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하루 8~11시간 ‘고문… 머리 끝까지 ‘골병’”

지난 2008년 1월 16일, 한 언론에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이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며, 의자나 휴게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부당한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기사였다. 이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아래 서비스연맹) 등의 단체들이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아래 캠페인)을 주도했다. 이는 사실상 사문화됐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후 ‘고객 서비스’를 외치던 기업의 입장과는 다르게 여론이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고용노동부도 ‘서서 일하는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 등을 발표하며 노력을 이어갔다. 결국 대부분의 대형 마트에 계산원을 중심으로 의자가 놓여졌다.

'적정한 의자 '  제공은 선택이 아닌 의무

그러나 캠페인이 있은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있다. 서비스연맹 정민정 여성국장은 “2009년 초부터 대형마트에 의자가 놓이기 시작했지만, 눈에 띄는 계산대에만 의자가 놓여졌다. 캠페인의 성과이자 한계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두 대형 마트, ㄱ마트와 ㅎ마트 역시 계산원을 제외한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한다. ㄱ마트 행사장의 한 판매원은 “점심시간 1시간과 휴식시간 30분을 제외한 7시간 30분 내내 서서 일한다”며, “의자가 있으면 당연히 편하겠지만, 계산원이 아니면 의자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식품매장 판매원 ㅂ씨는 “5시간동안 일하고 교대를 하는데, 다리도 아프고 힘들다”고 했다.

시식코너나 조리 공간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행사장에 비해 독립적인 공간이 확보돼 의자를 놓을 공간이 충분한데도 의자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ㄱ마트 박미정 계장은 “기업 이미지 문제도 있고, 손님들이 지나다니는 매장에 의자를 비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ㅎ마트 경영지원팀 박창준 팀장은 “반찬가게나 시식코너의 경우는 공간이 있지만, 거기에 의자를 놓게 되면 다른 서서 일하는 노동자와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자를 놓을 수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안책이 있어야 한다. 고용노동부 서비스산재예방팀 박선아 전문위원은 “의자를 놓을 수 없는 작업장에는 피로예방매트나 휴게 공간 마련 등, 최선은 아니더라도 현실에 맞는 시정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박 전문위원은 “의자를 놓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놓는 것이 맞다”며 ‘형평성’은 법에서 명시한 조건이 아니라고 밝혔다.

의자가 비치돼 있다고 해서 계산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등받이나 발받침대가 없는 불편한 의자가 제공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ㄱ마트와 ㅎ마트에서는 등받이와 발받침대가 있는 비교적 편안한 의자가 제공돼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앉아서 쉬는 계산원들도 있었다. ㄱ마트 ㅅ계산원은 “손님이 없을 때에는 짬짬이 쉴 수 있지만 계산할 때는 계산대가 너무 높아 오히려 일하는 데 불편하다”고 말했다. 제공되는 의자가 노동 환경과 잘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90%의 노동자가 아예 앉아서 계산을 하는 유럽 등 외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골병이 들어도…"사랑합니다 고객님"

ㅎ마트의 경우 계산대와 높낮이가 비슷해 앉아서 계산을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비교적 질 좋은 의자가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ㄱ계산원은 잠시 쉬다가도 손님이 오면 일어나서 계산을 한다. ㄱ계산원은 “서서 계산 하는 게 고객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해 앉아서 계산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ㅎ마트 박 팀장은 “직원들이 서서 고객을 대해야 한다는 내부 지침은 없다”면서 “한국인의 정서상 앉아서 고객을 대하면 불친절하고 불쾌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계산원들도 자체적으로 서서 작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ㅎ마트 식품매장 판매원 ㅎ씨는 캠페인에 대해 “우리야 앉아서 일하면 당연히 좋지만, 내가 고객 입장이라면 판매원이 앉아서 응대할 때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며 캠페인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이처럼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서비스직’이라는 특성과 ‘손님이 왕’이라는 정서 때문에 오랜 시간 서서 일하는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유통업 여성비정규직 노동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20만 4천여 명의 서서 일하는 노동자 중 65.9%가 무릎 및 허리 질환을 앓고 있으며, 두 명 중 한 명 꼴로 하지정맥류, 방광염, 산부인과 질환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연히 정당한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에 서비스연맹 등은 지난 7월 중순부터 2008년 캠페인의 ‘2탄’으로, 일반 시민들이 마트를 이용하며 △의자가 있는지 △높낮이 조절·발받침·등받침이 가능한 의자인지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의자점검단 캠페인’을 시작했다. 특히 지난 캠페인에서 사실상 배제됐던 세부 코너의 판매원에게 의자를 지급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지난 8월 잠실의 H마트에서 열린 캠페인에서는 1시간 30분 동안 350여명의 시민과 직원들이 캠페인을 지지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캠페인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직업건강실 김현오 과장은 “무조건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업무나 환경을 고려해 서비스 노동자의 건강권을 실현하자는 것”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서비스 연맹 정 국장은 “같은 업체라고 해도 지점마다 워낙 환경이 다르다보니, 일상생활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의자는 앉을 수 있나요?'

지난여름 유럽을 방문했다는 오아무개(불문·11)씨는 “마트 계산원들이 다들 앉아서 계산을 해줬는데, 익숙지 않아서인지 거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처음에는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정서가 기업과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에, 서비스직 노동자의 건강권 요구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노동환경을 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법이 주로 제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현대의 늘어난 서비스업 노동자들에게 적용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오늘도 1시간 걸리는 등굣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은 없는지 빈자리는 없는지 사방으로 레이더를 켠 당신이라면 앞으로 마트에서 장보는 동안에도 레이더를 켜보자! 의자를 살펴보고, 부당하고 생각되면 이를 트위터를 통해 해쉬태그 #nochair로 알리거나 해당 매장에 직접 혹은 서비스 연맹을 통해 민원을 제기하면 된다. 모두가 함께한다면 건강하고 행복한 일터를 만드는 일은 그리 멀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정주원 기자 shockingyellow@yonsei.ac.kr
사진 유승오, 배형준 기자 
steven10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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