랏소’의 어린이집을 탈출하여 보니의 집을 넘어 다시 앤디와 마지막 해후의 순간까지 인형들은 한 순간도 멈출 수 없으니까요. 수많은 역경과 예상치 못했던 난관들을 뛰어넘어 한 걸음씩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동조하지 않을 재간은 없습니다. 관객 모두가 인형들이 앤디를 다시 만나기를, 그리고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순간을 잘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더 공고히 꾸려나가기를 바라니까요. 하지만 복잡하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와는 달리 픽사의 제작진은 자신의 기술력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현명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주인공들의 마지막 여정의 옆자리를 같이하게 되죠. 정서적으로 완전히 동조된 채로.

잠시 자신을 안아줬다는 것만으로 뛸 듯이 기뻐하는 인형들에게 그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 - 결국 떠날 것임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앤디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은 누구나가 받고 싶어하는 가장 온전한 모습의 사랑이 아닐까요. 그렇게, 『토이스토리 3』는 사랑과 이별의 보편적 정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끔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쓸쓸한 이별과 상실의 정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이 영화는 그래서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만남과 이별 앞에서 언제나 여려지니까요. 주인과 헤어져야 하는 인형들을 보며,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엄마를 보며 우리가 같이 속상해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관계의 단절은 어떤 이유로든 그 자체로 마음 아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헤어짐의 순간은 다가오고, 다가오는 시간에 저항하면서도 결국 그 순간을 대비하는 것은, 이별은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거나 자신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운명에 굴복하거나 나약한 의지 때문이 아닌 이별의 본성 자체일 거예요. 그렇다고 『토이스토리 3』가 이별은 사랑을 완성시켜준다는 등의 상투적인 결론으로 치닫지도 않습니다. 앤디의 사랑을 확인한 인형들은 그 순간을 덤덤히 받아들일 뿐이죠. “잘 가, 파트너(So long, partner).”라는 우디의 마지막 한 마디는 자신의 삶의 의미였던 사람을 떠나보내며 해줄 수 있는 모든 말일 겁니다. 그 한마디가 당신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있을 아픔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픽사의 이름만으로도 믿을만한,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따뜻한 영화가 9월 마지막 화요일과 수요일 6시 10분에 학술정보관 멀티미디어센터 미디어감상실에서 상영됩니다.

채재민 (경제·05/멀티미디어센터 영화클럽 '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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