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사기꾼, 신입생 사칭 사건의 주인공을 찾아서

지난 2010년 2월.
서울권 대학의 신입생 명단에서 동시에 발견된 이름 하나가 있었다. 같은 시기, 각 대학 단과대 클럽에서 비슷한 내용의 공고문이 떠돌았다. ‘이 사람을 조심하세요.’ 도대체 신입생을 비롯해 학과 회장을 포함한 다수의 재학생들까지 겁먹게 만든 이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당신은 뉴~규~??

이름: 김법진(가명)
나이: 1989년생 추정
특이 사항: ‘김경훈’, ‘최준영’ 등과 같은 이름으로 사칭하고 다니니 주의하시오.


‘김법진’은 고려대, 광운대, 단국대, 서경대, 서울대, 인하대, 한양대 등 서울 경기권에 위치한 대학을 순회하며 신입생인 척 사칭하고 다녔을 뿐 아니라 과 반, 동아리 내 인간관계를 파탄 내 선배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 희대의 사기꾼이다.

우리대학교도 김법진의 횡포로부터 벗어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피해자가 많았던 단국대와 인하대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김법진의 접근을 경험한 학생들이 꽤 있었던 것. 그가 행하는 사칭의 경로는 다음과 같다. 신입생인 척 접근해 회장들에게 명단을 확보한 후, 새내기와 선배들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숙식을 해결하려 들었고, 각종 문화 행사에도 참석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신상 정보를 조사했다는 설도 있다. (조사한 후 그 사람으로 사칭하고 다녔는지 여부는 미지수다.) 과연 김법진이 어떤 모습으로 어느 대학에 또다시 등장할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그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마침내 그를 잡기 위한 모임을 마련했다. (그들은 실제로 세연넷을 비롯한 여러 대학 커뮤니티에 함께 할 사람을 모은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모임에 직접 참석해 본 기자, 그 현장을 보고한다.


여기서 잠깐, 사칭 문제란?

사칭 문제는 대학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대학교도 지난 2010년, ‘연대 사칭녀’ 사건으로 세연넷이 뜨겁게 달궈진 바 있다. 물론 여태까지 벌어진 사칭의 수준은 대개 미약했고 그것으로 인해 타인이 해를 입지 않았기에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실제로 치과대 회장 오영렬(치의학·08)씨는 ‘치대에서 일어났던 사칭 사건들은 대개 미팅이나 소개팅에서 학과를 속인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법진’ 사태의 경우 어느새 학교에서 학교로 소식이 전파돼 입학 시즌만 되면 각 학교 학과 회장들이 클럽에 ‘이 인물을 조심하라’는 공고문을 붙일 정도니 과연 인물은 인물이다.

단국대 사람들과의 만남

세연넷에 ‘김법진을 함께 잡아보자’는 글을 올린 주인공은 바로 단국대 서예 동아리 회장 이한준(경영·07)씨였다. 지난 8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단국대 동아리방에서 이씨가 모은 제보자들, 피해자들과 함께 김법진을 잡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피해자들은 가능하다면 법적인 처벌에도 찬성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회의 중 그들은 세 가지 문제점에 봉착했다.

‘대학 내 일어나는 사칭 문제가 동아리 내의 징계로 해결될 문제인가, 혹은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할 문제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첫 번째 문제였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교 동아리연합회(아래 동연) 회장 김삼열(경영·08)씨는 “동아리에서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동연 내 조직과 규율체계가 나름대로 잘 정비돼있기 때문에 사법처리와는 별도로 동연에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대학교의 피해자는 적은 편이지만, 만약 피해자가 속출한다면 현수막과 자보 등을 통해 인상착의를 공고하고 김법진 당사자에게도 최대한 연락을 취해 경고를 주겠다는 것.

하지만 책임지고 김법진에게 패널티를 가할 학생회 혹은 동연은 도대체 어느 학교여야 한단 말인가. 1989년생이라 추정하고 있지만 그는 사실상 소속된 대학이 없고, 또한 어느 학교에서 사칭을 일삼다가도 학생들이 의심을 갖기 시작하면 종적을 감추고는 타대학으로 옮겨가므로 학생회에선 오랜 시간 책임지고 그를 잡아낼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다.

