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 말, 정부는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과 우수한 연구인력 양성’을 목표로 ‘두뇌 한국 21(Brain Korea 21, 아래 BK21)’이라는 대형 지원사업을 시작했고 상당한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원래 계획대로 오는 2012년 사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정되면서 대학은 다시 정부만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BK21은 정부의 대학원 인건비 지원을 주요골자로 한다. 대학마다 분야별로 사업단을 구성하면 심사를 통해 선정하며 매년 평가를 통해 우수 사업단에는 인센티브로 지원금을 증액하고 성과가 부진한 사업단은 지원금이 삭감되거나 지원대상에서 탈락한다. 지난 2005년까지 1단계 사업이 진행됐으며 2006년부터 2단계가 시작돼 오는 2013년 2월 마무리된다. 1단계에 1조 3천억원, 본격적으로 지원이 이뤄진 2단계는 약 2조원의 정부 예산이 책정됐으며 지난 2010년에는 총 74개 대학에 5백64개 사업단이 연간 2천6백억 여원을 지원받았다. 이 중 우리대학교는 33개 사업단이 연간 2백억 이상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지난 2010년 4차 연도 평가에서는 △생물 △경영 △복지 분야에서 최상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우리대학교 생물분야 사업단인 생체분자기능사업단 단장 김두식 교수(생명대·생화학)는 “BK21을 통해 연구 환경이 질적으로 향상됐다”고 말했다. 교수 및 대학원생들의 인건비 지원은 연구 환경 개선의 시발점이다. 지난 1996년 우리대학교 졸업 후 포항공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하상준 교수(생명대·생화학)는 “대학원 선택 시 경제적 이유가 굉장히 컸다”고 말했다. 당시 대학원생의 지원이 부족했던 우리대학교와는 달리 포항공대의 경우 등록금이 지원됐고 연구 환경도 좋아 우수한 학생들이 선호했다. 하 교수는 “BK21을 통해 주요대학들의 연구 환경이 크게 개선돼 현재는 주요 대학들의 연구 환경이 비슷한 수준”이 됐다고 전했다. 더불어 지원대상 사업단들의 논문발표 수가 증가했으며 논문 질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과학기술논문색인(SCI)논문의 건당 인용지수(IF)도 향상됐다. 또한 국제경쟁력을 갖는 우수한 석·박사 인력을 배출하고 해외 수주 연구비도 크게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러한 이면에는 △대학의 서열화 △실적을 위한 경쟁심화 △주요대학의 편중현상 등의 부작용도 존재한다. 학문 연구가 목적인 대학에 매일같이 순위가 매겨지는 상황에서 BK21도 매년 평가를 거쳐 분야별로 사업단을 서열화 해 지원금의 증감 또는 탈락을 결정한다. BK21의 지원금은 대학에서 지원하는 금액의 수배에서 수십 배에 달해 평가결과에 사업단의 사활이 걸려있다. 때문에 다년간의 연구가 필요함에도 1년 단위로 실적이 있어야하며 각 대학간에 경쟁이 치열해져 BK21 평가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발생했다. 이에 김 교수는 “실적을 위한 연구는 것은 폐단”이라면서도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 교수도 “연구역량을 갖춘 사업단이라면 대부분 지원받기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 받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BK21의 지원을 받은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연구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BK21이 2012년에 마무리 되는 상황에서 김 교수는 “후속대책 없이 끝나게 되면 여태까지 쌓아온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이에 정부는 후속사업으로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아래 펠로우십)’을 올해부터 시범시행하고 있다. BK21이 사업단과 같은 단체를 지원했다면 펠로우십은 대학원생을 개개인으로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BK21과 같은 폭넓은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시범시행에 선발된 인원의 52%가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학생이듯 일부 대학으로의 편중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개개인별로 선발되면서 한 연구실 안의 학생들 간에도 편차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정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입장이다. 우리대학교의 경우 ‘글로벌 5-5-10’사업을 통해 연구지원을 하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에 비하면 미미하다. 또한 ‘5년 내 5개 분야에서 세계 10위권 진입’이라는 목표를 김 교수는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 없이 추상적”이라며 “대학원에 대한 제도적 장치와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대다수의 대학들은 대학원이라는 수많은 연구기관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를 확대하지는 못할망정 BK21을 통해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빌미로 그나마 있던 대학원 장학금예산을 삭감하기도 했다. 사립대의 자율성을 외치지만 사립대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정부 정책에 얽매여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이다. 현 상태로는 BK21 후속사업에 대해서도 피동적인 객체로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에 수백억의 연구비를 마련해 주도적인 입장으로 변모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피동적으로라도 1년밖에’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다가올 변화에 발맞추려면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서동준 기자 bios@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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