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모두가 ‘하나된다’는 이름 아래, 지난 11일부터 진행된 대동제로 백양로는 시끌벅적했다. 고막이 터질듯한 음악에 맞춰 흥겹게 불러지는 노래 소리, 천막 아래 주점 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학생들 사이에 그들이 서 있었다.
흡사 지난 4월을 뜨겁게 달궜던 학내 노동자 파업을 보는듯한 이 데자뷰 같은 현상의 실제 주인공은 바로 원주캠 학생들. 곳곳에 맥없이 걸려 있는 하얀 리본에는 저마다 학교에 원하는 요구 사항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중복학과에 반대한다’, ‘하나의 연세는 어디로’, ‘우리도 공부하고 싶다’라고 적혀있는 삐뚤삐뚤한 글씨, 그 한마디 한마디엔 이들의 처절함이 배어있다면 심한 과장일까.
중복학과 문제는 국제캠에 테크노아트학부, 아시아지역학대학이 설립된다는 계획이 학생들에게 전해지면서 불거졌다. 원주캠 디자인예술학부와 EIC는 명실상부 ‘캠퍼스 특성화 학과’로 세워지며 국내 대학에서 나름 명성을 쌓고 있었다. 반면 국제캠은 학과 이전 문제로 파생한 갈등과 그 연장선에서 당장 부족한 수요를 채우기 위해 신설학과를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애석하게도 그 화살의 과녁이 이번엔 원주캠인 듯 싶다. 관계자들은 ‘금방 해결된다’, ‘믿고 기다려주면’이라는, 어디서 자주 들릴 법한 대답을 내놓았다. 속이 탈만하다. 당장 학생들은 사회 진출할 수 있는 밧줄을 빼앗긴 셈이니 말이다.
애석하게도 그 누구도 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학내 노동자들은 청소 파업을 통해 간접적인 권력이라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이들에겐 그럴 힘마저 없다. 우스갯소리로 혹자는 이들이 ‘6두품’이기 때문에 문제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라 골품제를 차용한 이 구별짓기는 우리대학교 커뮤니티인 ‘세연넷’에 자주 등장하는 학벌주의 떡밥과 연결된다. 신촌캠 안에서도 정시는 성골, 수시는 진골이다. 여기서 다시 학과에 따라 골품제를 매긴다. 원주캠 학생들 스스로 6두품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하나의 연세’라는 판타지보다 자신의 학문을 펼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그날 밤, 본관 앞은 그 어느 때보다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박리나 웹미디어부장 linapar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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