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orts 해설가 겸 만화 스토리작가 엄재경을 만나다

『까꿍』, 만화가.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까꿍』의 만화가 이충호씨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스타크래프트’(아래 스타)나 ‘해설자’를 덧붙이면 전혀 다른 인물이 떠오른다. 바로 ‘식신’이라는 별명을 지닌 E-sports 해설자 겸 만화 스토리작가 엄재경씨다.

도대체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엄씨의 약력을 보면 E-sports 해설자, 만화 스토리작가라는 직업은 다소 의외다. 중어중문이라는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엄씨는『까꿍』을 그린 만화가 이충호씨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커서 함께 만화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죠. 만화가가 전문적인 스토리작가와 같이 작업하는 일본만화계처럼” 그러나 중·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그 꿈은 잊혀졌다. 그러다가 군을 전역하고 나니 이씨가 먼저 만화가가 돼 있었다. 이씨가 그리는 만화가 연애만화였기에 엄씨는 “연애만화는 못 하겠다”며 처음엔 스토리작가가 돼 달라는 이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학비 마련을 위해 일하던 중 몸살로 쉬면서 생각이 바뀌었고 결국 스토리작가가 됐다. “기본기는 있었지만 만화 시나리오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에 충호에게 배웠죠” 엄씨는 이미 대학시절 노래극·연극을 하면서 대본연출 및 시나리오 작성 경험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편 그가 해설자가 된 계기는 투니버스에서 『까꿍』의 캐릭터 매니지먼트를 하면서였다. 『까꿍』의 매니지먼트 및 기획을 하면서 스타를 스포츠처럼 중계하면 재밌으리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황영준 PD는 엄씨가 만화를 좋아하는 계층과 게임을 좋아하는 계층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해 그에게 게임해설을 부탁했다. 엄씨는 현재 자신의 직업을 ‘방송인’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만화가일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새로운 시장 개척의 원동력 - 매니아 정신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엄씨는 E-sports라는 새로운 시장의 개척 당시에 대해 “재밌었다”고 회상하며 “만화를 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은 안했지”라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즐겨라. 그런 매니아 정신이 중요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시절의 치기로 여기는 생각을 엄씨는 고수했다. 진정한 재미를 느끼던 그였기에 관객들과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E-sports를 혼자 대중화시켰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면 창업 공신인데, 주축 멤버로서 우리의 판이 커져나가는 것은 뿌듯하고 기뻤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E-sports의 위기와 극복노력

 E-sports의 창업 공신인 그도 위기의식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바로 승부조작 사건 때문이었다. 브로커들의 승부조작 사건은 엄씨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승부조작 사건 이후  E-sports의 전망에 대해 “우리 노력뿐만 아니라 팬들이 곱게 봐주신 덕에 무너지진 않았지만 분명 악영향은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최근 E-sports계에는 블리자드사와 중계권 문제, MBC게임의 음악방송 전환 등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런 문제가 매니아를 떠나게 하지는 않지만  소수의 공감만 얻다보면 자연스레 판이 작아질 수밖에 없죠. 그게 가장 큰 문제죠” 승부조작이나 중계권 분쟁 등의 사건이 터지면 매니아들은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지만 일반시청자들은 등을 돌린다. “이런 때 주저앉고 떠나가면 무조건 망하는 것이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해요” 지금도 그는 E-sports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크레이지 커피켓 = 애정과 즐거움

