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가축시장을 가다

지난 겨울, 최악의 구제역 파동으로 전국의 많은 축산농가가 초토화됐다. 구제역 판정을 받거나 예방적 조치로 살처분 판정을 받은 농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번 구제역 파동으로 살처분된 돼지와 소는 약 3백42만 마리. 전체 돼지의 33%, 소는 4.4%가 땅 속에 묻혔다. 이처럼 큰 희생을 치른 후, 사활을 건 방역작업 끝에 구제역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그 후는 어떻게 된 걸까. 구제역이 잠잠해지며 사람들의 관심은 식어버렸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구제역은 완전히 끝난 것일까. 본지에서는 구제역이 지난 후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양평 가축시장을 찾아갔다.

양평의 송아지들 여기 다 모여라


“말도 마, 이 일대는 전부 폐쇄됐었다니까.” 양평가축시장(아래 가축시장)까지 태워다달라는 기자의 말에 택시기사 김기근씨가 대답했다. 지난겨울을 회상하는 김씨의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양평은 구제역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지역 중 하나로, 구제역은 축산농민뿐 아니라 일반 양평 군민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구제역의 기세가 꺾인 지금, 양평의 주말 풍경은 여느 곳과 다름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통제됐던 도로에는 다시 차량이 자유롭게 왕래했고, 5일장이 열린 장터는 활기가 넘쳤다. 흥정을 하는 상인이나 손님의 얼굴에서는 지난 겨울의 어두운 그림자가 걷힌 지 오래인 듯 했다. 5일장에 강아지를 팔러 나온 할아버지에게 가축시장 가는 길을 묻자 “소 파는 시장 말하는구먼. 아마 얼마 전부터 다시 문을 열었을걸”하며 위치를 알려줬다.

지난 4월 23일부터 구제역으로 장기간 폐쇄됐던 가축시장이 5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한 지난 8일은 시장이 다시 문을 연 뒤 세 번째로 장이 선 날이다. “음메~” 가축시장에 발을 들여 놓자,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송아지들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이날 출하된 소는 암소 87마리, 수소 1백5마리, 합쳐서 1백92마리이다. 시장은 소뿐 아니라 소를 사고팔러 온 사람들, 구경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뤄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소를 팔러 가축시장을 찾은 김동수씨는 “구제역 때문에 한동안 중단됐던 시장이 이렇게 다시 서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갑다”며 “장사를 할 수 없으니 돈이 묶여있어 많이 힘들었는데 돈이 다시 돌게 돼 좋다”고 말했다.


가축시장의 거래는 전자경매 형식으로 이뤄진다. 묶여있는 송아지들 앞에는 주인의 이름과 내정가격이 적힌 판이 걸려있었다. 구매자들은 돌아다니며 송아지들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들고 있는 전자 입찰기에 가격을 매기느라 바빴다. 이 중에서 최고가를 제시한 사람에게 송아지가 낙찰된다. 그런데 송아지들이 묶여 있는 계류장 사이에서 송아지라기에는 너무 큰 소들이 눈에 띈다. 정상적으로라면 수송아지는 6개월 미만, 암송아지는 8개월 미만인 것만 출하가 가능하지만, 구제역으로 인해 팔지 못한 채 자라버린 송아지들 때문에 일시적으로 출하 기간을 연장해준 것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상처

겉으로는 활기차 보이는 시장이지만, 농민들의 속은 여전히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양평축협의 이희승 대리는 “사료 값은 자꾸 오르는데 소 값은 자꾸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라며 혀를 찼다. 이씨는 “송아지를 대략 2백만원정도에 사서 키우면 사료 값만 3백만원이 든다”며 “인건비를 제하더라도 다 자란 소를 팔 때는 최소한 6백50만원 정도를 받아야 원가를 맞출 수 있는데 이것도 못 받고 파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구제역으로 인해 소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기만 하다.

양평의 축산 브랜드 ‘물 맑은 양평개군한우’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동기씨도 구제역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 1월 15일 그는 키우던 소 50마리를 살처분했다. 어렵사리 입을 뗀 박씨를 통해 구제역이 할퀴고 간 상처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아픔을 알 수 없어요. 일부 사람들은 구제역 피해를 받은 농가가 보상금을 받아 오히려 이득을 본 것이 아니냐고까지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구제역 이후 다 해결됐다고 생각했던 농가의 피해보상은 아직 완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소 1마리에 4백50만원씩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현재까지는 아직 보상이 50%만 이뤄져 박씨는 마리당 2백25만원밖에 받지 못한 상태다. 보상이 다 이뤄진다고 해도 ‘물 맑은 양평개군한우’라는 브랜드명으로 학교급식이나 백화점등의 매장에 고급육을 납품하던 박씨의 손해는 더욱 크다. 일반 소의 평균에 맞춰져 일률적으로 책정된 보상금에 비해 그가 키웠던 소들의 가격은 2백~3백만원 정도 더 비쌌기 때문이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이뿐만이 아니다. 살처분이 이뤄진 농가는 6개월 동안 소를 입식할 수 없다. 박씨 역시 살처분 후 4개월여가 지났지만 아직 소를 키워도 된다는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다. 또한 최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앞으로는 소를 키우기 위한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다. 더군다나 양평은 상수도보호지역이기 때문에 이런 규제가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앞으로 신고제가 도입되면 축산업등록증을 받은 농가만 소를 키울 수 있으며 소가 아프면 꼭 처방전을 받아 치료를 해야 한다. 이외에도 여러 복잡한 규정이 도입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구제역으로 피해를 입어도 보상금을 80%까지 삭감당할 수 있다. 박씨는 정부가 강력한 규정을 도입한 것에는 공감했지만 앞으로의 운영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실제로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50~60대의 노인들”이라며 “이들에게 어떻게 규정을 숙지시킬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러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박씨의 어깨는 여전히 무거워 보이기만 했다.


전자모니터를 통해 송아지의 정보와 낙찰가격이 공지되자 사람들이 그 앞으로 일제히 몰려들었다. 이날의 최고낙찰가는 방배현씨의 암송아지로 2백85만 5천원에 낙찰됐다. 반면 최저낙찰가는 김종식씨의 수송아지로 낙찰가는 80만원이었다. 지난 장보다도 평균적으로 3~4만 원 정도 떨어진 시세다. 곧 이어 낙찰된 송아지들이 계류장으로부터 차로 옮겨졌다. 겁을 먹어 이리 저리 날뛰던 송아지들도 한두 마리씩 모두 떠난 후, 가축시장은 파했다. 앞으로도 한 달에 2번 가축시장은 문을 열 예정이다. 활기찬 시장의 모습에서 구제역의 상처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여전히 한 구석에 남은 농민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혜진 기자 shockingyellow@yonsei.ac.kr
사진 이다은 기자 winn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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