결국 동연의 힘이 아닌 법적인 힘을 빌리기로 한 이씨.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번째 문제가 생겼다. 과연 법적으로 소송이 가능할까. 교수의 강의를 무단으로 들었기에 ‘무단침입죄’와 ‘재산죄’가 성립된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우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 중인 송창엽(법학․04)씨에 의하면 김법진 사건의 경우 성립될 수 있는 죄목은 ‘사기죄’ 정도라고 말했다.

피해 사례 분석결과 사기죄 성립 요건*인 △기망 △착오의 야기 △처분행위 △재산상 이익 취득이 모두 성립하므로 김법진의 체포가 가능하다.


*사기죄 성립 요건:

1. 피해 사례
(1)돈을 빌려 줬다
(2)밥을 사줬다
(3)모임(종교캠프, 신입생 환영회, 학교 수업)에 참석했다

2. 사기죄 성립을 위한 요건 (단순 사칭으로는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1)기망- 허위의 의사표시에 의해 타인을 착오에 빠뜨리는 일체의 행위
(2)착오의 야기- 기망행위로 인해 피기망자에게 착오가 야기돼야 한다
(3)처분행위- 직접 재산상의 손해를 초래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
(4)재산상 이익 취득-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로 인한 재산상 이익 취득

3. 피해 사례의 경우
(1)특정 학생 사칭- 기망에 해당
(2)피해자들은 김법진의 사칭을 믿었으므로 착오 존재
(3)피해자들은 돈을 빌려주거나 밥을 사줬기에 처분행위 존재
(4)김법진은 이로 인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
(5)따라서 사기죄 정립



그 외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피해자들이 쉽게 소송에 응해줄지 여부다. 신원이 파악된 피해자 4명은 기꺼이 법적 해결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그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재산상의 해를 입은 자가 필요했다. 피해 대학들의 커뮤니티에선 김법진에 의해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연락을 취해 본 결과 인터뷰와 자신의 신상 정보 노출에 대한 부담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이 모든 난관을 감수한다 쳐도, 김법진을 잡는 것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이씨는 그의 생년월일과 사는 곳을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수시로 바뀌는 연락처와 가명 사용으로 인해 연락을 취하기 힘든 실정이었다. 때문에 만일 학생들 선에서 그를 잡는 것이 곤란하다면, 경찰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하고 해산했다.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그 후 약 2주간 제각각 김법진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나가던 중,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그가 ‘잡혔다’는 것. 단국대 동아리연합회 회의 중, 한 회장이 발언했단다. 하지만 이씨는 ‘잡히는 과정을 직접 봤거나 정확한 소식을 들은 이는 아무도 없더라’며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잡혔네 안잡혔네 말이 오고가고, 제보자도 피해자도 지쳐가기 시작한 9월, 피해자 한두명이 그만두겠다는 뜻을 펼쳤고 결국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끝이 나는가 했다. 
 

그러던 중, 이씨를 통해 김법진의 가장 최근 연락처를 알게 된 기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취해봤다. ‘‘연고전, 과연 그들만의 축제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연고대 학생들 대상으로 게릴라 인터뷰를 진행 중이니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 번호 어떻게 알았냐’며 ‘문자 잘못 보냈다’고 답문하고는 그 이후로는 그 어떤 연락도 취해지지 않았다.

결국은 한끝 관심차이?

끝나지 않은 김법진 사태. 한때는 그를 제대로 잡아보려는 모임도 꽤 있었단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 역시 이번 모임과 비슷한 난관으로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칭을 일삼는 ‘김법진’이란 인물 자체도 문제거니와 학과나 반 단위에서 사칭자를 색출해 내지 못하는 미흡한 행정 체계에도 그 책임이 있다. 또한 가장 문제의식을 느껴야 할 피해자들 역시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사건을 은폐하려고만 드니, 피해를 입고도 해결 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결국 김법진의 활보는 학생 사회의 비조직적인 행정체계와 무관심 자체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대학생들의 관심으로 하루빨리 사건을 재조명해, 오는 2011년엔 그 어느 학교에서도 ‘김법진’이라는 이름이 떠돌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김유빈 기자 eubini@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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