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발표되는 대학평가 결과가 학생들의 큰 관심사에요.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나 학원에서 입시상담을 해주기도 하구요.”

서울 E모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민희(19)양에게 대학평가에 대한 인식을 묻자 위와 같이 말했다. 입시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각종 평가기관과 언론사에서 발표하는 대학평가 순위 결과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세계대학평가들에는 △QS 세계대학평가(QS-WUR) △QS-조선일보 아시아 대학평가(QS-AUR) △상해교통대학평가(ARWU) △THE(Times Higher Education 세계대학평가) 등이 있다. 국내 대학평가는「경향신문」,「조선일보」,「중앙일보」등 언론사에서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언론과 교수들 사이에서 대학평가가 지니는 여러 부작용들이  지적되면서 ‘과연 대학평가가 순수한 ‘평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표설정은 기관 맘대로, 지표해석은 대학 맘대로?

우선 대학평가의 지표설정이 주관적이라는 점이 문제로 제기된다. 지표설정은 평가를 주관하는 기관의 재량 하에 이뤄지기 때문에 선정된 지표들이 대학의 수준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지 기준이 모호하다. 각 기관마다 위원회를 둬, 지표들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고는 하나 평가팀 관계자는 “그 위원회도 기관에서 자의적으로 구성된 단체기 때문에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각 기관마다 비중을 두는 지표들이 다른 것도 문제다. 예컨대 QS-WUR과 QS-AUR은 대학의 평판도에 각각 50%와 40%를, ARWU는 교원 및 연구부문에 무려 90%를 할당한다. 이는 주체기관이 어느 지표에 비중을 더 두느냐에 따라 특정 대학에 더욱 유리하게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표에 대한 해석이 각 국가마다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교원 당 학생 수’라는 지표를 해석하는 데 있어, ‘교원’과 ‘학생’을 어느 범위까지 포함시키느냐가 국가마다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는 전임교수만을 ‘교원’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반면, 외국은 시간강사도 교원에 포함시킨다.



각 대학에서 제출한 수치의 사실 여부를 검증할 방법도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1천여 개가 넘는 대학들이 제출한 수치들이 사실인가를 평가기관에서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획실 평가팀 한송이 직원은 “평가기관은 학교 측의 도덕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6년 10월 6일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에서 발표한 세계 200대 대학에서 서울대와 고려대가 허위 자료를 제출해 실제보다 순위가 부풀려진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영리기업인 언론사의 대학평가, 말이 돼?

이렇게 문제가 많은 대학평가들임에도 대학들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조선일보」,「중앙일보」에서 대학평가 관련 기사를 매 시기마다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학들은 한 단계라도 순위를 높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해  「중앙일보」가 강의평가 공개 비율을 평가 지표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하자 갑작스럽게 강의평가 공개를 시행한 것이 단적인 예다. 평가팀 관계자는 “우리대학교는 강제적으로 강의평가를 공개한 타 대학교에 비해 민주적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대학교 교수평의회(아래 교평) 박진배 의장은 “강의평가 공개의 상호 의사 조율기간이 너무나 짧았고, 애초에 논의가 이뤄질 때 교평은 배제한 채 ‘행정라인’에서 모든 논의를 끝낸 상태였다”며 “이후에 교평에서도 별다른 반대의사를 개진하지 못하고 학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질적 측면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늘고 있는 영어강의도 대학들이 평가에 종속돼 있다는 것의 방증이다. 지난 2월 23일에 「조선닷컴」에서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우리대학교의 영어강의는 28.5%에 이른다. 영어강의가 많은 학과로 꼽히는 문헌정보학과에서는 이번 학기 개설된 16개의 전공 중 7개가 영어강의다. 이현경(문정·10)씨는 “굳이 영어로 진행할 필요가 없는 과목까지 영어강의로 개설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영어강의가 늘어나다 보니 외국인 교수에 대한 수요도 증가한 상황이다.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많은 대학에서는 제대로 인증되지 않은 외국인 교수들을 무분별하게 초빙해 오고 있다고 알려진다. 우리대학교의 경우 신임교수는 일정 수 이상의 영어강의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만 재계약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대학평가의 경우 언론사에서 시행하기 때문에 대학과 언론의 유착 가능성도 짙다. 박 의장은 “대학에서 언론사에 광고를 내면, 그 언론사에서 광고를 낸 대학의 순위를 올려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평가자체는 필요하지만 비영리기관에서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순위 아닌 발전 위한 평가 가능할까

객관적이지 못한 지표로 단순히 대학들의 줄세우기에만 그치는 대학평가의 대안에는 △대학인증제 △학과별 순위 △대학자체평가 등이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4년제 대학 평가 인증기관으로 지정받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아래 대교협)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대학인증제’를 시행했다. 이는 △전임교원확보율 61% △교사확보율 100% △정원내 신입생 충원율 95% △정원내 재학생 충원률 70% △교육비 환원률 100% △장학금비율 10%의 필수 준거기준을 마련해, 이를 모두 충족하면 ‘인증’판정을 내리는 제도다. 대학인증제는 얼마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잘 정착되면 대학평가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학과별 순위를 매기는 것은, 획일화 된 지표를 통한 평가가 아닌 각 학과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평가를 시행한다는 본래 목적을 잘 살린다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학과별 평가 지표를 마련하는데 있어서도 대학평가의 지표설정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평가팀 관계자는 “학과별 평가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대학 전체의 순위가 아니라 자신이 관심 있는 학과의 세밀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현재 마련된 지표로는 아직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대학자체평가’도 대학 간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대학 자체가 설정한 목표를 제대로 달성했는지, 지난 수년간 비교했을 때 얼마나 발전했는지 등을 평가하는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수치화할 수 있는 자료에만 목매게 하는 현 대학평가에서 벗어나, 각 대학이 자신들의 대학 특성에 맞는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우리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 대학자체평가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그 결과물이 사실상 학생들 및 사회 전체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 관심이 촉구된다.

서울대에서는 지난 해 QS-WRU를 보이콧 했으나 결국 평가 기관에 수치자료를 제출했다. 대학평가의 시스템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학평가의 순위가 실제 대학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대학들은 순위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대학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대학들도 자각하고 있음에도 학벌중심주의, 수치만능주의에 젖어있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평가팀 한송이 직원은 “순위가 1, 2위라도 하락하면 동문들과 교직원들에게 연락이 빗발친다”고 말했다. 이어 “순위 평가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에 투자를 하면 바보취급을 받는다”며 “순위 외적인 부분에 투자를 하면 진정한 학교의 발전을 위한 길이라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국제화시대에서 모든 대학들이 무한경쟁의 궤도에 돌입하면서 짧은 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내는 데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남과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신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정량’이 아닌 ‘정성’을 우선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기반으로 대학들은 순위만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대학의 진정한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김재희 기자 jaehee0915@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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