한편 엄재경씨는 인기 웹툰 『크레이지 커피캣』의 스토리작가다. 엄씨가 꼽은 이 웹툰의 인기 비결은 ‘예쁜 그림’이다. 『크레이지 커피캣』의 그림은 엄씨의 배우자인 순정만화 전문작가 최경아씨가 그리고 있다. 그가 E-sports 해설과 웹툰 스토리작가를 겸한 계기도 바로 배우자 때문이었다. 만화시장이 침체되면서 출판에 어려움을 겪었던 최경아씨는 만화를 그만두려했었다. “집사람의 재능을 썩히기가 너무 아까웠다”는 엄씨의 말처럼 『크레이지 커피캣』은 아름다운 그림체와 독특한 색감으로 독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그는 동료 만화가나 지인들과 만날 때도 자주 배우자와 같이 간다. 배우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레이지 커피캣』을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크레이지 커피캣』의 또 다른 매력은 커피라는 소재다. 커피 관련 지식을 공부해 스토리에 녹여냈다. 그의 집에는 커피와 관련된 도구가 즐비하다. 그에게 커피는 즐거움이다. “나도 바쁠 때 카페인이 필요하면 인스턴트 커피먹지 어떻게 볶아 먹겠어요” 그러나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다른 맛의 커피를 즐기는 것. 그런 즐거움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어떤 직업에든 반드시 필요한 요소?

 현대사회에는 한 사람이 여러가지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다. 엄씨 역시 스타 해설자 겸 웹툰 스토리작가로 투잡족이다. 엄씨는 어떠한 직업이든 지녀야할 태도로 ‘성실성’을 꼽았다. “프리렌서들은 일없어 힘들어할 때도 있죠. 일이 들어올 때 무조건 해야 해요” 그런 그에게 ‘이거 못하겠다’는 말은 없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해야죠. 어떤 PD가 어떤 일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바쁘다고 거절하면 다신 연락 안 와요. 어떤 일이든 의욕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죠” 다음은 ‘관리’다. 특히 스스로의 건강관리를 강조했다. 스트레스는 관리를 하지 않으면 누적돼 병의 근원이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는데, 고치면 다행이지만 글 쓰는 사람 중에는 못 고치는 사람이 많죠. 선배들 중에 요절하는 사람이 많아요” 한때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도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가 존재한다.

 이미 엄씨는 최고의 스타 해설자로 인정받고 있다. 자신 다음의 해설자에 대한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신이 1순위로 꼽히는 이유는 1호 해설위원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성을 가지고 자기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죠.” 개성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말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각각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죠.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어요. 모두 자기의 역할을 잘 합니다” 다음은 ‘존중’이다. 그와 동료 만화가 사이에는 조언이 ‘없다’. “각자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침범당하는 것을 너무 싫어하니까. 개인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하죠”

노력한다고 성공하지는 않아

 성공한 사람들은 많다. 엄씨도 대표적인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성공을 위한 조언은 사뭇 다르다. “도망갈 구멍 정도는 찾아놓고 꿈을 향해 노력해라. 단, 꿈은 놓지 말라.” 결혼 전에는 그도 ‘꿈을 향해 전진하라. 가진 것이라곤 젊은 뿐인데 실패 하는 것이 어떠냐’는 주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운이 좋아서 만화도 성공하고 방송도 성공했지 한 길만 팠는데 안 되는 사람도 많죠. 그런 이들의 삶이 행복하지만은 않아요” 만화계의 선·후배 및 동료들은 ‘네가 그런 만화를 만들었기에 우리 만화계가 흥한 거다’라며 그를 추켜세우지만 정작 그는 자신에게 냉철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성공의 흐름에 있었을 뿐이에요” 그는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었을 뿐이라 평했다.

 그는 노력을 ‘헛된 것’이라 보지 않는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지는 않기에 운 또한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사회의 흐름에 맞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모두가 기회를 잡지는 못한다. 노력과 운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지금의 엄재경은 없었을 것이다.

 엄씨와 함께한 짧은 시간 속에서 그의 인생관과 젊은이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취직에 힘겹고, 현실의 벽을 느낄 수 있으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항상 웃으며 즐겁게 살길 소망했다. 또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늘도 좋은 웹툰 스토리를 쓰기 위해 커피를 공부하고,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 목청을 올리는 그가 앞으로 어떠한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할지 기대해본다.

김광환 기자 radination@yonsei.ac.kr
 사진 정세영 기자 seyung10@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