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여행 >



1. 공항에서

조용한 공항에 청소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그런 정적을 깨고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공항 방송을 통해 나왔다. 비행기가 방금 막 신중공항에서 신포니에테공항으로 들어온 것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조용하던 공항에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곧이어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어항에 물고기를 풀어놓듯 공항으로 밀려들어왔다. 모두들 꽃무늬 옷에 양손에는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들고 있었고, 사람들 속에서도 각자의 무리마다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다 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용했던 공항은 한순간에 시끌벅적한 활기찬 공간이 되었다.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투명하게 처리 되어있는 천장을 통해 쏟아져 내려왔다.
시간이 지나자 비행기에서 내리던 사람들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공항은 많은 사람들로 - 오랜 비행시간에 지쳐 허기를 채우려는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공항에서 싼 기념품을 빨리 쥐어주려는 부모님, 그리고 공항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었다. - 가득 찼다.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거의 전부 내려서 커다란 자동문으로 나오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 이다가, 마침내 다 내린 듯하였다. 곧이어 신중행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방송이 공항을 울렸다. 그러자 공항 내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들어온 사람들이 지나간 커다란 자동문을 통해 비행기를 타러 갔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갔기 때문에 커다란 문에서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빈틈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의 뒤통수가 아닌 사람의 앞모습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먼저 그 사람의 몸이 나오고 난 뒤 그는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나왔다. 그의 팔은 돼지도 넣을 수 있을 만한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고 나오는 중이었다. 그 남자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제 한숨 돌렸다는 듯이 크게 숨을 내쉬고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바로 앞에 있던 핫도그 집으로 갔다. 가방이 매우 무거운지 가방의 중앙은 밑으로 축 처져있었고, 가방끈 또한 팽팽해서 끊어질듯 하였다. 그는 문에서 제일 가까운 핫도그 집으로 가서 가장 편해 보이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사실 모두 같은 모양의 의자였다.) 무거워 보이는 가방도 옆에 내려다 놓았다. 핫도그 가게 종업원이 남자에게 와 물었다.
“ 주문 도와드릴게요! 이 메뉴판 보시구요. 보시고 주문해 주세요.”
종업원 여자는 웃으며 말하였다. 남자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메뉴판을 신중하게 보았다. 손가락은 계속해서 두 가지의 핫도그만을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사실 메뉴판에 핫도그종류는 세 개였는데 하나는 매운맛 핫도그였다.) 남자는 여자 종업원에게 어느 것이 맛있느냐고 추천을 해 달라고 하였다.
“ 저희 가게에서 핫칠리핫도그가 제일 잘 나가는데요. 손님 매운 것 좋아하시나요?”
“ 아... 네, 제가 매운 것을 잘 못 먹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좋겠네요.”
하면서 종업원은 남자의 손가락이 순간 멈춰있던 곳을 집으며 추천을 하였고, 남자는 흔쾌히 그것으로 달라고 하였다. 남자는 여전히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고 종업원에게 물 한잔을 부탁하였다.

잠시 후 남자의 테이블로 핫도그와 물 한잔이 나왔다. 남자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핫도그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남자가 핫도그를 씹을 때 마다 눈에는 조금씩 눈물이 고여 갔다. 너무 많이 씹었는지 눈물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핫도그를 자신의 입에 넣은 상태로 커다란 가방 안에서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여권을 주섬주섬 꺼내어 보았다. 마치 지하수를 펌프질해서 끌어올린 듯 눈물이 갑자기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이 여권에 떨어지자 옷소매로 급하게 닦았다. 그는 여권을 한 장씩 넘겨나갔다. 그의 여권에는 조현민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고 남자의 힘 빠진 얼굴과 하나의 출국도장이 찍혀 있었다. 남자는 여권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드디어! 드디어……! 내가! 왔다!”
남자는 갑자기 핫도그 집을 나서서 공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있었다. 공항 밖의 신포니에테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공항 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정돈된 느낌과는 달리 뭔지 모를 축제 분위기였다. 공항 옆으로는 섬으로 되어있는 모래사장이 이어져 있었고, 수많은 남녀들이 거기에 있었다. 공항 바로 앞은 다리였다. 남자는 다리 위 한쪽으로 가서 다리 밑을 바라보았다. 다리 밑에는 모래바닥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바닥 위로는 물고기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엽서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 돈… 저… 핫도그… 안주셨는데요?…?!”
아까 그 종업원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들썩거렸다. 그 남자는 미안하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돈뭉치 하나를 꺼내더니 말려있는 지폐들 속에서 만원하나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거스름돈을 받은 그는 다리를 마저 건너갔다. 그의 앞에는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그 길은 온통 회색의 돌들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 길은 꽤나 컸고 길의 한편에는 커다란 야자수들이 줄지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회색빛 육면체 건물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 외에도 거리 곳곳에서는 노점상들이 군데군데 있었고, 사람들도 많아서 길은 북적거렸다. 남자는 커다란 가방에서 지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남자의 눈은 지도와 길을 번갈아 가며 움직였다. 남자의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남자는 지도를 접어 가방 안에다 다시 넣고는 그 커다란 가방을 들고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자의 발걸음은 가벼워보였다. 주변에서는 노점상들이 호객행위를 하였다. 누구는 남자의 팔을 잡아당겼고, 누구는 음식을 공짜로 나눠주기도 하였다. 그는 걸어가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였고, 나중에는 그의 양팔은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더웠는지 그늘진 건물 옆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걸었다. 경사는 거의 없어지기 시작했고, 한참을 걸었는지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 이게 아닌데? 하… 여기 어디지?”
남자는 잠시 멈추고 지도를 꺼내 들었다.
“아… 하!… 이건 아닐 거야 !… 뭐냐고 이건… ! 하!…”

갑자기 남자의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반쯤 열려있는 창문 사이로 들리는 소리였다.
“밖으로… 밖으로 가야돼! 밖으로…!!!”
남자의 위로 들리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창문은 벌컥 열렸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도를 신중하게 보고 있던 남자의 위로 어느 한 노인이 떨어졌다. 남자는 의식을 잃었는지 그대로 쓰려졌고, 노인 또한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남자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둔탁한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놀란 사람은 남자 바로 옆에 있던 주전부리 가게 주인이었다.
“이봐요! 아저씨! 정신 차려 봐요!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는 입을 막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이구~ 저런 무슨 일이래?”
“저 위에서 할아버지가 떨어지셨잖아”
“저 할아버지 한번은 저러실 줄 알았어.”
주변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누가 연락 좀 해봐요!”
가게 주인이 사람들의 무리에다 말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잠시 후 흰 옷차림의 장정 네 명이 왔고, 남자와 할아버지를 데리고 길 건너편에서도 한참 위에 있는 건물로 데려갔다. (그 건물은 다른 건물과는 다르게 황토색의 건물이었다.)


조현민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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