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어렵고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그 길이 매일 시체와 혈투를 벌여야 하는 일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아래 국과수)에는 매일 죽은 이들과 마주하고 대화하는 이들이 있다. 법의학자가 바로 그들이다.

최근 법의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싸인』이 흥행함에 따라 ‘법의학자’란 직업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 속 법의학자 모습은 현실과 사뭇 다르다. 드라마가 흥미진진했다면 현실은 가혹한 그들의 삶. 지난 2002년 국과수에 입사해 올해로 근무 10년차를 맞이한 젊은 법의학자 최병하 동문(원주의예·87)을 만났다.

법의학의 길에 오르다

인터뷰 당일에도 4건의 부검을 마치고 감정서를 쓰느라 바쁘다는 최 동문.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에는 방금 부검한 사체의 사진이 선명하게 눈에 띈다. 하지만 매일 시체와 마주하는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는 “돈과 명예를 바란다면 법의학자를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시절 의대를 나와 쉽게 돈을 벌기보단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때문에 피부과, 성형외과 등 다른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와 달리 그는 해부병리학을 전공해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처음 법의학자의 꿈을 가질 무렵 부모님의 반대라는 첫 난관에 부딪혔다. 의사로 큰돈을 버는 동기들과 달리 법의학자가 되면 공무원으로서 봉급을 받아야 하는 생활이 부모입장에서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의학자는 공무원이지만 근무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는 “입사 초기엔 밤 10시나 11시에도 퇴근하지 못할 만큼 법의학자의 생활은 몹시 고되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그는 “고단한 일에서 느끼는 큰 성취감이 법의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힘든 일이나 돈과 명예에 대한 미련 때문에 중도하차하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의학자의 하루

법의학자의 하루는 부검과 함께 시작된다. 그의 책상 앞에는 월간 부검 일정표가 빼곡히 붙어있다. 4명의 법의학자가 한 팀으로 진행하는 부검은 보통 한 건당 40분에서 길게는 3시간까지도 걸린다. 따라서 오전부터 부검을 해도 오후가 돼서야 끝난다. 그는 “자살로 결론된 사건이 타살로 뒤집힌 경우도 많다”며 부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업이 끝난 뒤에도 법의학자는 쉴 틈이 없다. 부검 감정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검 감정서가 사건 해결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신중을 기울여 작성해야 한다. 그는 “수차례 확인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국과수에서 제공하는 부검 감정서는 완벽하다”고 자신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시체를 상대하는 업무적 특징으로 인해 국과수 동료 중에는 종교에 크게 의지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는 “매일 죽은 사람을 대하다보니 죽음이 특별한 의미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지금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정말 예상치 못한 하찮은 실수로 죽은 사람이 많다”며 “소소한 일이라도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매사에 조심하며 생활할 것을 당부했다.

한국 법의학, 변화가 필요한 시점

법의학자는 일이 고되고 업무도 과해 의학계에서 3D분야로 꼽힌다. 그는 근본적 원인으로 인력난을 지적했다. 현재 국내 법의학자는 대략 30~40명 정도다. 때문에 국과수내 대부분의 법의학자들은 직위를 막론하고 부검을 한다. 일인당 매일 3~4건의 부검은 기본이다. 외국의 경우 법의학자의 수가 국내보다 많기 때문에 업무과중도 덜하고, 더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할 여건이 된다.

부검에 있어서 정확성은 생명과도 같다. 열 번의 부검보다 한 번의 정확한 부검을 하는 것은 법의학자의 사명이다. 부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 할수록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명의 법의학자가 하루에 몇 차례의 부검을 맡는 국내의 법의학계에서는 한계가 있다.

또한 그는 국내 수사과정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국내에선 검사의 수사지휘 하에 영장을 받은 뒤 검찰의 부검 의뢰가 있은 후에야 부검이 가능하다. 따라서 부검을 하기 위해선 적어도 사건 발생 후 2~3일이 걸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신에 남은 증거들이 소멸되기 때문에 빠른 부검이 사건해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법의학자가 현장에 직접 파견돼 부검의 필요성을 즉시 결정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검찰 측에서 부검 결정권을 갖기 때문에 부검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도 부검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는 “하나의 사건이라도 정확한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수사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의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법의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그는 “남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길이라고 두려워하지 마라”고 전했다. 요즘 의대생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제일 선호한다. 이와 반대로 병리해부학 같이 ‘돈이 안되는’ 학문은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대를 나와 의사를 하는 일련의 공식화 된 코스를 밟기 보단 새로운 도전과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에 의의를 두길 권했다. 그는 “법의학은 인권존중 학문”라며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산 사람의 인권도 돌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측면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한다면 좋은 법의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법의학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서운 시신이 아니라 부검을 통해 사건의 답을 내지 못 할 때라 한다. 억울한 죽음을 막는 것이 최소한의 인권존중이라 외치는 그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다. 

홍수정 기자 wine_crystal@yonsei.ac.kr
사진 이다은 기자 winn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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